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련
인턴과 계약직을 전전하다가 정규직으로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많이 우울했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직업에 대한 기회를 준 것과 지금까지도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을 알려주었기에 감사한 회사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매일이 막막하고 두려운 나날이었다. 신입이었고, 잘하고 싶었고, 업무는 어려웠고, 힘들었다. 업무적으로 조금의 실수라도 하게 될 경우에는 책임을 져야 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신건강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던 차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회사에서 준 복지포인트로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요가 센터에 등록했다. 점심시간이 짧아서 동선을 아끼고자 등록한 곳이었다.
아침 출근길이 너무 괴로워 차라리 차에 치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는데, 그 당시에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던 때라서 나 하나 출근하기 싫다는 이유로 전쟁이 나거나 지구가 폭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나 혼자 사라질 생각은 하지 않고 다 같이 죽자고 생각했던 것을 보니 그래도 나 혼자 망하기는 싫었나 보다. 그렇게 매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시기에 요가센터에서 어떤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나에게 요가 수련을 좀 더 열심히 하면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인생이 바뀐다는 말은 그 시절의 내가 가장 듣고 싶던 말이었다. 나는 그 당시에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갖지 못한 채 그저 회사에 불이 나기만을 바라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인생이 좋은 쪽으로 바뀌길 간절히 바랐다. 선생님은 나에게 어떤 문제점들이 있으니 그 문제점을 고치기 위한 요가수련을 제안했는데, 그 요가수련은 매우 고가였다.
나는 그 당시에 취미가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연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말에는 지친 몸을 집에서 쉴 뿐이었다. 그저 다른 사회초년생들처럼 당시의 내 목표는 1억 모으기여서 적금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주말에 하는 요가수련을 따로 들으라고 권해주셨고, 그 당시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않던 나에게 뭔가를 제안해 준 사람은 선생님이 유일했다. 나는 인생이 바뀌길 간절히 바랐었고, 요가 말고는 내 앞에 놓인 것이 없어서 나는 한 세션당 수백만 원짜리의 요가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몇 년을 수련하니 어느새 큰돈이 빠져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의 요가수련이었는데, 나에게 요가수련을 제한해 준 선생님은 그 비용이 인생을 바꾸기 위한 비용으로는 저렴한 것이며, 사회에서 이 정도의 깨달음을 얻으려면 더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회사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를 만큼 지쳐있었는데, 요가수업을 듣고 나면 잠시 숨통이 조금은 트이는 듯했다. 일주일 내내 긴장 속에 있다가 요가수업을 들으면 긴장감이 해소되어 그 순간에는 살 것 같았다. 그 시절의 나는 회사일과 인간관계로 인해 힘들었는데, 요가 수련을 열심히 하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을 믿었다. 너무 힘든 상황이었지만, 내 인생을 그냥 방치하지 않기 위해, 문제점을 회피하지 않기 위해 요가를 했다. 회사 일이나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요가가 직접 해결해 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일주일에 몇 시간쯤 마음이 편할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요가가 필요했다.
그 당시 나는 마음 터놓을 곳이 없었고, 가족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했었는데 오직 요가 선생님에게 나의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요가 선생님에게 내 마음속 아주 깊은 곳의 찌꺼기를 털어낼 때마다 수백, 수천만 원의 돈이 들었다. 요가선생님은 다른 경험을 쌓는 것보다 요가를 하는 것이 낫다고 해서 그 때문에 나는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가 어려웠다. 새로운 요가 수련은 계속 생겨났고, 나는 거의 첫 번째로 모든 수련을 수강했다. 선생님은 요가를 통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내가 요가에 쓴 돈쯤은 금세 회수될 것이라고 했다. 나를 수련으로 이끌어준 선생님과는 평생 함께 할 사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나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믿었다. 그래서 요가 수련에 큰돈을 쓰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마음 둘 곳이 없던 나에게 요가센터는 내가 있을 유일한 곳이었다. 힘든 순간마다 요가 센터에 가서 긴장된 몸을 이완하고 마음을 쉬게 하며 다시 도전할 힘을 얻었다. 선생님은 내가 부족한 부분을 짚어주며 수련을 권했고, 나는 내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요가 수련에 많은 돈을 썼다. 내 단점을 조목조목 듣다 보면 비참해져서 돈을 써서라도 고치고 싶었다. 그렇게 30대를 요가 수련에 썼다. 주말 대부분과 평생의 밑천으로 삼아야 할 인생자본을 요가수련비로 지불하면서 내 인생은 결과적으로 좋은 쪽으로, 밝은 쪽으로 조금씩 이동해 왔다. 지금 나를 만든 것들이 요가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요가가 나를 버티게 도와주었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평생을 갈 것 같았던 요가센터와 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나를 평생 이끌어줄 것 같았던 선생님이 그 요가센터를 떠났다. 