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 3부작] 절망편_ chapter 2. 下

그 사람과 있을 때, 그래도 웃을 수 있었다.

by 김대리

절망편 Chapter 2. 그 사람과 있을 때, 그래도 웃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도 진짜 힘들다.
네가 이렇게까지 예민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어.”

나는 왜 늘 감정이 앞서고,
왜 이렇게 불편한 사람일까.

별일 아닌데 혼자 부풀려서 상처받고,
혼자 서운해하고, 혼자 울컥하고.

그러고는, 그가 왜 멀어졌는지 생각도 안 한 채
그저 보고 싶단 마음 하나로 무작정 찾아가선
그 사람 잠까지 깨워놓고.

그는 예전부터 내게 예민하다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나는 별일 아닌 걸로도 무너지고,
혼자 감정에 잠겨서 상대를 못 보고,
내 기분이 나빠지면 세상이 다 나를 미워하는 것처럼 굴었다.

그러니까 결국,
나 같은 애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었던 거다.
감히 사랑받고 싶었다는 그 마음이,
처음부터 틀렸던 거다.

그는 분명 나를 아껴줬는데,
내가 자꾸만 힘들다고 하니까,
결국 그 마음을 지치게 만든 건 나였다.
그러니까,
그의 사랑을 먼저 저버린 건 나였다.

미안하다고 답문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에게 또 폐가 될까 봐 아무 말도 못 전하고
끅끅대며 울었다.

처음 알았다.
아무리 눈물을 참아도
마음이 너무 아프면 끅끅 소리가 난다는 걸.

그리고 또, 처음 알았다.
너무 울면, 눈꺼풀에도 멍이 든다는 걸.

다음 날, 회사엔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커튼은 닫혀 있었고, 휴대폰은 침묵 중이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고, 목도 마르지 않았다.
그 어떤 신호도 몸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단지, 일어나기 싫었다.
출근해야지.
지각이라고 말해야지.
감기라고, 배탈이라고, 아무 말이나 해야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뱅뱅 돌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말도, 손가락도, 그냥 아무것도 안 됐다.
침대 위에서 멍하니 천장을 보며
“그냥 오늘 하루만,”
“오늘만 조금 더 숨고 싶어,”
그런 말만 되뇌었다.

그러다 휴대폰에 알림이 떴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연락 주세요.]
세무사사무소 실장의 메시지였다.

짧고 단순한 문장이었는데,
그 문장을 읽고 나서
갑자기 숨이 막혔다.
숨을 내쉬는 법도,
눈을 깜빡이는 법도 잊어버린 것처럼
온몸이 굳었다.

나는…
정말 회사를 무단결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잠깐, 눈물이 났다.
사랑도 망치고,
직장도 망치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오후 5시쯤,
겨우 일어나 세수를 했다.
거울 속 얼굴은 부어서 눈이 반쯤 감겨 있었고,
눈꺼풀엔 옅은 멍 자국이 번져 있었다.

그래, 어젯밤에도 울었다.
진짜 많이.
목이 아플 만큼, 눈이 저릴 만큼,
소리 내지 않으려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끅끅 울었다.

회사엔 여전히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지금 연락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냥… 하루만 더 숨고 싶었다.
정말 단 하루만.


밤이 깊어질수록,
내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조용히 실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일도 회사에 가지 않으면?
모레까지도 연락하지 않으면?

그 끝엔 뭐가 있을까.
진짜로, 다 끝날까?
아니면… 아무 일도 없을까?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확실한 건,
나는 지금,
회사도 사랑도,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전부 지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이 사실에 또 눈물이 났다.


그랬다...


나는 그 사람과 있을 때, 그래도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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