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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쓸 수밖에 없어서요

어떤 수용

by 서윤재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쓴 것이 어느새 30편 가까이 되었다. 몇달 전부터 일주일에 한편씩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쓰면서 생각을 글로 적어내는 것이 즐거웠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속시원히 털어놓으며, 이런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써서 나는 구원받고 있지만, 내 글이 어서 빨리 성장해서 자리를 잡고 돈을 벌어오길 바랬다. 글로 인정받고 싶었다. 언젠가 내 글이 발견되기를 바라며, 내 글이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생기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 그렇게 어느 덧 브런치스토리에 30개 가까이의 글이 쌓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이어도 나 혼자만의 마감을 하면서 어떻게든 글을 써서 올렸다. 어느새 이렇게 글이 쌓였다.



처음 시작은 브런치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해서였다. 공모전에 출품하면, 여러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브런치스토리의 글을 싹싹 훑어볼테니, 어쩌면 내 글을 발견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글의 목적은 누군가에게 도달하는 것이었고, 도달 후에는 돈을 벌어오길 바랬다. 내 글이 도무지 실현될 것 같지 않은 자아를 실현해주길 바랬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보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나는 글에 바라는 것이 많았다. 내 글이 내가 있을 자리를 만들어주길 바랬고, 부수입을 얻어다주기를 바랬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글쓰는 것이 버거워 글 쓰는 것을 내려놓을까 몇번이나 생각했었다. 혼자만의 마감이어서 이번 주는 쉬어갈까 몇번이고 생각하다가 뭐라도 쓰자 해서 올린 글이 어느새 이렇게 쌓였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글쓰기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글쓰기가 어려워서 이 글쓰기를 몇번이나 놓을 뻔 했다.



요즘 책이 잘 읽혀서 책을 많이 읽고 있는데, 세군데의 도서관에서 상호대차과 예약을 이용하면서 책을 원없이 읽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하나같이 너무 잘 쓴 글이라서 내 글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나를 이렇게 감동시킨 이 글과 내 글이 같은 선상에 설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졌다.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은 내가 생각보다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자기비판이었고, 아무도 내 글을 읽고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검열이었다. 내 글은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것일까 생각하다가, 독자가 왜 내 글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과연 글을 계속 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몇번이고 감동할 때마다 멋진 글에 대한 감탄은 내 글에 대한 비판으로 돌아왔다. 이런 사람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이 거대한 글의 세계에 내 글은 초라하고 빈틈이 많아보인다. 이렇게 글을 잘쓰는 사람들이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데, 누군가 내 글을 발견해주길 바라면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계속 써서 올리는 것이 과연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을 누가 봐줄까, 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내 글이 조금이라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전기낭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을 하게 된다면 종이낭비가 되어 나무에게 미안할뻔 했는데, 출간까지는 갈 길이 먼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내가 지금 뭐 대단한 글 쓰자고 이 전기를 쓰면서 브런치스토리의 서버용량을 차지하고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목표를 분명히 했었다. 내 목표는 출간작가가 되는 것이기에 브런치 스토리 안에서의 반응을 목표로 하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좋은 글을 쓰면 구독자와 좋아요는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브런치스토리에는 너무나도 훌륭한 작가분들이 많고, 작가분들은 하나같이 수많은 좋아요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브런치스토리는 누구에게 열려있었지만, 누구에게나 좋아요와 구독자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브런치스토리에도 내가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 브런치스토리에서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면 글도 잘 쓰는데, 한결같이 성실하여 꾸준하게 글이 올라온다. 내 자신과 비교를 안하려고 해도 비교가 된다. 왜 내 글은 메인에 노출이 되지도 않고 주목받는 글이 되지도 못하는 것일까. 사진이 없어서 그럴까? 아니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내 멋대로의 글이어서 그럴까? 메인노출에 신경쓰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도대체 메인 노출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100편을 올려도, 200편을 올려도 메인 노출은 되지 않을 것 같다.



