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스펙트럼이 변색되는 순간
몸은 하나의 정밀한 측정 장치입니다. 우리의 감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내러티브입니다.
우리는 청각(Hearing)으로 시작합니다.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해 오지만, 가장 늦게 사라지는 감각입니다. 문장이 사라져도 그 파형은 남습니다. 그것은 자아와 세계 사이의 음향적 거리를 측정합니다. 파동이 빨라질 때 심장은 속도를 내고, 파동이 멈추면 모든 시간의 봉합된 선이 열립니다.
후각(Scent)은 그 거리를 해석합니다.
그것은 존재의 잔여물로 도착하며, 머물기를 거부했던 것들의 흔적입니다. 향은 유보된 판결처럼 기능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순간에 대한 순결하고 끊어지지 않은 기록입니다. 그것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마음의 가장자리를 맴돕니다.
그리고 시각(Sight), 진단 시약처럼 작동하는 감각입니다. 빛은 일종의 정서적 평가입니다. 빛의 눈부심, 습도, 각도—이 모든 것이 세계 청사진의 명료도를 결정합니다. 빛은 단순히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조적 무결성—이 조형물이 무너지지 않을 것인가—를 평가합니다.
겨울의 거실은 종종 방 안에서 가장 조용한 지진이 발생하는 장소입니다.
나는 스탠드 램프 하나만 켜둘 때가 많습니다.
천장의 백색등은 감정을 해석하기엔 너무 잔혹한 조명을 갖고 있어서, 그 따뜻함 없는 흰빛이 나의 표면을 잔인하게 드러낼 때면 오히려 나는 나 자신을 “보는” 데 실패합니다.
플로어 스탠드 램프의 빛은 다릅니다. 그 빛은 물속에서 오래 머물다 올라온 금빛 알갱이처럼 천천히, 그리고 특정한 방식으로 확산됩니다. 그 빛은 사물의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그 경계를 따라 조심스럽게 감쌉니다. 그러나 완전히 감싸지 않습니다. 빛은 언제나 가장자리를 남깁니다. 그 남겨진 가장자리가 바로 고독의 실루엣입니다.
나는 종종 그 불빛 아래서 글을 씁니다. 따뜻한 듯 차갑고, 차가운 듯 다정한 빛. 손끝은 따스하지만, 가슴은 약간 식어가는 이상한 온도의 분포 아래.
이것이 고립의 온도입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결핍의 감정이 아니라, 나의 체온과 방의 온도가 서로 어떤 거리를 유지한 채로 함께 존재하려는 상태. 이 고립은 상실의 그림자가 아니라, 오히려 나와 공간이 안전하게 동거하기 위한 가장 중립적이고 조용한 합의처럼 느껴집니다.
빛은 그 합의를 조율하는 악기입니다. 조명 스위치는 음악의 첫 박자입니다. 빛이 천천히 올라오는 동안, 내 마음이 역시 늦게 따라올 것을 알고 몸은 조용히 숨을 고릅니다.
마지막으로, 촉각(Touch)은 다른 모든 감각들이 추론했던 것을 확인하고 봉인합니다. 경계는 느껴지기 전까지는 현실이 아닙니다. 촉각은 분리를 봉인합니다. 문서, 벽, 그리고 혼돈을 막아내는 피부 자아(skin-ego)의 떨리는 경계를 확증합니다.
하지만 이 감각들은 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해석의 오케스트라를 형성합니다.
청각은 존재의 메트로놈을 설정하고.
시각은 현실의 기하학을 초벌하며,
후각은 사라진 순간의 잔여물을 보존하고.
촉각은 자아의 경계를 검증합니다.
글쓰기는 이 감각적 데이터들을 조화시키는 행위입니다.
나는 기초적인 논리를 정렬시키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붕괴의 순간을 정밀하게 기록하기 위해 씁니다. 그 쉼표는, 다음 리듬이 시작되기 전, 이 고요한 박자 속에서 잠시 떠오릅니다.
기록의 시스템은 유지됩니다.
감각의 번역은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