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소리의 간격에서 문장을 듣는다

청각은 거리의 감각이다

서두

"나는 소리의 간격에서 문장을 듣는다."

청각은 가장 멀리서 오는 감각이자, 그 파동이 멈춘 뒤에도 가장 늦게 사라지는 감각입니다.

글쓰기의 첫 단계는 바로 이 자기 목소리의 거리를 조절하는 일입니다. 소리는 관계의 본질을 공유합니다.

가까워짐, 멀어짐,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반향(메아리)의 간격.


1. 공명의 문장학 — 문장은 울림의 한 형태이다


글쓰기에서 의미보다 먼저 오는 것은 울림(음색·톤)입니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에게 시가 그러했듯, 문장은 독자 내부에서 잊혀진 존재의 진동을 일으키는 구조입니다.


이 진동이 독자의 내면과 부딪힐 때 비로소 반향(la résonance)이 발생합니다. 반향은 그저 메아리(Echo, 외부적 현상)처럼 의미를 머리로 이해하는 행위로 작용하지 않고, 대신 문장의 리듬과 톤이 독자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나 무의식을 건드려 증폭되는 내부적 울림입니다.

짧은 문장은 금속성의 타격음처럼 명확한 각을 만들어 직관적인 본능을 건드리는 반향을 일으킵니다.

(예: "나는 돌아섰다. 그게 다였다.")

긴 문장은 관현악의 쉼표처럼 느리고 깊은 곡률을 형성하여 사색적 반향을 유도합니다.

(예: "그녀는 문이 닫히고 난 후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말해지지 않은 문장의 잔향을 남겼다.")



쉼표는 숨결이자, 파동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호흡의 정지점입니다. 문단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는, 하나의 완결된 울림입니다. 좋은 글은 ‘읽힌다’기보다 ‘들린다’는 감각적 전이를 만들어냅니다.


짧은 문장은 금속성의 울림, 긴 문장은 깊은 호흡으로 번진다.


2. 목소리의 거리 — '어디서 말하느냐'가 문체를 결정한다


글의 진짜 주제는 언제나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떤 목소리로 말했는가’에서 드러납니다.

1인칭 화자는 귀 가까이서 속삭이는 소리입니다. 감정을 날것 그대로 전달하며, 독자와 화자의 경계를 풀어버리는 촉각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3인칭 화자는 방의 반대편에서 울리는 중성적 음색입니다. 감정을 한 걸음 물러서게 하고, 관찰자의 거리를 만들어 독자가 반향(resonance)을 구성할 여지를 제공합니다.


화자의 거리는 울림의 품질을 결정합니다. 너무 가까운 목소리는 독자에게 청각적 피로를 주고, 너무 먼 목소리는 독자에게 반향을 만들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화자의 거리를 조율하는 일은 문체가 지켜야 할 균형입니다.

말의 위치가 정서의 온도를 결정한다.


3. 침묵의 기술 — 들리지 않는 것이 문장을 지배한다

청각에 의한 글쓰기의 핵심은 ‘들리지 않는 부분’입니다. 소리의 윤곽이 사라진 후, 독자의 내적 귀가 머무는 지점.

침묵은 독자가 감정과 의미를 스스로 구성하게 하는 공간입니다. 은유의 여백, 말하지 않은 결론, 끊긴 문장 — 이 모든 것이 침묵의 기술입니다. 바슐라르적 관점에서, 그것은 곧 해석을 위한 여백의 공간이자, 반향이 증폭되는 그릇입니다. 외부의 소리가 멈추는 침묵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이 침묵 속에서 문장은 독자의 내면으로 진입합니다.


은유의 여백은:

문장이 완성되지 않은 채 남겨진 미결의 공간은 독자의 현재 감정이 투사되어 문장을 완성하게 만듭니다

끊긴 문장은:

갑작스러운 중단은 '청각적 충격'을 일으키며, 소리가 끊어진 자리에서 '말해지지 않은 진실'이 독자의 무의식을 울리게 합니다.



침묵은 문장의 그림자이자, 문장의 격입니다. 소리의 윤곽이 사라질 때, 비로소 독자의 해석 가능성이라는 반향의 공간이 열립니다.


말해지지 않은 공간에서 메아리는 커진다.

4. 감정의 주파수 — 글마다 고유한 음향대가 있다


모든 감정에는 고유한 음향대가 있습니다.

상실감은 저음역대, 분노는 고주파, 고독은 무음에 가까운 미세한 떨림으로 다가옵니다. 글쓰기는 이 감정의 주파수를 조정하는 행위입니다.

감정이 너무 크게 들리면 문장은 과열되어 불협화음을 만들고, 너무 희미하게 들리면 독자는 공명을 느끼지 못합니다. 두 가지 모두 피로를 유발합니다. 문장은 결국, 마음의 음역대를 조율하는 도구입니다.


감정은 소리보다 먼저 진동한다.


5. 문장은 결국 하나의 악기다: 감각의 교차로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의 소리를 조율하는 일입니다. 좋은 문장은 독자 내부에 ‘반향’을 남깁니다.

글쓰기의 목적은 의미 전달만은 아니라, 독자의 몸 전체를 통과하는 울림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글은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서 완성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듣느냐가, 문장이 어디에 닿는지를 결정합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3화피부의 문법: 촉각으로부터의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