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 완결> 그날, 나는 집을 떠났다

기타는 부서졌고,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by 이지아

그날, 나는 집을 떠났다

나는 집을 떠났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관문이 열릴 때,

문틈 너머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평소 같았으면 소리도 없이 도라지를 깠을 엄마가,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슬리퍼 한 짝이 삐뚤게 벗겨졌고, 손에는 설거지하던 고무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엄마는 늘 무던한 사람이었다.


" 그게... 뭐냐."

목소리는 낮고, 숨죽인 듯 조용했지만
그 속엔 무언가 불길한 파도가 잦아들지 않은 채 고여 있었다.

엄마의 얼굴은 표정 하나 없이 굳어 있었다.
그러나 눈가 한쪽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엄마의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았다.


주머니에 억지로 찔러 넣은 립스틱, 손에 들린 낡은 기타 가방.
숨기려 애썼던 모든 것들이, 문 앞에서 무너졌다.


"엄마, 그게 아니라..."


"이 시간에, 그 꼴로, 기타까지 들고... 네가, 나이트에서 노래한다던데. 그게 진짜냐?"


엄마의 말투는 평소와 달랐다.

눈동자에 담긴 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손끝은 고무장갑을 낀 채로 움켜쥐어지고 있었고,

그 작은 떨림이 엄마의 속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대답을 하려는 순간, 혀끝이 굳어 붙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듯 답답했고, 귀가 '웅'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엄마는 내 손에서 기타 가방을 빼앗았다.

움켜쥔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내리쳤다.


쾅.


처음 울린 파열음은 마치 내가 맞은 것처럼 전해졌다.

몸이 움찔했고, 입이 저절로 다물렸다.


쾅, 쾅.


두 번째, 세 번째.
연이어 터지는 충격음은 점점 사람의 울음처럼 들렸다.


기타가 아니라 내 심장이 깨지는 듯한 착각에,

숨이 가빠졌다.


"계집애가 노래 좀 부른답시고..."


엄마의 목소리는 이제 떨렸다.
분노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안엔 오랜 무너짐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말끝마다 목이 자꾸 메는 듯, 음이 부정확하게 흔들렸다.
입술 사이로 드러난 이가 덜덜 떨렸고, 목 아래는 숨이 가빠 보였다.


나는 온몸이 얼어붙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뒷목에 식은땀이 흘렀고, 눈앞이 순간 흐릿해졌다.


"네가, 밖에 나가서 그런 꼴 하고 다니면..."


"네 아빠 얼굴이 뭐가 되냐? 네 오빠까지 저러고 있는데... "


그 순간 귀가 먹먹해졌다.
엄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울렸다.
주먹을 쥔 손이 저릿하게 아프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아차렸다.


나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말이라는 게 내 안에서 다 부서진 듯,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기타는 이미 갈라져 있었다.
바닥엔 나뒹구는 목재 조각들, 찢긴 가죽,
그 사이로 끊어진 기타 줄 하나가 바닥에 축 늘어졌다

마치, 내 안에서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무언가가 스르륵 풀리는 것처럼.




다음 날 아침, 오빠가 조용히 집에 들어섰다.
입은 굳게 다물었고, 얼굴은 잿빛보다 더 창백했다.
엄마는 마루에 앉아 식은 밥상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엄마… 나 잘렸어."


오빠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장에서... 누가 내 운동권 전력 찔렀대."


말이 끝났는데도 식탁 위 수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세 그대로, 몇 초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순간, 집 안엔 숨소리조차 사라진 듯했다.


한참뒤, 엄마의 입에서
조용하고도, 낮고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나는 그 말이 엄마 자신을 향한 줄 알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네가 나이트 같은 데서 돌아다니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을 들쑤시고, 결국 네 오빠 과거까지 파고든 거야!"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이마에는 땀이 송글 맺히고, 손등의 핏줄이 뚜렷해졌다.


"네가 얼굴에 분칠이나 하고 온 동네를 싸돌아다니니까 동네사람들이 우리를 설피 보는 거야"


오빠는 가만히 서 있었다.
입술을 앙다물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오빠의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지만, 엄마를 말릴 용기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오빠 일이, 그게 왜..."


"입 다물어!"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접힌 무릎에서 툭, 무릎담요가 떨어졌다.


"네가 집구석을 망치고 있어! 니 아버지 죽고 나 혼자 얼마나 애터지게 사는데..."


목이 멘 듯, 말이 끊기고 이내 다시 이어졌다.

엄마는 울지도 않았다.
다만 턱을 꾹 다물고, 눈을 곧게 떴다.

" 나는 그꼴 못 본다. 계집애가 무슨...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 "


순간, 귀가 멍해졌다.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주변이 빙빙 도는 것도 같았다.


