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말없이 왔고, 나는 홀로 남았다.
공장의 기계는 쉬지 않았다.
내가 멈춰도,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손끝이 저려와도,
실은 흘렀고, 바늘은 돌았다.
나는 그 바늘보다 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 했고,
조금 더 조용히 아파야 했다.
그날도 똑같은 하루였다.
숨이 먼지로 막히는 날. 뜨거운 김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던 날.
" 명순아, 밥은 먹었니? "
미자 언니가 물었다.
보리밥에 김치, 그리고 물 한 대접.
" 네~ 먹었어요. "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절반도 못 삼켰다.
입이 헐어서, 삼킬 때마다 바늘 같았거든.
미자언니는 날 보면 항상 웃어줬다. 내가 좋아하는 웃음이었다.
웃으면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침을 하느라.
핏빛처럼 선명한 손수건에, 언니는 다시 웃었다.
" 이거, 봄꽃 같지 않냐? 피도, 이렇게 이쁘게 번지네. "
나는 그게 마지막 웃음일 줄 몰랐다. 정말 몰랐다.
나무젓가락처럼 말라 있던 미자언니 손등엔 멍이 자주 들었다.
기계에 끼고, 실에 쓸리고, 그래도 일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런 걸 봐도, 묻지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우리는 원래 아프고, 원래 참고, 원래 그런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래도 한때는 웃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쉬는 시간, 셋이 나란히 앉아 햇볕 드는 창가에 기대어 앉으면
미자 언니는 보리차를 나눠주었고, 조장 언니는 꼭 무심한 척, 봉지 사탕을 하나씩 손에 쥐여줬다.
나는 그때, 언니들이랑 있으면 꼭 어디 '가족 같은 곳'에 온 것 같았다.
미자 언니가 웃으면 조장 언니는 괜히 투덜거렸고,
나는 그런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셋이모이면, 조장언니는 항상 내 칭찬으로 말문을 열었다.
"명순아, 너는 기타 치면 표정이 확 달라져."
"정말? 언니, 나는 기타칠때가 젤 좋아"
그러면 미자언니는 봄볕처럼 환하게 씨익 웃으면서
"우리 명순이, 나중에 유명해지면 언니 모른척 하지마라~"라며, 괜히 나를 추켜세워주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농담이었지만, 그때 나는 정말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짧은 시간, 우리는 서로의 다친 손을 잠시라도 잊고, 웃을 수 있었다.
오후 3시.
기계 소리에 묻혀 이상한 기척이 들렸고,
누가 ‘화장실’이란 말을 꺼냈고, 누가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왠지 모를 이상한 느낌에 냅다 화장실로 달렸다.
내 싸한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
화장실에는 미자 언니가 쓰러져 있었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나를 보지 못했다.
숨을 쉬고 있었지만,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봄볕처럼 환하게 웃던 언니의 얼굴은 차가웠다.
갑자기 공기는 축축해졌고, 주변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기침엔 도라지가 좋다던데, 가져다줘야지,
내일은 꼭... 미자언니 가져다줘야지,
마음만 품고서, 끝내 전하지 못한 그 도라지 하나가,
목에 꽉 걸려 내려가지 않고 꽉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다.
조장언니가 어디선가 뛰어와 소리를 질렀다.
" 미자야! 미자야, 눈 좀 떠봐! "
조장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 위로,
미자 언니는 한 점 먼지처럼 조용히, 아주 멀리 있었다.
그날도, 그다음날도, 기계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를 삼킨 기계가, 그 사람을 씹어 삼키는 소리처럼.
언니가 사라졌지만, 기계는 전처럼 ‘윙윙’ 같은 소리를 냈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자꾸 숨소리처럼 들렸다.
누군가는 실을 감고, 누군가는 침묵을 삼켰다.
미자언니가 간 다음날, 공장에는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윙윙 돌아가는 기계소리마저도 미자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같았다.
미싱을 연신 돌려대며 애써 울음을 참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내 온몸을 휘감는 것만 같았다.
' 조장언니. 조장언니한테 가봐야겠다.'
