첫 월급을 빼앗긴 날

봉투를 낚아챈 손보다, 외면이 더 아팠다.

by 이지아

“명순아, 실풀린다. 미싱 멈추고 확인 좀 해!”

조장언니의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실밥 끝이 뒤엉켜 있었다.

손끝이 뻣뻣해서 잘린 줄도 몰랐나 보다.


서둘러 재봉틀을 멈추고 천을 들여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첫 달이라 실수하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몸에 박혀 있었다.


여기, 청계 7가 골목.

밤에도 불빛이 꺼지지 않는 봉제골목.

그 시절의 17살들은 다 그렇게 살았다.

경동시장에서 도라지를 까던 손으로,

이제는 원단을 자르고 꿰매고 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재봉틀 소리는 낯설었다.

바늘은 빠르게 오르내리고, 천은 뱀처럼 기계 밑을 지나갔다.

내 앞자리 언니들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작업했다.

그 틈에서 나는 늘 어색한 실밥처럼 삐져나왔다.


하지만 사람은 참 신기하다.

하루, 이틀.... 손끝이 기계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 뜨면 바늘부터 떠오르고,

꿈에서도 ‘윙윙’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시간,

언니들과 식은 밥에 김치 한 조각을 나눠 먹으면서도,

마음은 계속 바늘 끝에 있었다.


쉴 때 손을 푸는 법도,

피 묻은 바늘을 얼른 바닥에 감추는 요령도 배웠다.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꽥꽥 소리 지르는 반장님과,

밤낮없이 일하는 시간들은 괴롭고 고됐지만

나는 매일매일 하루씩 견뎌냈다.


공장에 처음 취직한 지 얼마 안 됐을 즈음이었다.

맨날 반장님한테 혼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하루는 퇴근길에 조장언니가 국숫집엘 데려갔다.

"명순아, 국수 한 그릇 먹고 집에 가자"


"언니, 나 돈이 없어"

"괜찮아, 언니가 사줄게~ 가자"


그때 당시 조장이래 봤자 20살 남짓.

조장언니도 사실 그냥 어린애였을 거다.


청계 6가, 종로방직 뒤편 시장 골목 안쪽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니,

허름한 간판 하나 없는 국숫집이 보였다.
비닐 천막 한 장이 겨울바람에 덜덜 떨고 있고,

문짝은 아예 없어서 안팎의 경계가 흐릿했다.


가게라기보단 마당 한편을 덧댄 창고 같았지만,

여공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김이 자욱했다.
그 안에는 국수 냄새, 구수한 멸치 냄새,

푹 익은 김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앉을자리는 테이블도 아니고, 나무로 대충 짜 맞춘 긴 의자.
거기서 서로 옆구리를 비비며 앉으면, 마치 이 골목 여공들이

죄다 한 뱃속에서 나온 친자매 같다는 착각이 들 만큼 다정해 보였다.


“국수 하나, 김치 많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인아주머니가 커다란 양은냄비 뚜껑을 덜컥 열었다.


김이 폭, 하고 퍼지면 안경 낀 이마까지 흐려질 정도였다.
양은그릇에 삶은 소면을 턱 얹고,

뜨끈한 멸치 국물을 퍼부은 다음,

고명으로 호박채, 김가루, 달걀지단을 얹어 준다.

그 위에 고춧가루를 살짝 뿌리면,

겨울 한기가 국물에 녹아 사라졌다.


그릇을 앞에 두면,

국수가 아니라 한 달을 버틸 용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몸이 아니라 마음부터 녹아내리는 국물.


"어서 먹어"


조장언니가 나를 먼저 챙겨준다.

집에선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대접이었다.


언니는 국수 한 젓가락을 후루룩 넘기더니


“야, 이거 한 사발이면 하루 버틴다.”


나는 말없이 국수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워버렸다.


