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에 과부가 되어, 네 아이의 어미가 되었다.
엄마는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사진 한 장 없는 어린 시절을 지나
열두 살이 되던 해, 전쟁을 겪었다고했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친구들은 어디론가 피난을 갔고,
엄마는 부엌에서 나무를 패는 법을 먼저 배웠다고 했다.
그때, 누군가는 총을 들었고
엄마는 쌀포대 속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엄마는 결혼을 했다.
세상이 하수상하던 때라,
어린 처녀들은 서둘러 혼례를 치뤄야
험한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던 시절이였다고,
남자는 미군부대에 일하던 사람이었고,
영어를 잘하진 않았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엄마에게 "고맙소"라고 자주 말해주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지금시대의 사람들처럼 "사랑"이라는건 꿈꿔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시절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가장 먼저 선택해야하는 건
"안정"이였을 거다. 아마도 더 정확히는 "생존" 이였나보다.
엄마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를 낳았고,
그리고 내가 태어났고,
막내 쌍둥이 남동생까지 식구가 여섯이 되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엄마의 바램대로 안정된 가정속에서 살고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유독 예뻐하셨는데,
곧잘 엄마 눈을 피해 내 입에 달콤한 무언가를 쏘~옥 넣어주시곤했다.
"아버지 이거 뭐야? 뭔데 이렇게 달콤해?"
"음~ 그거 초콜레뜨! "
"아버지, 나 더 줘. 더 줘."
"오빠한테 뺏기지 말고,명순이 너 혼자 먹어라~"
내가 졸라대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남은 초콜렛 한덩이를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초콜릿 한 조각. 입안 가득 퍼지던 그 달콤함은,
낯선 상표와 함께 어린 나에게 세상 가장 큰 비밀이자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이었다.
내가 엄마 몰래 초콜렛을 먹는날,
그날은,
아버지가 대문안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집 안에는 묘한 기대감이 감돌곤했는데,
아버지의 등에는 늘 묵직한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에는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통조림, 낯선 디자인의 담배갑들,
두툼하고 부드러운 담요, 향기로운 외제 비누와 세제 등,
'별의별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물건들이 풀리는 순간은 마치 작은 보물 상자를 여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보따리 앞에서, 늘 살림 걱정이 많으셨던 엄마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아버지가 가져오시는 담배는 살림에 큰 보탬이 됐다.
친구들은 배곯는 일이 많았지만,
나는 무슨 영문인지 그런걱정은 안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졌다.
부엌에는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있었지만
아무도 배고프다고 하지 않았다.
싸늘한 새벽 공기 속에 부고가 전해지고, 작은 동네에 술렁임이 번졌다.
미군 부대에 다니며 어려운 시절에도,
집에 쌀과 귀한 물건들을 들여오던,
가장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사람들은 안타까움과 함께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마당한켠에 단출하게 차려진 장례식장에는
동네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모두들 하나같이,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엄마와, 우리를 걱정했고,
앞날이 막막한 어머니를 보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눈길에는
동정과 함께 저마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 사이로 몇몇 아주머니들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아이고, 저렇게 젊은 나이에... 애들은 또 어떡한대?"
"그러게 말이야. 기껏해야 스물도 안 됐을 텐데. 앞날이 캄캄하겠어."
"미군 부대 다닌다고 돈 좀 만진다더니,
병원 한번 제대로 못 가보고 저렇게 될 게 뭐람.".
"쯧쯧, 기지촌 근처 산다고 괜한 소리 듣는 건 아닐랑가 모르겠네."
"젊은 과부한테 세상 인심이 어디 좋던가."
"그래도 얼굴은 반반한 편이니... 어떻게든 살길은 찾겠지 뭐."
"하긴... 남편 잡아먹었다는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지. 팔자가 사나운가벼."
마당 한구석에서 피어나는 수군거림은,
차가운 바람을 타고 젊디젊은 엄마의 귓가에 와닿는 듯했다.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세상의 가혹한 시선과 막막한 현실이 엄마를 짓누르는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에 맥없이 앉아,
동네사람들의 입방아소리를 오롯이 받아내던 그날,
엄마는 흰 옷을 입고 앉아
입술을 깨문 채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정말 억척스럽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알았다.
엄마는 강한사람이 아니라, 울틈조차 빼앗긴 여자였다는 걸.
그 순간, 나는 엄마가 무서우면서 너무 불쌍했다.
하지만,
이제 막 8살도 안된 나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엄마보다,
내일 당장 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무서웠다.
'이제, 아버지가 안 계시면 우린 어떻하지?'
미군부대에서 나오던 통조림, 달콤한 초콜렛은 커녕,
죽만 먹을수 있어도 다행인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게
나에게 어떤의미인지.
그렇게 서른도 안된 지금의 나보다 어린여자가,
젊은 과부의 이름으로,
4남매의 엄마가 되어,
그 가을에 우두커니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