웬일인지, 아무리 찾아봐도 조장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이틀째 되던 날, 공장 한구석에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그 조장언니, 대학생이었대. 위장취업했단다. 우리 조직하려고 왔더래. "
" 대학생. 위장취업. 조직. "
나는 그 말들이 무슨 뜻인지 다 알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뭔 말인지 다 아는데, 모른 척해야 할 것 같았다.
조장 언니는 내게 사탕을 쥐여주던 사람이었지, ‘
조직’이니 ‘위장취업’ 같은 말로 묶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언니가 남긴 자리에 앉아,
그 봉지 사탕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괜히 감춰두었다.
먹지도 않고, 버리지도 못한 채.
어느 날 조장언니가 나에게 작은 책을 줬다.
“읽어볼래?”
나는 얼떨결에 받았고,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도통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분명 한글인데,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뭔 말인지 도통 모르겠어요 "
언니가 날 보고 싱긋 웃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이야기를 해줬다.
" 그럼 이거 읽어봐. 글 읽는 여자는 무서운 여자야.
진짜 무서운 사람은, 뭘 아는 사람이거든."
" 명순아, 공부를 조금 해보는 게 어떻니? "
" 공부를 하면 세상이 달리 보여, 왜 우리가 이렇게 일하는지 억울하지 않니? "
그때 나는, 언니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억울하지 않았으니까.
일을 하면 봉급도 주고, 봉급을 받으면 기타 줄도 살 수 있고,
무엇보다 엄마한테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깐,,,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장언니가 공부를 해보라고 하니, 살짝 마음이 동하긴 했다.
' 검정고시 시험을 볼까? '
하지만, 공장일 하고 집에 가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
도저히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너무 기타가 좋아져 버렸다.
조장언니는 항상 책을 읽었고, 글씨를 예쁘게 썼고,
내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
쉬는 시간마다 뭔가를 적고 있었고, 그걸 밤에 나한테 보여주곤 했다.
" 이건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일하는지, 내가 적는 거야. 언젠가 말할 수 있게. "
나는 왜 그런 걸 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하지만, 밤에 혼자 누워 있다 보면,
조장 언니처럼 공책을 꺼내 괜히 오늘 한 일을 적어보기도 했다.
글씨는 삐뚤빼뚤했고, 몇 줄 못 쓰고 덮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언니처럼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냥 언니가 하는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국수를 사주며 날 다독여주던 마음.
클럽에서 멋들어지게 부르는 노래.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유식한 말투.
반짝반짝 빛나던 언니의 두 눈에 다정한 시선, 강단 있는 눈빛이 나는 정말로 좋았다.
그런데 그런 언니가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기계기름에 덮인 사람들 속에서, 혼자 이상하게 또렷했다.
웃을 때도 웃지 않는 눈, 말할 때보다 말없이 바라볼 때가 더 많은 언니.
그렇게 조장언니도 내 곁을 떠났다.
언니가 앉던 자리 앞에 멍하니 서 있다가,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상하게,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바늘을 들지도 못하고 앉아 있었는데,
반장님이 뭐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
이상하게도 책방 앞을 지나칠 때면 안에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괜히 언니가 웃던 얼굴이 책장 너머에서 보일 것 같아
그냥 몇 번,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만 보고 돌아섰다.
마음 한편을 내어주어 끈끈히 의지하던 인연들이,
내 곁에 머물지 않고 그렇게 떠나버렸다.
미자 언니가 사라졌을 때는 눈물이 났고,
조장 언니가 떠났을 땐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울음이 밀린 것처럼, 마음이 헛헛했다.
요즘도 가끔, 기계 소리가 언니들 목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
언니가 웃을 때 내던 숨소리, 미자 언니가 토해내던 기침 소리,
그런 것들이 자꾸 기계 소리 사이에 섞여 흘러나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그 소리들 사이로 한 번씩 언니 얼굴이 떠오를 때면,
심장 안쪽 어디가 슬며시 데워지는 것 같았다.
다 식은 물을 데운 것처럼, 아주 천천히, 아주 조용히.
요즘도 때때로, 목이 칼칼할 때면 나는 문득 그 도라지를 생각한다.
끝내 주지 못한, 그래서 아직도 내 목에 걸려 있는 그 위로 한 조각이였을까...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 미자언니를 만나면
그 도라지를 끓여 꼭 전해줘야만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