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투자
어렸을 적부터 금전적인 여유가 있었던 적은 없다. 여유가 없었지 가난했던 적도 없었어서 언제나 가난과 여유 그 경계에 있었던 것 같다. 내 기준 가난이란 밥을 굶기 시작하면 그것은 가난한 것인데, 내야 될 돈을 못 내고 연체한 적은 여러번 있었지만, 지금까지 돈이 없어서 밥을 굶어본 적은 없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박봉의 안정적인 직장에서 근무하셨었는데, 그 덕분에 나는 삼시세끼 밥을 굶는 일은 없었으나 어릴적부터 여유없는 삶에 대해 체득하게 되었고, 밥 이상을 원하려면 큰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정년까지 다니셨던 아버지 덕분에 나에게는 내 또래들이라면 치가 떨리는 기억으로 남았을 수도 있는 IMF와 관련된 경험이 없는데, 우리 집은 IMF가 오기 전에도 여유가 없었고, IMF 도중에도 여유가 없었으며, IMF가 끝나고 나서도 여유가 없었다. IMF 시기에도 직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계속 다니셨던 아버지 덕분에 빠듯하지만 안정적인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 이 점에 대해서는 참으로 감사하다. 불안하고 예민한 내 기질은 선천적인 것이지 가정환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여유없는 삶이 습관화되면서 오랫동안 궁상맞게 살아왔는데, 어렸을 적부터 돈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체득해왔던 것 같다. 부모님은 돈을 아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아버지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면서도 추가 소득을 위해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고 출근을 하셨고, 어머니는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셨기 때문에 돈을 많이 쓰면 밥을 굶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여유가 없는 삶은 나에게 돈에 대한 결핍을 만들어주었고, 그 결핍은 40세가 되도록 아직도 채워지지가 않아서, 돈과 나는 아직도 친해지지 못하고 여전히 아웅다웅 하고 있는 중이다.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월급도 꼬박꼬박 받고 있지만, 여유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면 나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은데, 오랫동안 체화된 돈에 대한 결핍으로 마음이 가난해서인지 돈을 생각하면 불안한 감정부터 떠오른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처럼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돈으로 메우고 싶은데, 이것들을 상쇄할 만큼은 돈이 없기 때문에 결국 돈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야 돈이 많고 적은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마흔살이 되도록 내가 돈이 없는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인 것만 같다. 어렸을 때야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마흔살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것은 과거에 경제적 선택을 잘못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의 내가 경제적 여유가 없음을 곱씹어보기 시작하면 한없이 우울해지는데, 지금 나의 경제력은 과거의 내가 살아온 과정의 결과일 것이고, 이것은 인과관계가 확실하다. 나는 언제나 돈에 대해 불안해하면서 살아왔고, 직장생활을 한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재정적인 여유는 없다. 돈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위축이 되는데, 특히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돈이 많은 것을 보면 부럽다. 빈손으로 부를 일궜다는 또래의 사람들을 보면 열심히 살았음에도 부를 이루지 못한 스스로가 초라해진다. 인생을 살면서 내 나름대로의 쉽지 않은 결정들을 내리며 열심히 종종거리며 산 것 같기는 한데, 왜 나는 아직 손에 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도 않은 것이 나는 여유가 없을 뿐,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많은 물건을 가지고 불편함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 부족한 것이 없는데, 나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없는 결핍도 만들어내가면서 부정적이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돈에 대한 결핍을 가지고 있었고,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매사에 돈을 생각하면 금액을 떠올리게 되는데, 돈에 대한 감사함이나 유용함, 실용성보다는 금액부터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살다보니 돈을 돈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언제나 돈과 함께 돈에 대한 피곤함, 열등감, 두려움이 함께 떠오른다.
