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선택은 생존이었고, 죄는 고스란히 딸의 몫이었다.
나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딸을 버렸다.
나는 당신 닮은 아이 하나 살리려, 하나를 버렸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명순이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딸이라서 미워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살얼음 같은 살림살이 위에서,
단 한 명이라도 건져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게 내 장남, 만식이였다.
“이 집안은 그래도, 하나쯤은 책상머리에 앉아야 쓰겠지.
이대로 다 시장통으로 내보내면,
나중에 누가 이 집 식구들 건사는 누가 해 ”
나는 그 말만 되뇌며,
도라지 돈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만식이 학비를 챙겼다.
명순이는 늘 만식이 손에 쥐어져 있는
연필을 부러운 눈으로 한없이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혹시라도 명순이가
학교 보내달라는 말을 할까 봐,
그 불쌍한 눈빛을 애써 못 본 척했다.
하루는 그 애가,
마음속으로 수천번 되뇌고 되뇌다
“엄마, 나도 학교 가고 싶어”라고
입 밖으로 힘겹게 뱉어내기라도 하면,
나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학교가 밥 먹여줘? 책이 쌍둥이들 밥 먹여주냐?”
사실은 나도 안다.
글을 알아야 세상을 산다.
글을 모르면, 세상이 나를 속이고 짓밟고 지나간다.
내가 왜 그걸 모르겠는가?
무식이 뼈저리게 사무치는 답답함을.
나는 까막눈이었다.
약재상에 일감을 떼러 갈 때도,
약재이름을 못 읽으니 눈치껏 외워야만 했다.
시장에서도, 은행에서도,
잔돈을 속아도, 전표를 못 써도,
나는 그저 ‘잘 모릅니다’ 하고 웃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살아 있었을 때는 그럴 일이 없었다.
그 양반은 글도 잘 읽고, 심지어 미국말도 줄줄 외웠다.
그 사람이 양키말을 할라치면, 동네 사람들은 한참을 부러워했다.
“복녀는 남편 잘 만나서 등따시겠네 그려~”
그 양반이 살아있을 때는,
살림은 넉넉지 않았지만,
뱃속이 뜨뜻했다.
남편그늘의 넉넉함이 쌀 천근은 재어놓은 것처럼 든든했다.
하루아침에,
그 양반이 그렇게 가버리고
일자무식인 내가, 살아갈 세상은 너무나도 버거웠다.
그러니, 나는
지아비를 꼭 닮은 만식에게 내 세상을 걸 수밖에 없었다.
' 지애비 닮아, 머리가 똑똑하겠지 '
' 이놈이 빨리 공부를 마쳐야, 집안이 일어난다 '
' 만식이가 지 동생들 다 건사한다 '
나는 매일같이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다.
명순이?
그 애는,
내가 너무 잘 안다.
지애비를 닮아서 똑똑하고,
날 닮아서 악착같은 계집애
너무 착하고, 빨리 철이 들어서,
지 앞가림은 하고도 남아, 내 손이 안 가는 딸내미.
그래서 더 무서웠다.
혹시라도 내가 말을 흐리면,
혹시라도 눈빛이 흔들리면,
그 애는 가방 하나 없이 동생들을 안고서라도 교문을 넘을 아이니까.
그래서 나는,
더 독하게 굴었다.
마음속 한 줄기 연민이, 단연코 네 식구 밥줄을 끊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밤에 혼자 도라지 깎다 보면,
명순이가 교실 한 구석에서 울음을 달래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내 나는, 고개를 '홱 홱' 가로젓고는
도라지 칼을 바삐 움직였다
눈이 따가워도 땀 한번 닦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내 죄책감이 파도처럼 들이닥칠까 봐.
# 장례식, 그리고 첫새벽
스물아홉에 과부가 되었다.
그날도 시장에 도라지 까러 나갔다 왔다.
저녁상을 차리느라 분주한 사이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만식이 아버지! "
애들 아버지가 쓰러지더니,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내가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마치 잠든 듯 누워있는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순간부터였다.
나는 울음을 그만두고, 숨을 들이켰다.
살아야 하니까.
장례 치르는 내내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상관없었다.
지금은 이 불쌍한 새끼 넷을,
먹여 살리는 것.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그때부터 내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됐다.
약령시장에서 도라지 까는 일감을 받아오면,
종이 포대에 무게만 해도 서른 근이 넘었다.
그 무거운 대야를 머리에 얹고 돌아오는 날이면,
천근 같은 슬픔이 내 가슴에 내려앉았다.
쌍둥이들을 업고, 한 손엔 도마, 다른 손엔 대야를 들고,
미싱 돌아가는 소리처럼 바삐 하루를 살았다.
