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했더니, 나만 혼자 있었다. 1/4
절망편 Chapter 3.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했더니, 나만 혼자 있었다. 1/4
전산세무 자격증을 바탕으로 조그마한 세무사 사무실에 취업할 수 있었다.
면접 볼 때,
말끔하고 멋있게 양복 차려입은 세무사님을 보고 우리 아빠 또래도 이렇게 깔끔할 수 있구나, 느꼈다.
실장님을 보고는 결혼해서 중학생 아이들도 있다고 하시는데 회사 실장 자리에 계신다는 것이 너무 멋있었다.
꼭 나도 나중에 실장님처럼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운이 좋게도 합격을 했다.
실장님같이 대단한 분은 나에게 일을 알려주진 않겠지? 그래도 항상 웃으면서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로 다짐했다.
첫 출근 날, 새로 산 블라우스를 입고, 일찍 가서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7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다.
사무실 도착하니 8시 반이었고 문은 잠겨 있었다. 9시 전에는 누가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문 앞에서 기다렸다.
9시가 돼도 아무도 안 와서 세무사님께 전화를 걸어 여쭤보니
"실장이 말 안 해줬나? 우리 9시 반까지 출근이야."라고 하셔서 "알겠습니다." 하고 끊었다.
좀 더 기다리니 25분쯤에 어떤 여자분이 와서 문을 열길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지만, 그분은 고개만 까딱하고 들어가 버렸다.
들어가서 안 쪽 귀퉁이에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데, 차례로 여자분, 세무사님 그리고 실장님께서 오셨다.
반가워서 웃으며 인사를 드렸더니, 본체만체하시고 세무사님부터 시작해서 선배 두 분까지 인사를 시키셨다.
아까 문 열어주셨던 선배가 잠깐 따라오라고 해서 갔더니 사무실 옆 남녀공용 화장실이었고, 내게 마대걸레를 건네주셨다.
집에서도 화장실 청소 잘하는데 뭐. 그렇지만 집에서는 달리 여기서 청소하면 돈을 벌 수 있으니! 여기도 깨끗이 해야지!
그다음 컵 설거지도 문제 없이 해결했다.
다른 분들이 화장실 이용하면서, 깨끗해진 컵을 사용하면서 "와 정말 깨끗하네!" 라는 말을 혹시나 하지 않을까 계속 귀만 쫑긋 세우고 있었는데,
사무실에 크게 울리는 라디오 소리만 들렸다.
그 때, 아까 문 연 선배가 사무실 열쇠를 줬다.
그리고 매일 아침 세무사님 커피도 잊지 말라 하셨다.
점심시간이 오기 전까지 복사기 트레이에 종이 채우는 법, 파쇄기 쓰는 법, 오는 전화 받고 담당자에게 돌려주는 법까지 배웠다.
내가 이 회사의 일원이 되어 일 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즐거웠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실장님이 벌떡 일어났고 문을 열었던 그 선배도 조용히 일어났다.
그러자 다른 선배가 힐끗 나를 보더니 말했다.
“같이 가요.”
"앗 네네.. "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나섰다.
사무실에서 몇 걸음만 나가면 보이는 조그마한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엔 김치찌개, 제육볶음 같은 익숙한 점심 메뉴들.
선배들도 자연스럽게 김치찌개를 시켜 나도 따라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실장님이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열심히 해. 연차 쌓이면 연봉도 오르고…
혹시 아나, 기장 업무 더 많이 맡게 되면 세무사님이 청소 알바라도 고용해줄지.”
물컵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내려놓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말투가 너무 학생 같았나 순간 걱정됐지만,
그래도 무표정하던 실장님이 살짝 웃는 걸 보고 안심했다.
아, 괜찮았나 보다.
이 회사에서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집밥보다 맛있네요. 전 밥 항상 집에서 혼자 먹었는데...오늘 이렇게 먹으니 너무 좋아요”
괜히 마음이 벅차서, 별것 아닌 말도 자꾸 하게 됐다.
선배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조심조심 따라가며 맞장구쳤다.
“맞아요, 진짜요.”
“와… 대박이다…!”
어색하지 않게 웃고, 눈도 맞추고, 반응도 크게.
내가 너무 말이 없으면 불편해할 수도 있으니까.
좋은 인상 남기고 싶었다.
‘처음이라 어색할 수 있지만, 밝고 예의 바르면 다 괜찮아질 거야.’
자꾸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식사를 다 하고 들어가는 길에
먼저 실장님과 선배님들을 보내놓고
근처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 다섯 개를 샀다.
신이나서 사무실로 들어가 세무사님부터 모두에게 돌리자 실장님은 “이럴 필요 없는데. 아직 첫날이잖아.” 하고 웃으며 말씀해주셔서
또 그게 너무 감사했다.
실장님이 내가 사온 커피를 마시며 콧노래도 부르면서 화분에 물을 주며 말씀하셨다.
"이 화분들 이쁘지? 앞으로 물도 잘주고, 햇빛 좋은 날엔 좀 밖에 꺼내두기도 해. 그래야 잘 자라니까."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웃자, 실장님도 웃었다.
이 후에 선배 심부름으로 우체국도 다녀왔다.
일 하면서 이렇게 가끔 밖에 나올 수도 있고 너무 좋았다!
복합기의 토너 가는 법도 배웠는데, 앞으로 잘 체크해서 우리 회사 분들 일하는데 불편함이 없게끔 해야겠다 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오늘 있었던 일들을 노트에 적어둬야지.
칭찬받았던 말투, 실장님이 좋아하는 커피 취향,
선배들의 말버릇까지도 전부.
나는 이 회사에서 꼭 인정받고 싶었다.
아니,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야, 여기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