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 3부작] 절망편_ chapter 3. 3/4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했더니, 나만 혼자 있었다. 3/4

by 김대리

절망편 Chapter 3.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했더니, 나만 혼자 있었다. 3/4


그즈음, 엄마는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고,
보증금이 모자라다는 말에 내 저축통장을 드렸다.
돈은 내가 속해있는 행복한 회사에서 다시 벌고 모으면 되니, 괜찮다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월급에서 용돈을 안 줘도 되니,
공과금은 나보고 내라고 하셨다.
자동이체만 걸어두라고 내 비상용 카드도 드렸다.


그래도 에스프레소 머신을 생각하면, 괜찮았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사무실에 도착한 날,
모두가 내 자리로 몰려들었다.

“야, 진짜 보냈었구나?”
“어머~ 너 진짜 귀엽다!”
“야 이거 커피 타 먹으면서 일하면 집중 더 잘 되겠다~”

세무사님도 별말씀은 없었지만, 웃으며 나를 쳐다봐주셔서 너무 기뻤다.

처음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엔 고소한 원두 냄새가 났고
나는 자연스럽게 커피 담당이 되었다.

처음엔 그냥 내가 좋아서 탄 거였지만,
이젠 모두의 기대가 담긴 눈빛을 보면
아무 말 없어도 나서게 됐다.

커피를 돌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들 내게 마음을 여는 것 같았고
나도… 가족 같은 분위기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내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차게 행복했다.

그렇게 우리 사무실 사람들과 나는 티타임을 가졌고, 업무에 대해서도, 각자의 사적인 것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친해지니, 어느 정도 스스럼없이 얘기를 할 수는 있게 됐지만, 내겐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거의 들어주거나, 호응해 주는 것이

내가 하는 전부였다.


어느 날 오후, 문 담당이었던 선배가 컵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야, 오늘도 선배가

왜 우리 가장 큰 고객있잖아,

거기에 넘길 것들 또 자료가 잘 못됐는지

업체에서 컴플레인 들어왔나 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또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맞장구였고, 아무 의도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에는 실장님이 선배들이 일 좀 잘했으면 좋겠다고, 업체에게 변명하는 것도 지겹다고 하시길래, 딱히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나는,

"아... 전 열심히 배워서 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무실의 온기가 사라졌다.

눈을 마주쳐도 피하고, 내 말엔 반응이 없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서도, 내가 맞장구 쳐주고 얘기를 하면, 그 순간 조용해졌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아무도 말은 안 했지만,
내가 뭔가 큰 실수를 한 듯이,
다들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티타임에 불리지 않았다.
커피도, 이제는 각자 알아서 먹는 분위기였다.

내가 커피를 취향에 맞게 정성스레 내리고,
사람들에게 돌려도,
"어, 나 이미 있어. 그건 너 먹어"
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내가 웃던 기억들이
모두 날아가버렸다.
사무실 안에서 들리던 라디오는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내 사연은
더 이상 없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둘러싸고 웃던 그날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요즘은 아무도 내게 커피를 부탁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매일 아침, 여느 때처럼
문을 제일 먼저 열고,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복합기에 용지를 채우고,
토너 잔량을 확인하고, 커피를 내렸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모두의 취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어제보다 더 정성스럽게 커피를 만들었다.

컵을 책상마다 조심스럽게 내려두었지만,
돌아오는 건 “어, 난 안 마셔”
혹은 “지금은 됐어”라는 말뿐이었다.

혹시 내가 내린 커피가 식으면 어쩌나 싶어,
잠시 뒤 몰래 다가가 컵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커피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도, 나는 늘 사무실에 남게 됐다.
다들 외출한 사이, 조용한 사무실에서,
삼각김밥을 씹으며 회계 장부에 풀칠을 했다.

문득 문 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려도
나는 귀를 닫고 숫자에 집중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냥 열심히 하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저런 거까지 굳이 하냐”는 말이
내 얘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실장님 책상에 커피를 두었다.
더 노력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조금만 더, 잘하면—
모두가, 예전처럼 웃어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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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써온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위로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에게는—무너지지 않기 위한 작은 버팀목이었습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 이야기를 유료로 전해보려 합니다.

‘절망편’ Chapter 4 – 첫 번째 이야기부터
다음 주말, 유료 공개가 시작됩니다.

계속 함께해주신다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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