주목받지 않은 글을 써나가는 것이 가끔은 고독하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은 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괜찮은데, 시간이 한참 흐른후에도 내가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면 어떻하지 싶은 생각에 막막해졌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30편 가까이나 올렸는데 지금처럼 반응이 없다면 이제 그만 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지금까지 여기에 글을 올린 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글이 써지다가도 막힌다.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 하는데, 내 일기를 브런치스토리에 올려서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인가 싶은 생각에 이것을 계속 하는 것이 맞나 끝없는 생각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글을 쓰겠다고 너무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더 나은 인생을 위해서는 글보다는 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지. 글 쓰는 것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이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들과 나를 비교하다보면 내 글이 너무 초라해진다. 비교를 하다보면 끝이 없어서 다른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과 경외를 과연 내 책에서도 구현할 수 있을까. 내 책을 독자들이 읽을까. 독자가 있긴 있다면 나는 그들의 시간을 내다버리지 않도록 그들에게 내 글을 읽는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인가. 끝없는 비교지옥에 빠져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 맞나. 허공에 쏘아대고 있는 것 같은 내 글은 과연 응답을 받을 것인가. 또 다시 고민의 굴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는 스스로 자문해보는데, 그래서 그럼 글을 그만 쓸거냐고 물어본다. 그럼 글 안쓸거야? 아무도 봐주지 않는 것 같고, 반응이 없고, 허공에 계속 글을 쏘아올리는 것 같아서 이제 그만 쓸거야? 라고 자문해보면 '아니, 아무도 봐주지 않더라도 나는 글을 계속 쓸거야.' 라는 결론에 이른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글을 쓰더라도,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전혀 전달되지 않는 진공상태의 우주에 글을 하나씩 쏘아올리는 듯한 느낌이어도 글을 계속 써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계속 써나가야 하는 것이 맞는지를 자문해보면 막막해지는데,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 글쓰기를 포기하면 나는 나중에 또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스무살 때부터 글쓰기를 여러번 했다가 여러번 내려놓고 포기하고는 했었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글을 쓰겠다고 했다가 포기한 것이 어느새 20년이나 된 것이다. 그렇게 포기를 했는데도, 그렇게 또 다시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이번에 글쓰기를 포기하더라도 나중에 또 글쓰기를 하고 싶어질 것이 분명하다. 회피하다가도 어쩔 수 없이 다시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이 반응없고 허공에 쏘아올리는 외침 같은 이 글을 계속 써나가야 할까 자문해보면, 글을 그만 써야 할 이유를 한 100개 정도 찾다가 결국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1개의 이유 때문에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지 않으면 지금의 나에서 어떤 부분이 떨어져 나가서 지금과 같은 상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만 같다. 글을 쓰지 않아도 살아가는 것에 지장은 없겠지만, 글쓰기가 채워주는 나의 어떤 부분이 유실될 것만 같다. 마음 속 꾹꾹 눌러담은 감정과 생각들을 털어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니까 나는 어떻게든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글을 안써도 되는 이유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단 한가지 이유가 이겨서 역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브런치 10주년 팝업 <작가의 꿈>에 다녀왔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이 엄청 많았다. 브런치팀의 구독자수는 2025년 10월 기준 267.4만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꿈을 갖고 글을 쓰고 있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브런치 작가수가 9.5만명이라고 한다. 누적 게시글수가 800만개라고 한다. 작가 1인당 글 수는 약 84개이다. 내가 나만 좋아하는 글을 쓰자고 글을 쓰는 것이 가뜩이나 뜨거워진다는 이 지구에서 휴대폰과 노트북으로 글을 쓴답시고 발열을 발생시켜 이 지구를 더 뜨겁게 하는 것은 아닌가, 전기낭비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브런치의 수많은 작가들이 평균 84개의 글을 쓸 동안 나는 30개도 쓰지 않은 것이다. 내가 몇개의 글을 더 써봤자 브런치 작가분들의 평균치에도 못 이르는 글의 개수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지구에 아주 조금의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다.



브런치 10주년 팝업에서 지금까지 출간된 수많은 책을 보면서 그 책들의 규모에도 압도되었지만, 작가라는 단어만 들어도 반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책 꽤나 좋아하고, 글 쓰기 꽤나 좋아하는데, 나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책을 엄청 좋아하고, 글 쓰기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내가 쓰는 글이 전기낭비는 아닐까, 내 쓸모없는 글이 브런치플랫폼의 자원을 쓸데없이 잡아먹지는 않을까 했던 생각들은 지나친 고민이었다. 내가 앞으로 글을 백편, 천편을 넘게 쓰더라도 브런치스토리 서버는 끄떡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브런치 작가들이 쓰는 평균 글의 개수의 반도 안썼기 때문에 내 글이 쓸모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할 자격도 없었다. 뭘 꾸준히 쓰고 그런 말을 해야지 써놓은 글이 30개도 되지 않는데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하찮게 느껴졌다. 쟁쟁한 브런치스토리 대선배님들이 보기에는 초보작가일텐데, 초보작가 주제에 글을 계속 써야 하나 고민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사전이벤트를 통해 선정된 100인의 '작가의 꿈' 글을 보니 진짜 잘 썼다는 감탄만 나왔다. 이래서 내가 선정이 안되었구나 납득이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대충 보는데도 글을 잘썼음이 드러나서 내가 뭔데 글쓰기를 포기한다고 했을까 싶었다. 내가 글쓰기를 포기하든 안하든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도 너무나도 많은데, 내가 경쟁에서 밀려난 것도 아니고, 내가 쓴 글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내가 뭐라고 글을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던가 싶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때에나 그런 고민을 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의미가 없는 것은 내 글이 아니라 내 고민이었다. 내가 글을 쓰면서 발생하는 휴대폰이나 노트북의 발열은 너무도 미미해서 지구조차도 너 하나쯤 글 쓴다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라고 할 것만 같다. 내가 뭔 글을 써도 어차피 이 거대한 글쓰기 세계에서는 존재감이 없다는 확인을 하고 나니, 그냥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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