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삶에도 꽃은 피어 있었다.
1970년 봄, 서울 제기동,
그해 내가 10살이 되던 해였다.
엄마는 늘 바빴고,
새벽이 채 걷히기도 전에
헝클어진 머리 위로 수건을 얹고,
양은 도시락 하나와 칼 하나 챙겨
시장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명순아, 얼른 가자.”
오빠는 학교 가야 한다며 식탁 위 김치를 후다닥 입에 욱여넣고 나갔다.
"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오빠의 인사가 저만치 멀리 들려왔다.
' 오빠는 매일 학교에 가는데,
왜 맨날 나만 시장에 따라가야 되는 거야?'
분하고 억울했다.
하지만 나는 말없이 막내를 등에 둘러업었다.
투덜거려 봤자, 혼만 날게 뻔했다.
"응애응애"
이제 막 돌이 지난 쌍둥이 남동생이 칭얼거린다.
쌍둥이들이라서 울음소리도 두배로 귓전을 울렸다.
나는 쌍둥이 동생을 등에 둘러업고는, 얼르고 달래며 엄마를 따라나섰다.
엄마도 다른 쌍둥이 동생을 둘러업고 시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른도 안된 여자어른과 10살이 된 여자아이의 등에
이제 막 돌이 지난 애를 업은 모습이
그때는 생경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다들 그렇게 살았으니깐.
쌍둥이를 등에 둘러업고 터널터널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왁자지껄한 약재시장이 보인다.
" 아이고, 사모님! 여기 몸에 좋은 약재 좀 보고 가셔요! "
" 감기 기운 있으시면 이 도라지가 최고입니다! "
" 기관지에도 좋고, 가래 삭이는 데는 이만한 게 없어요!"
경동시장에는 없는 게 없었다.
도라지, 당귀, 인삼, 칡뿌리
처음 엄마손에 이끌려 갔을 땐 별천지를 보는 것 같았다.
왁자지껄한 상인들의 소리, 구경꾼들의 시끄러운 소리
깎아달라는 손님과 상인들의 실랑이하는 모습들
그러나 그것도 이젠 익숙한 풍경이었다.
시장의 바닥은 늘 축축했고,
한약 냄새와 마른 흙, 젖은 나무 상자에서 나는 곰팡내가
뒤섞인 공기가 입속까지 들어왔다.
엄마는 도라지 앞에 자리를 깔고 앉으며 말했다.
“오늘은 많이 해야 해. 애들 약값도 밀렸고,
쌀도 다 떨어졌어.”
나는 내 손만 한 도라지를 손에 쥐었다.
손바닥에 흙이 묻어 뻑뻑했고,
칼을 쥔 손가락은 아직 어설펐다.
" 아야 "
스치는 상처에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도라지 껍질을 벗기다 손끝을 살짝 베었다.
아리고 쓰라린 손끝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소리 내지 않았다.
엄마는 내 목소리가 안 들렸는지, 그 옆에서
빠르게, 그리고 조용히 도라지를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손끝을 베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나는 단지 또 하나의 일손, 한 사람 몫의 일꾼이었던 거다.
10살짜리 여자아이가 갓난쟁이를 등에 둘러업고
쪼그리고 앉아 처음 해보는 도라지손질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투정 한번 할 수 없었다.
소리 내지 못한 그 작은 가슴에 울분이 쌓여만 갔다.
엄마의 어깨는 굽었고, 깡다문 입술은 말라 있었다.
엄마는 늘 갓난쟁이 쌍둥이를 먼저 걱정했고,
장남인 오빠가 입은 낡은 교복 소매를 걱정했다,
나는 그늘처럼 그 옆에 앉아
왜 나만 도라지를 까야하는지 묻지도 않고 일만 했다.
"엄마는 내가 학교 가고 싶은 걸 알기나 할까?"
사실은 학교에 안 보내준다. 는 대답을 들을까 봐 무서웠던 거다.
얼마쯤 지났을까?
빨간 고무대야에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도라지들이
한 움큼 쌓이기 시작했을쯤, 엄마는 도시락을 꺼냈다.
딱딱한 보리밥과 무말랭이.
그마저도 허기진 배를 채우기엔 모자랐다.
그래도 굶지 않은 게 어딘가?
허겁지겁 허기를 달랜 나는 다시금 도라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사실 나는 배고픈 게 아니라, 엄마가 나에게 물어봐주길 바랐다.
"명순아 힘들지?”
엄마는 끝내 나에게 그 한마디를 안 해줬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대야에 도라지가 산처럼 쌓인뒤에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엄마는 한 손에는 그날 번 품값 쥐고는,
“쌍둥이 아프다고 했더니 약초집에서 황기 조금 주더라”며
한 줌의 약초를 자랑스레 꺼내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손에 밴 도라지 냄새를 맡으며 잠들었다.
엄마의 마음엔 여전히
오빠와 쌍둥이 동생들이 차지한 자리가 더 컸지만,
나는 내가 도라지를 많이 까면
엄마가 학교를 보내 줄 것만 같아서 너무 좋았다.
하얀 벚꽃이 흩날리던 그 봄,
경동시장에 가는 길은 고된 일이었지만,
그 약재시장 냄새가 나에게는 희망의 향기였다.
내년봄에는, 옆집 희자랑 같이 학교를 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도라지 냄새처럼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