나는 그 선생님을 믿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수련에 쓴 것이었는데, 나를 평생 지도해 줄 것이라 믿었던 선생님이 요가센터를 관두자 그동안 내가 쓴 돈과 시간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지도를 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관계라도 믿었는데, 결국 나는 그분의 실적을 위한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생님과의 유대관계가 깊었기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과는 유대관계가 없었고, 나는 다른 요가 선생님들을 과거처럼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요가 외에도 다른 경험에 도전해보고 싶던 나는 결국 요가 밖의 세상에도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다른 경험에 도전해 보니 그 선생님을 따른 대가로 요가수련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지불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지을 중요한 30대 인생밑천을 요가수련에 써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함께 수련을 했던 사람들도 다들 각자 각자의 여력에 비해 수련비로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를 만나지 않게 되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그 당시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각자 서로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너무 소중했던 내 인생밑천을 써서 인생이 나아지길 바라며 요가 수련을 한 것이었는데, 그때 당시 함께 수련했던 사람들과는 연락조차 할 수 없게 되었고, 고가의 수련을 권한 선생님과도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오래 다닌 요가센터의 다른 선생님들과도 어색해졌다. 요가 수련을 통해 좋은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그 정도까지 돈을 써서 할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너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요가 수련에 썼기 때문에 나는 지인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도 내가 요가수련에 큰돈을 썼다는 것을 밝힐 수가 없고 이 사실은 숨겨야만 하는 과거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이 사회초년생 때는 예금, 적금 등으로 돈을 모은 후 어느 정도 목돈이 생기면 차를 사고, 집을 사고, 투자를 하고, 노후대비를 한다. 그런데 나는 인생 전반을 지탱할 30대의 저축여력이 얼마나 귀한 줄 모르고 그 돈을 요가수련에 써버렸다. 그 돈을 요가수련에 쓸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너무 귀한 기회비용을 날려버린 것이라서 시간이 흐른 후 돈이 아쉬울 때마다 요가수련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써버린 것에 대해서 많이 후회했다. 차라리 그 돈을 부모님께 드렸더라면, 지금 느끼는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의 크기가 훨씬 작아졌을 것이다. 혹은 그 돈을 온전히 나를 위해 썼더라면 경험에 대한 아쉬움이 남지 않았을 텐데, 내 문제를 고친다는 명목으로 너무 비싼 요가수련을 했던 배경에는 선생님의 설득이 컸기에 이 소비에 대해서는 시간이 흐른 후에도 많이 후회가 되었다. 중고차를 사도 천만 원이면 사고, 원룸을 사도 몇천만 원이면 살 수 있었을 텐데, 내 미래를 위해 썼어야 했던 돈을 그 선생님의 실적을 위해 써버리고, 그 선생님은 지금 연락하지 않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30대 초반에는 이 선택으로 인해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었다. 단순히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그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더 이상 연락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 그 선생님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을 품을 힘도 남지 않아서 그냥 하루빨리 남아있는 대출을 갚기 위해 월소득이 조금만 더 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이것이 인생에서 겪었어야 할 경험치였다면, 30대에 겪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40대에 겪었더라면 회복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워낙 험한 세상에 살다 보니, 굳이 따져보면 요가수련에 돈을 쓴 것이 다행이기도 한 것 같다. 적어도 그 돈이 범죄에 쓰인 것도 아니고, 내 신변에 위협이 된 것도 아니다. 부정적인 뉴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는 그저 요가수련에 큰돈을 지출했을 뿐이다. 그나마 그것뿐이라는 사실에 스스로 위안을 삼고는 한다. 사이비 종교단체도 아니고 범죄조직도 아니고,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니고, 그저 요가수련에 돈을 썼다는 것이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더 최악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건강을 해치지 않고 돈만 쓴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어 져서 과거는 어쩔 수 없고 앞으로 잘 살자고 다짐하게 된다.
이 경험으로 인해 나는 어떤 사람이나 모임이 평생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곁에 있을 때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함께 있는 동안 신의를 지키고 최선을 다하고,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애쓰겠지만, 이 사람을 평생 볼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금전관계가 일방적인 관계는 금전거래가 끝나는 순간 깨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가 선생님과의 관계는 금전거래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신뢰하는 관계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 사이에는 여러 형태의 관계가 있고, 그중 하나가 이런 관계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타인을 신뢰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최선을 다해 좋은 마음을 나누고 싶다.
비록 선생님이 내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며 나를 설득했지만, 결국 내가 한 선택이다. 돌아보면 내가 너무 큰돈을 요가수련에 써서 정말 필요한 곳에 쓰지 못하게 된 것 같아 자책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결국 과거의 내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어떤 깨달음에는 돈이 많이 들 수도 있는데,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런 깨달음을 얻는데 더 큰 희생이 아니라 이 정도의 희생만 치렀기 때문에 미숙했던 선택일지라도 그냥 끌어안고 갈 수 밖에는 없다. 평생을 좌우할 30대의 종잣돈을 요가 수련에 쓴 결과 빠듯한 중년이 되었지만, 과거의 애처롭던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감내할 수 밖에는 없다. 이 경험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경험치는 다 쌓은 것 같아서, 나는 할머니가 돼도 누군가에게 설득당해 옥장판은 안 살 것 같고,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사이비 종교에 빠질 일도 없을 것 같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거래에는 반드시 내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