과거에는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을 사용하는 나의 즐거움이나 사용가치와는 상관없이 가격부터 봤다. 가격을 보고 안심이 되고 가격이 납득이 되어야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서 과연 나에게 어울릴 것인가, 과연 내가 오래 잘 쓸 수 있을 것인가, 이 가격을 주고 사더라도 나는 만족하면서 이 물건을 사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경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무조건 돈이 얼마 드는지부터 따지고 나서야 그 경험을 할지 말지를 결정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가성비를 따지면서 살았는데, 가성비를 따지면서 사는 동안 나는 그 소비에 대해서 만족할 수 없었다. 가성비 있게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샀다고 기뻐하는 순간은 매우 짧았고, 돈을 더 보태더라도 더 좋은 것을 샀더라면 더 마음에 드는 물건을 아끼며 더 오래 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길었다. 물건은 물건으로 보고, 경험은 경험으로 봐야되는데, 돈의 노예로 살면 금액을 먼저 보고 물건이나 경험으로 부터 오는 만족감이나 행복, 즐거움은 그 뒤에 딸려오는 부록같이 생각하게 된다. 그 어떤 것을 봐도 돈의 거래일 뿐, 거래 대상의 가치를 따질 수 없게 되며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난 어지간히도 돈에 체한 사람처럼 살아왔었던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언제쯤 경제적 여유가 생기는 것일까. 사실 내 꿈은 아주 오랫동안 파이어족이었는데, 그 꿈을 위해서는 전혀 준비된 바가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착실하게 준비하면 10년 후에나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10년 후에는 50세가 되니 파이어족이 아니라 그냥 은퇴할 나이가 되서 은퇴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파이어족이라고 할 수도 없게 될 것 같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대부분 돈이라서 결국 내 꿈은 결국 돈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돈을 목표로 삼는 순간 인생이 불행해졌기 때문에 목표와 돈은 분리해서 생각하려고 한다.
금액에 내 행복을 결부시키는 순간, 주가가 오르듯이 금액이 커지면 행복의 크기도 더 커지겠지만, 반대로 떨어질 경우에는 행복의 크기도 줄어들면서 내 행복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변인이 내가 아닌 돈이 되어버린다. 한마디로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몇번쯤 스스로 돈의 제물이 된 후, 마음 속 어두운 공간의 바닥을 여러번 찍고 오니 이렇게 살다가는 안되겠다는 것을 깨닫고 돈과 나를 분리하려고 해왔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돈에 대한 짝사랑을 해왔기 때문에 돈과 나를 분리하는 것은 사실 나를 구성하는 상당부분을 떼어내 버리는 것과 같지만, 나의 마음을 영원히 받아줄리가 없는 돈 이라는 대상에 내 전부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적인 여유를 달성하겠다며 사회초년생때부터 주식투자를 해왔는데, 아직 의미있는 수익은 벌어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주식으로 돈을 벌어서 부동산도 산다던데, 나는 진짜 겨우 치킨한마리 값만 벌더라도 주식을 매도해버리는 소심한 성격이라서 정말 치킨값 정도만 벌어왔다. 하루에 치킨값이라도 벌게 되면 이게 어디냐 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주식을 매도해버리는 소심한 투자자이다. 그리고 이렇게 팔아버린 주식은 내 오랜 기다림을 비웃듯이 내가 팔기만 하면 폭등했다. 내가 치킨값을 벌며 만족할 때, 다른 사람들은 같은 종목에서 자동차나 집을 얻었기 때문에 주변사람들과의 자산 격차는 나를 항상 초라하고 작게 만들었다. 덕분에 회사를 때려치지도 못하고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있어야 되는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해서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불행해진다. 여유가 없다고 해서 스스로를 가진 것이 없는 불행한 사람으로 점찍어버리면 내가 지금까지 모아온 작고 소중한 코묻은 돈들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리는데, 내가 지금까지 울고불고 애쓰면서 지켜온 서울 외곽의 낡았지만 작고 귀여운 집이라던가, 10년 이상 연식이 된 오래된 중고 자동차라던가, 이직부터 대학원,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30대를 함께 한 10년 된 노트북이라던가, 5년도 더 된 휴대폰이라던가, 유튜버가 되겠다며 중고로 산 액션캠이라던가 하는 이 소중한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내 피와 땀이 서려있는 돈으로 산 한창 마이너스를 찍고 있는 오래된 주식이라던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잔잔바리 내 주식들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린다.
