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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의 문법: 촉각으로부터의 문장

나는 손끝의 기억으로 문장을 쓴다

“나는 손끝의 기억으로 문장을 쓴다.”

촉각은 가장 내밀한 문장과의 대화입니다. 뺨에 스쳐가는 바람의 온도, 키보드의 미세한 저항감, 손목을 감싼 금속의 차가운 질감, 거울을 닦을 때의 액체 위를 미끄러지는 유리의 낯선 감각—그 모든 촉각적 징후가 글자의 모양을 형성합니다.

이 회차는 피부와 언어의 경계, 그리고 ‘글쓰기의 물질적 질감’을 다룹니다.



문장은 사고의 연장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몸의 표면에서 반사된 감각의 흔적입니다. 감정은 피부에 먼저 닿고, 사고는 그 뒤를 따라옵니다.




감정의 온도와 문체의 밀도


촉감은 기억보다 빠릅니다. 우리는 온도를 통해 먼저 정서를 알아차립니다.

따뜻함은 신뢰로, 차가움은 거리감으로, 미묘한 습기는 불안의 윤곽으로 전이됩니다.

문장은 이 온도의 차이를 그대로 품습니다.

냉정한 문장은 수술 도구처럼 투명하고 단단합니다. 뜨거운 문장은 피부의 경계를 허물고 흐르는 열처럼 쉽게 구겨집니다.

좋은 문장은 피부의 체온과 거의 같은 온도를 가집니다.

읽는 순간, 그것은 논리보다 먼저 피부로 다가와 침범하지 않고 체온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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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생각하는 글쓰기: 피부 자아를 재봉하다


생각은 머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타이핑하는 손끝의 압력, 펜촉과 종이의 마찰열—그 미세한 저항감에서 이미 사고가 태어납니다. 문체란 결국 촉감의 리듬입니다.

나는 종종 문장을 ‘쓴다’기보다 ‘만진다’고 느낍니다. 어떤 문장은 벨벳처럼 부드럽고, 어떤 문장은 모래처럼 까끌거립니다. 그 질감의 차이가 사고의 결을 만듭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디디에 앙지외의 '피부 자아(Le Moi-Peau)'를 만납니다.

프랑스 정신분석가 디디에 앙지외는 ‘피부 자아’를 통해 인간이 몸의 경계를 자아의 경계로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피부는 단순한 신체 기관이 아니라 자아와 세계를 나누는 최초의 심리적 봉투(enveloppe psychiqu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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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장이 곧 피부입니다. 문체는 외부의 무질서한 감정적 침입으로부터 단어라는 실로 재봉된 심리적 직물입니다. 문장의 경계는 외과적 봉합선과 같습니다. 문장의 경계를 어디에 두느냐가, 내면의 출혈을 어디까지 세상에 허락할지 결정합니다.


설명 과잉의 문장이나 감정의 과열은, 피부 자아가 자신의 온도를 조절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체온계의 붉은 경고와 같습니다.


논리는 이성의 결과지만, 촉감은 이해의 전조입니다. 감각적 글쓰기는 손끝으로 세상을 재는 일입니다.



몸의 문법으로 남는 문장


좋은 문장은 설명보다 감촉으로 기억됩니다.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서명입니다.



글쓰기는 이성의 결과가 아니라,

피부의 문법은 제 글쓰기의 또 다른 출발점입니다. 그것은 피부가 세상에 남기는 단 하나의 잔열입니다.


그 열이 사라진 자리에서 문장의 온기는 고독하고 완전하게 머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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