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 3부작] 절망편_ chapter 2. 上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래도 웃을 수 있었다.

by 김대리

절망편 Chapter 2.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래도 웃을 수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도서관이었다.
필요한 책을 찾느라 서가를 오가고 있을 때, 누군가 먼저 다가와 말했다.
"찾는 책 있어요? 도와드릴까요?"

처음엔 경계심이 들었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어 음료수를 건넸다.
그러자 그가 연락처를 줬다.

나이는 스물 여덟이라고 했고, 웃으며 말했다. "혹시 ○○대 나왔다는 거, 말했었나?"

그런데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사라졌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야 했다.

여러 선배들의 말을 듣고,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세무 기장 업무를 준비했다.

연봉이라도 조금 올리려고 전산세무 자격증을 공부 중이었다.


자격증을 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회계사무소에 취업했고,
어느 날 그에게서 불쑥 연락이 왔다.


"아빠 차 끌고 나왔는데,잠깐 드라이브할래요?"라고 물었다.

망설이다 따라나섰고, 바닷가 근처의 조용한 카페에 도착했다. 창밖으로는 파도가 잔잔히 밀려들었고, 실내에는 조용한 음악이 흘렀다. 그는 문을 열어주고, 의자를 당겨주고, 커피를 건네줬다.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아니, 애초에 누가 나만을 위해서 이렇게 신경 써준 적이 있었나?

나는 처음으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아니, 존재감 있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배려 같은 걸 그는 나에게 줬다.

그와 있으면 웃게 됐다.
내가 말이 없어도 나밖에 안보인다는 듯 나만 바라봐줬다.


그가 나를 예쁘다고 하면 진짜 그런 것 같았고, 내가 한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데 답변도 항상 곰곰이 생각 한 후에 정성스레 해 준다는 것이 고마움을 넘어 감동이었다.

게다가 그의 말은 늘 옳았고, 나는 그게 지적으로 느껴져서 가끔 그 사람 같은 어른이 돼야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린 사귀게 됐다.


퇴근 후 항상 도서관 근처 분식집에서 그가 좋아하는 김밥, 라면과 돈가스를 먹고 그 옆에 자그마한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씩 했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손잡고 마주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가 다른 곳은 안보고 나만 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정도로 행복했다.

그는 나에 대한 배려가 넘쳤다.

“넌 아직 어려. 모르니까 그래.”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난 그냥 말한 건데.”
“나니까 네 옆에 있어주는 거야. 다른 사람이면 벌써 떠났지.”

이렇게 냉정하게 나를 위한 얘기도,
모자란 나는 처음에 무척이나 섭섭해했는데,
그럴때마다 그는 다시 아주 친절하게 왜 나를 위한 말인지 똑똑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 그에 비해 나는 정말 어렸고, 모르는 것도 많고, 예민하기까지 했다.
옆에 있어주는 그에게 너무 고마워서 항상 그에게 잘하려고 노력했다.

그럼, 그는 명문대 출신인데 틀린 말을 할 리도 없고, 똑똑하니까 이렇게 배려심이 넘치는 거지.

사귄 지 보름쯤 지났을 무렵,
그 사람이 힘든지 술 한잔 하자고 해서 처음으로 포장마차를 가봤다.

한입 먹어 본 우동이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고 싶었지만, 연거푸 술을 따라 마시는 그가 안쓰러워 젓가락을 놓았다.

가만보니, 예전보다 야윈 것 같아서 이제야 알아채는 내가 너무 한심해보였다.
그 때 내 술 잔에도 소주를 따라주며 그가 인생 참 쓰다고, 소주처럼 쓰다고, 같이 마시자 했다.

달큰씁쓸한 술이 내 목을 뜨겁게 적실 때,
그 사람은 처음으로 자신을 못알아본 회사 이름들을 나열하며 자기를 안뽑아서 후회할 거라고, 인재를 못알아 본 회사들이라 금방 망할 거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었기에 그동안 참아왔던 그 회사들 욕을 실컷해주고 그를 보니, 혼낼 줄 알았던 그가 베시시 웃는다.
그가 웃으니 나도 좋아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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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의도는 절망편 이후 희망편을 보시도록 하려고 한권에 번갈아가면서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헷갈리실 것 같아서 아예 분리합니다.

부족한 글 보러 오시는 분들께
혼선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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