숨을 쉬는데, 폐 속에 공기가 들어오질 않았다.
심장은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뛰는 게 아니라, 쿵쿵 박혔다.


말도 생각도 사라졌다.
무릎이 풀리는 걸 느끼면서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우리 집안을 망쳤다고...? 꼴 보기 싫다고...?’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목덜미를 잡고 흔드는 기분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속에서 천천히 쪼개지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몸은 그대로였지만, 안쪽 어딘가는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있었다.




밤이 되자, 다시 가방을 챙겼다.


잠깐, 멈췄다.
손잡이를 쥔 채, 한 발자국을 떼기까지 몇 초가 걸렸다.


'지금 아니면...'


가슴 한복판에서 말하지 못한 마음이 꿀렁였다.
혹시 엄마가 문을 열고 나올까?
혹시 오빠가 말릴까?
그런 망상 같은 기대가, 잠시 스쳤다.

하지만,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서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남지 않았다.


깨진 기타 대신, 지난달 공연비로 산 새 기타가 조용히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손잡이를 쥐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그 기타는 더 가볍고 더 윤이 났지만, 낯설었다.
내 손에 익었던 무게, 나무 냄새, 기타 줄 하나하나의 거칠었던 감촉이 사라지고
말끔하게 닦인 표면만 남아 있었다.


'그 애는 죽고, 이 애는 모른 척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시 어깨에 메었다. 안 메면 안 되니까.
이젠 돌아갈 데도, 돌아가야 할 이유도 사라졌으니까.


현관문 앞에서 멈췄다.
문 너머 어둠 속에서, 엄마는 방문을 열지 않았다.
안쪽 방에 불빛은 꺼져 있었지만, 나는 알았다.
그 안에 누군가는 깨어 있다는 걸.
오빠는 부엌에 머리를 박은 채, 내 눈을 피했다.
숟가락만 뱅뱅 돌리다가 그릇을 치우지도 않았다.


집 안은 너무 조용했다.
하지만 그 정적이 따뜻한 침묵이 아닌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외면이었다. 고요한 외면.
가족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받는 그 느낌.


숨을 들이켜도, 그 공기 속에 나는 더 이상 들어 있지 않았다.

발걸음을 떼는 순간, 왈칵 올라오는 게 있었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차라리, 벽처럼 느껴지는 체념 같은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무대에 섰다.
환호도,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조명이 쏟아지고, 악기 소리가 울렸지만, 내 안에는 텅 빈 소음만 가득했다.

입은 떨렸고, 노래는 어디까지 기억나는지도 가물가물했지만,

익숙한 기타 반주가 시작되자, 입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붙잡은 손이 식은땀에 미끄러졌다.

입술이 말라붙고, 손끝은 차가웠지만,
기계처럼, 익숙하게,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나는 노래를 불렀다.

손가락은 멜로디를 쫓고 있었지만, 마음은 텅 빈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가사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 노래가 나에게 말하는지도, 누군가를 위로하는지도 모르겠는 채로.

목소리는 나오고 있었지만, 나는 그 노래 안에 없었다.


분장실 문을 열자마자 눈이 시렸다.

거울 앞에 앉아 있으니 눈가에 붙인 펄이 지워진다.

눈이 아니라, 마음이 번지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지, 울지 말아야지....'


하지만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먼저 무너지고 있었다


그때 상진이 형이 조용히 내 어깨를 툭 쳤다.


"명순아."

"응?"

"... 어디 아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형의 눈은 여전히 묻지 않았다. 다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말 대신 오래 묵힌 말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냥 좀..."


그 말에 상진이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특유의 조용한 눈빛으로 내 손에 커피 한 잔을 쥐어주었다.


마치 누군가가,

아무 말 없이도 '괜찮아'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말하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형의 눈이 따뜻했지만, 난 왜 그게 더 슬펐는지 몰랐다.

커피를 전해주는 형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내손에 스치듯 닿자, 나는 어린애처럼 울어버렸다.


하루 종일 참았던 숨, 소리, 감정이 그 손끝 하나에 풀려버렸다.

형은 입을 다문 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람처럼, 내 옆에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가야 할 이유도, 돌아가고 싶은 용기도 남지 않았다.


그 집은 더 이상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상처만 남기고, 위로는 없는 곳.
고장 난 대문처럼 덜컹거리며 닫히는 소리만 있는 곳.


이제 나는 낯선 기타를 등에 메고, 낯선 불빛 아래 서 있었다.


그리고 돌아갈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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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더 깊고 낯선 세계로 향합니다.


『도라지꽃』 시즌2는 7월, 다시 시작됩니다.



그동안 『도라지꽃』 시즌1을 함께 걸어와 주신 여러분,


조용히 마음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 이지아 드림


p.s 작가의 말 「나는 엄마가 되어, 나를 쓰기 시작했다.」는 내일 자정 12시에 (28일 00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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