내 손톱은 매일 밤 도라지 껍질과 함께 벗겨졌고,
내 무릎은 대야를 머리 위에 얹을 때마다
연신 시멘트 바닥에 부딪혀 까졌다.
그런데도 밥상에 김치 한 접시 못 올리는 날이 많았다.
기껏해야 보리밥에 된장물 말아먹이고,
애들이 “배고파” 하면 나는 소리 질렀다.
“배가 고파? 그럼 나가서 도라지를 까!"
" 니 아비 없이 사는 게 폭폭 해 죽겠어! ”
" 만날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소리야 "
내 입에서, 어미가 해서는 안 될 말이 나올 때도 있었다.
나도 안다. 어미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하지만 내 안에는,
슬픔 대신 화가 가득 차있은 지 오래였다.
명순이는 살림밑천이었다.
눈치도 빠르고 재발라서,
집안살림도 알아서 척척 하는 딸.
명순이한테 집을 맡기고 나가면,
약령시장 약방 10군데는 더 들러 일감을 따올 수 있었다.
내 어린 딸 명순이가,
책가방을 메고 싶다며 하염없이 울던 날,
나는 쌍둥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데리고 가 봐라. 학교 가고 싶으면 쌍둥이들 데리고 가.”
그 말은 허락이 아니라, 포기하라는 말이었지만,
명순이는 그걸 기어이 하겠다고 했다.
쌍둥이를 업고, 책가방도 없이 학교를 갔다.
그리고 교실에서 쫓겨나듯 내 손에 잡혀온 그 아이를,
나는 또 다그쳤다.
“일손 모자라! 공부가 밥 먹여줘?”
나는 그렇게 퍼부어댔다.
# 첫 월급
그리고 그 애가 청량리 봉제공장에서,
꼬박 한 달을 새벽바람을 맞으면 일한 품삯,
처음으로 봉급을 받던 날.
그 봉투를 내 손으로 낚아챘다.
마치 밀린 도라지 품삯을 받아오는 것처럼 당연하게.
명순이는 말이 없었다.
입술을 꽉 다문 채, 봉투를 뺏긴 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을 느꼈지만, 일부러 보지 않았다.
안 봐도 느껴졌다.
그 어린 가슴에서 쏟아내는 그 차디찬 원망을,,,
4남매 밥그릇을 지키려다,
나는 내 딸의 마음이 산산이 무너지게 만들어버렸다.
# 영정 앞의 고백
환하게 떠있는 보름달이 구름에 가려 흐릿하게 번진 밤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마루 끝에 놓인 영정사진 앞에 앉았다.
여전히 말끔한 셔츠에 다정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편을 보며
내 입가도 잠깐 웃음이 걸렸다.
그러다 이내, 눈이 시큰해졌다.
내가 당신을 보낼 때도,
이렇게 말 한마디 못했지.
"당신, 나한테 너무한 거 아녜요...
내가 혼자 어떻게 하라고..."
나는 무릎을 꿇고
낡은 액자에 묻은 먼지를 소매로 닦았다.
그리고는,
아주 조용히, 마치 남편이 듣고 있기라도 한 듯 말했다.
" 나는 당신 닮은 아이 하나 살리려고, 당신 닮은 딸 하나를… 버렸소."
순간 방 안 공기가 싸늘해졌다.
내 말 한 줄기가 공중에 떠서,
영정사진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 명순이... 당신 닮아서 똑똑했지.
눈빛도 말끝도 꼭 당신 같았어.
근데 나는, 그 애 눈빛을 외면했어.
그래야 살 수 있었으니까."
" 만식인 장남이잖소. 게다가 당신처럼 글을 잘 읽고, 계산도 빠르니
그 아이한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어.
나는 글자 하나도 못 읽는 까막눈이었으니까. "
사진 속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나는 괜히 더 폭폭 한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내 나는 마루에 이마를 박고 울음을 터뜨렸다.
" 근데... 내가 뭘 그렇게 잘했다고,
명순이 마음을 그렇게 짓밟았을까.
그 애도 당신 닮은 아이였는데...
나는 왜, 왜 그걸 몰랐을까..."
그걸 나는, 너무 늦게야 알았다.
명순이의 모든 불행의 시작엔 내가 있었다는 걸.
눈물 한 방울이 마룻바닥을 적셨다.
그제야 멈춰 있던 도라지 냄새가
서늘한 밤공기처럼 방 안 가득 피어올랐다.
나는 그 애의 삶을 훔치려 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냥, 집이 무너질까 봐,
돈이 사라질까 봐, 애들이 굶을까 봐, 두려웠을 뿐이다.
그날,
내 천근의 슬픔이,
명순이 가슴에 만근이 되어 내려앉아버렸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용서를 구하지 못한 채 60년의 세월이 그렇게 흘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