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Black Swan: 권력에 갇힌 욕망의 심리

욕망이 허락되지 않은 여자

I. The Shadow of Desire — 욕망이 허락되지 않은 여자


우리는 사랑, 기억, 욕망을 해석하면서 살아가지만 결국 남는 건 늘 ‘나는 누구였을까’라는 조용한 질문이다.


이 시리즈는 그 질문을 영화의 장면 속에서 다시 꺼내 보는 작업이다.

감정의 구조, 관계의 불균형, 몸과 무의식의 진실을 조금 더 정확한 언어로 붙잡아보려 한다.


니나는 릴리가 자유롭기 때문이 아니라, 허락 받지 않은 욕망의 형체이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릴리는 니나 안에 억압되어 있던 감정의 외부 투사체이다. 그녀는 니나가 되지 못했던, 그리고 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던 모든 욕망의 그림자이다.


토마스의 모든 요구는 예술적 조언이라고 볼 수 없다. 여성에게 상반된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키라고 명령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니나는 결국 허용된 여성성과 억압된 욕망 사이에서 자기 몸을 갈가리 찢는 균열을 겪는다.


〈블랙 스완〉에서 가장 잔혹한 것은 니나의 광기가 아니라, 그 광기를 “완벽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버리는 세계인 것이다.

그녀가 두려워한 건 릴리가 아니라, 릴리를 욕망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이었다

II. The Body as Resistance — 몸이 먼저 반항한다


니나의 붕괴는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항상 몸에서 먼저 시작된다.


피부가 갈라지고, 손톱이 살을 파고들고, 등에서 깃털이 돋아나는 환각이 찾아올 때—그 장면들이 보여주는 것은 정신병리가 아니라, 여성의 욕망이 억압될 때 나타나는 신체적 저항(somatic resistance)이다.

토마스는 니나에게 욕망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그 욕망이 "과하다"며 수치심을 주고 통제한다. 이 모순적 명령은 여성의 욕망을 길들이는 오래된 구조이다. 니나의 몸은 그 위계의 모순에 가장 먼저 반발한다. 그녀가 뜯고 벗겨내는 것은 피부가 아니라, 순종이라는 외피인 것이다. 그녀의 욕망은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고 내면으로, 몸으로, 상처로 돌아온다.


〈블랙 스완〉의 공포는 여기에 있다. 니나의 광기는 신체의 언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게 만든 세계가 만들어낸 것이다. 니나가 무대에서 완벽하게 춤출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몸을 희생시키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에 난 상처들은 모두 같은 문장을 말한다: “이건 병이 아니라, 내가 억압당한 방식에 대한 증거이다.”

그녀의 몸은 병들지 않았다. 억압에 먼저 항의한 장기였다.

III. The Cost of Perfection — 완벽의 대가


니나가 마지막에 말하는 “I was perfect.”

이 문장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의 고백이다. 그녀가 완벽해졌다는 사실은 동시에 그녀가 자기 몸을 잃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완벽함은 니나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토마스의 시선, 발레단 시스템의 규율, 그리고 억압적 여성성의 이상이 그녀에게 강요한 모델이다. 그녀가 완벽해지는 순간은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순간이 아니라, 욕망과 고통을 예술의 이름으로 견뎌낸 순간이다.


“I was perfect.” 이 대사는 완벽한 성취가 아닌, 제물의 완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갈라지고, 피가 뜯기고, 피가 흐르는 것을 알면서도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그 상처가 완벽함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임을 이미 내면으로 받아들였다. 그녀의 완벽함은 그녀의 재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법을 배운 결과였다. 토마스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녀의 상처를 보지 못한다. 그는 오직 퍼포먼스만 본다.


니나는 결국 완벽함을 증명했지만, 그 증명은 남성적 권력의 시선 속에서만 유효한 완벽함이다.


“그녀는 완벽했다. 그러나 그 완벽함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보여준다. 여성이 완벽해지는 순간은 스스로를 실현한 순간이 아니라, 자기 몸을 대가로 체계가 원하는 여성을 재현한 순간이다. 그 완벽함의 대가는, 그녀의 생애 전체이다.

완벽함은 성취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녀에게 바라던 형상의 복제였다



Epilogue — 완벽함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니나는 끝내 완벽해졌다. 그러나 그 완벽함은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모습이 아니라, 시스템이 그녀에게 바라던 하나의 형상이었다. 그녀가 무너진 건 약해서가 아니라, 그 무대가 어릴 때부터 그녀에게 “이렇게 춰야 한다”는 단 하나의 그림만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타인의 기대를 더 정확히 기억하며 자란다.

니나의 붕괴는 그 기대가 얼마나 무겁게 쌓여 있었는지 보여주는 표면이다.


완벽함은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은 잠시였다.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꺼지면, 남는 건 자신이 누구였는지 다시 묻는 마음의 빈자리뿐이다. 그녀는 완벽했지만, 그 완벽함은 그녀를 결코 보호하지 않았다.

〈블랙 스완〉이 남기는 것은 거창한 교훈이 아니라, 피부에 남은 차가운 감각이다: 인간은 언젠가 자신이 누구를 위해 살았는지, 찢어진 육체의 봉합선(suture)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


니나는 그 순간을 무대 위에서 맞았을 뿐이다.


'I was perfect'는 그녀의 마지막 승리 선언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완벽히 타인에게 헌납되었다는 서늘한 최종 기록이었다.



조명이 꺼지면 완벽함은 사라지고, 남는 건 ‘나는 누구였나’라는 빈자리뿐이다



keyword
이전 25화Annie Hall : 사랑의 실패를 해석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