정말로 그 말은 틀리지 않았었다.
50원짜리 잔치국수 한 그릇이면,

허기뿐 아니라 서러움도 잠시 접어둘 수 있었으니까.


누군가 내 밥 먼저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니,

국수 한 그릇이 헛헛한 내 마음속을 가득 채워줬다.


국숫집 아주머니는 늘 얼굴에 땀이 맺혀 있었다.


“어서 먹어, 국수는 불기 전에 먹는 게 맛있어.”


말은 무뚝뚝했지만,

김칫국물 위에 얹힌 마음만큼은 따뜻했다.


기계처럼 돌아가던 봉제공장,

바늘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청계천 국숫집은 여공들에겐 잠깐 멈춰 설 수 있는,

따뜻하고 너그러운 시간이었다.


바늘에 찔려 생긴 굳은살,

못생긴 손. 하지만 그 손이 오늘,

내 삶에 처음으로 ‘내 것’ 하나를 만들어줬다.


매일아침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고,

공장에 취직했다는 소속감은 너무나 보람됐다.


게다가 봉급까지 준다.


엄마옆에서 구박받으며 도라지 깔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첫 월급날이다.


오후 다섯 시, 반장 언니가 서류봉투를 나눠줬다.

사람들은 말없이 받아 들고

바지 주머니나 앞치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가만히 봉투를 쥐어보았다.

진한 크림색 봉투. 겉면에 ‘최명순’이라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작은 창고 앞에 앉아, 나는 봉투를 천천히 열었다.

안에는 천 원짜리 한 장,

눈물이 났다.

진짜로, 울어버렸다.


이 돈이 내 손에서 나온 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내 이름으로 무엇 하나 가져본 적이 없었다.

도라지 깔 때도, 동생 업고 장에 나갈 때도,

나는 ‘누군가의 일손’ 일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두 손은 돈을 벌었다.

내 이름으로 적힌 봉투 속에 들어온, 첫 세상의 인사.

나는 그것을 다시 조심히 접었다.


월급날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야간근무가 없었다.


같은 조 언니들이랑 청계 6가 국숫집에 가기로 했다.

그날 조장언니랑 먹은 국수를 다시 먹을 생각에

너무 설레었다.


퇴근시간,

"오늘은 조장언니 국수값은 내가 치러야지"

처음 받아보는 봉급봉투가 어찌나 두툼하던지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철문으로 된 녹색공장출입문을 나섰다.


그런데 뭔가 갑자기 내 손의 봉급봉투를 확 낚아채갔다.

"소매치기야"

심장이 고막까지 올라온 것처럼 쿵쾅거렸다.


내 봉급.

내 한 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절망이,

발끝부터 뺨까지 한꺼번에 타올랐다.


그 순간 자리에서 얼어붙은 나는 절망했다.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봉급 받았으면 집으로 당장에 와야지, 얼마 들었니?"


엄마는 숨이 찬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낚아챈 봉급봉투를 손에 든 채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지독한 사채업자가 빚쟁이의 숨통을 틀어쥐는 모습이었다.


억울함보다 먼저, 참담함이 밀려왔다.
왜 나는 내 봉투를 가질 수 없을까.
왜 나는, 벌기만 하고 쓰지는 못하는 존재일까.
왜 내 첫 기쁨조차 내 마음대로 붙잡아 볼 시간이 없는 걸까.

나는 대답 대신, 그저 고개를 떨구었다.
엄마는 봉투를 대충 흔들어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밖에 안 나왔니? 너, 중간에 게으름 부렸니?”


순간, 뺨을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정말 매일매일 미싱 앞에서 손이 아파 울컥할 만큼, 열심히 했는데.

속상한 마음을 말하고 싶었지만,,,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외치고 싶어도, 엄마는 내 마음보다 도라지가 먼저였으니까.


나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상엔 눈물이 나지 않는 슬픔도 있다는 걸.
그저 뼛속이 무너지는 기분.
내가, 나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


그날 처음으로,

엄마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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