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가 밥이 안 되던 시대, 배움은 사치였다
1970년 봄, 나는 열 살이었다.
까만 밤, 쏟아지던 별들만큼이나, 나는 간절했다.
매일 아침 오빠가 책가방을 메고 골목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나도, 학교 가고 싶다.’
그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올까 봐,
늘 목구멍에서 걸려 삼켰다.
그런데 그날은, 참을 수가 없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고,
연신 천기저귀를 빨고 있던 엄마 앞에 서서,
가슴속에 맺힌 말을 울먹이며 쏟아부었다.
“엄마, 나도 학교 갈래! 오빠만 보내지 말고,
나도 학교 보내줘!”
힐끗 쳐다보던 엄마의 얼굴에
잠깐, 아주 잠깐 낯선 표정이 지나갔다.
놀람인지, 미안함인지, 나는 몰랐다.
하지만 그 표정은 곧 굳어졌고,
엄마는 쌍둥이 울음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계집애가 무슨 공부야 "
" 그런 게 어딨어? 맨날 빵점 맞는 오빠는
학교 보내주면서 나는 왜 안보내줘! "
" 나는 백점 맞을 수 있다고!! 나도 학교 보내줘!! "
" 네가 공부하면 오빠 앞길 막아서 안돼 "
" 으앙~ 그런 게 어딨어, 그럼 나 오늘 도라지 안 깔 거야.
하나도 안 깔 거야! "
" 저 망할 놈의 계집애가! "
“학교가 그렇게 가고 싶어? 그럼 쌍둥이들 데리고 가”
엄마는 마치 바닥난 쌀독처럼 말끝을 툭 잘라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 조각난 말에서 작은 희망을 주워 담았다.
그래, 데리고 가면 되는 거잖아. 안고, 업고,
어떻게든 가면 되는 거잖아.
그날 밤, 나는 잠도 안 자고 내일 입을 옷을 접었다.
바느질 풀린 고무줄 치마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것마저 깨끗하게 펴서 머리맡에 뒀다.
쌍둥이들 기저귀도 두 겹씩 챙겨두고,
오빠 책가방에서 몽당연필하나랑, 공책도 하나 훔쳐놨다.
열 살짜리 손으로 세상을 준비하는 두근거리는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한 명은 등에 포대기로 업고, 한 명은 품에 안았다.
포대기 매듭을 조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진짜 학생 되는 날이야.’
학교 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너무 떨렸다.
다른 아이들 눈이 낯설고 무서웠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 흠신 놀란듯했지만,
내 표정이 너무도 결연해서였을까? 다행히 자리를 내주셨다.
나는 교실 맨 구석, 햇빛이 드리우는 자리에 앉았다.
칠판에 글자가 쓰이고, 아이들이 따라 읽었다.
나도 눈을 반짝이며 따라 읽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진짜 학생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어보았다.
달큼한 공기가 내 폐로 가뜩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날의 공기, 그날의 햇볕을 잊을 수 없었다.
얼마쯤 공부했을까?
품에 안은 쌍둥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얼른 토닥였지만, 곧 등에 업힌 쌍둥이까지 울음을 터뜨렸다.
“응애! 응애!”
애 하나 울음소리로도 정신이 없을 판에,
쌍둥이 둘이서 울어 젖히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교실은 조용해졌고, 모든 눈이 나를 향했다.
선생님도 당황하셨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동생을 안아 올리고 토닥였지만, 울음은 점점 더 커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견뎌낼 수 있는 침묵의 공기가 아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있지만, 이곳의 일부가 아니라는 걸.
나는 연필을 쥔 손이 아니라 울음을 달래는 손이어야 했고,
칠판 속 한글보다 아기 울음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몸이었다.
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매일같이,
앞으로 동생을 안고, 뒤로 동생을 둘러업고는
학교로 향했다.
선생님의 난처한 눈빛과,
불편해하는 친구들의 시선도
참을 수 있었다.
공부만 할 수 있다면
다 견딜 수 있었다.
사흘쯤 지났을까?
그날도 우는 동생들을 달래며,
교실뒤편에 서서 연신 칠판의 글을 따라 읽고 있었다.
갓난쟁이들이 울면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교실문이 쾅하고 열렸다.
엄마였다.
엄마 눈빛이 나를 꿰뚫었다.
독하디 독한 나한테 질린 눈빛이었다.
“명순아! 가자!”
엄마는 정면에 보이는 선생님은 아랑곳도 없이,
교실을 가로질러 와, 내 팔을 낚아챘다.
"왜! 나 지금 공부하고 있잖아!"
갑자기 머리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무슨 계집애가 이렇게 쇠고집이야"
엄마는 내 머리를 맵디매운 손으로 후려치더니
내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동생 둘을 안은 채 질질 끌려 나왔다.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등에 꽂혔다.
나는 울지도 못했다.
학교라는 꿈의 한가운데서, 나는 쫓겨나듯 끌려 나왔다.
“도라지 깔 일손이 없어! 계집애가 무슨 공부는 공부야, 당장 따라와!”
엄마는 품에 있던 쌍둥이 하나를 낚아채듯 안고 앞서 걸었다.
나는 등을 고쳐 매고, 아무 말 없이 따라갔다.
돌아오는 길, 나는 학교 담벼락을 지나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책가방 대신 도라지칼이 다시 내 손에 쥐어질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학교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책상에 앉았던 시간은 꿈처럼 아득했고,
현실은 여전히 도라지 껍질과 쌍둥이 기저귀 냄새로 가득했다.
그날 학교 문턱에서 꺾인 것은 나의 꿈이었고,
그 꿈은 제기동 약령시장의 퀴퀴한 냄새 속에 눌어붙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내 가슴속엔 포기와 원망이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