돈과 끊임없는 밀당을 하면서 마흔살이 되고 보니 돈이야 말로 내 마음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투자로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경제적 그릇이 큰 사람도 아니고, 장기투자를 할 수 있을 만큼 인내심이 강하지도 않다. 아마 단기간에 큰 돈을 벌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즘 같이 모든 자산의 가격이 오른다는 세상에서 돈을 못버는 유일한 사람이 된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은 익숙하다. 나는 언제나 모든 자산에 관심을 갖고 금융소득을 노려왔지만, 한결같이 실패해왔다. 나는 자산시장의 가격상승의 수혜를 입은 적이 없고, 이번에도 돈이 복사된다는 이 자산가격 상승의 시대에 나 혼자 콩알만큼 모아놓은 현금을 손에 꼭 쥐고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도 투자결정을 내리기 전에 세번은 더 참자고 결심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매도 결정을 내리고 나니 자산시장은 나를 비웃듯 내가 매도한 자산이 그제서야 폭등했다. 내가 인생을 걸고 영혼까지도 끌어와서 매수한 부동산은 유튜브의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그 지역은 쳐다도 보지말라는 예시 1위로 사용되고 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50만명인데 그 지역 부동산은 망했으니 쳐다도 보지 말라고 하면 너무한거 아닌가 싶다. 또한, 수중에 있는 고작 몇백의 현금을 쥐고 투자하고 싶어서 간질간질한데, 이제 내가 투자하기 시작하면 조정이 시작되는 것을 지난 15년간의 경험으로 알게 되어 이번에는 진짜 꾹 참고 있다. 치킨값이라도 벌려고 하는 주식인데, 요즘같은 돈이 복사된다는 대호황의 시대에 치킨값만 벌고 물러나서 씁쓸하다. 이렇게까지 투자로 돈을 못버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투자의 성과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투자를 안할 수는 없다. 비록 투자그릇이 겨우 치킨값 정도로 작은 투자자이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 다음 자산가격 상승시기라도 그 가격상승의 파도를 제대로 올라타기 위해서라도 자산시장에서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소심하게 찔끔찔끔 찔러볼 것이다. 이미 마흔살인데, 이제부터 시작이라 부자 중년이 되기는 글렀고, 부자 장년이라도 되고 싶다.
어쨌거나 돈을 모으는 과정은 성취감을 얻게 되는데, 자산이 불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굉장히 즐겁다. 이미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자산이 조금 더 늘어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겠지만, 가진 것이 거의 없을 때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는 극적일 것이다. 1억이 10억이 될 때의 성취감은, 10억이 20억이 될 때의 성취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돈이 없는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자산의 성장률을 맛볼 수 있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빠듯하고 궁상맞은 순간들이야말로, 이미 부자가 된 사람은 절대로 다시 느낄 수 없는 가장 재미있는 구간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지금은 여유없는 팍팍한 중년이지만 나중에 마음의 여유를 갖춘 장년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절약하고 여력이 되면 자산에 투자해 나갈 수밖에는 없다. 나이가 들면서 한가지 알게 된 것은 단기간에 여유가 있는 삶으로 곧장 가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자산격차에 대한 좌절을 하기에는 그 과절이 너무 무용하기에 그냥 이것이 내 인생임을 받아들이며 10년 후에는 주변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이 살면서 가장 여유가 없는 시기라서 지금부터는 여유가 조금씩 생길 일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면, 또 견딜만 해진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될 것이고 그 때 돌아보면 가장 여유가 없는 지금이 가장 재밌고, 중요한 시기이다. 지금은 팍팍하게 느껴지더라도, 이룬 후에 지금을 떠올려보면 지금이 가장 도파민이 터지는 시기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즐기는 것이 남는 것이다. 돈을 쓰지 않고도 도파민이 터진다면 이건 반드시 즐겨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