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주
6월 5일
어제의 입방정이 화를 자초한 것인지 어젯밤은 약을 먹고도 입면 대기 시간이 꽤 걸렸다.
몸이 피곤했고 하품도 자주 나와서 복용을 안 해도 잘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약은 무조건 복용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 먹은 것인데 대기 시간이 길어지니 당황스러웠다.
아침은 역시나 매우 피로한 상태였고 오늘은 약간 어지럽기도 했다. 더군다나 어제는 10시부터 약을 먹었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고 해도 11시 안에 잠이 들었을 텐데도 어지러웠고 몽롱했다. 내가 너무 단기간에 한 번에 수면장애를 고치려고 서두르는 것이겠지? 나의 기나 긴 불면중독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이렇게 단 번에 고쳐지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 그런 약이라면 더 위험할 수 있다. 입면 대기 시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나는 내가 불안증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대기 시간에 신경을 쓰는 것만으로도 이미 불안증이다. 불안증은 입면과 수면장애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으니 우선 총 수면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의의를 두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6월 10일
지난 일기와 마찬가지 상태다. 졸음의 기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음에도 약을 먹으면 신기하게 하품이 연거푸 나왔다. 그럼에도 입면 대기 시간은 길었고 아침은 몽롱했고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복용한 약 중에서는 가장 입면시간이 짧고 다음 날도 가장 어지럼증이 짧게 끝나는 약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오늘내일 중 병원에 갈 예정인데 내 예상으로는 이번 약을 한 주 더 먹어보게 될 것 같다.
입면 기능 회복 프로젝트
6월 11일-병원방문
예상대로 이번 약을 더 복용해 보기로 했다. 목표는 어쨌든 수면시간을 늘리는 것이고 그다음 날 좀 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니 입면 대기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고 다음날 어지럼증이나 몽롱함도 덜 한 이번약을 더 먹어 보기로 한 것이다.
약을 어느 정도 기간분을 처방해 줄지 의사가 물었다.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이번 약이 잘 맞고 이 약으로 수면장애와 습관이 잡혀 나가는 중이라면 2-3주 분을 받아와도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두려움이 날 가로막았는지 모르지만 결국 일주일 분량만 받아서 돌아왔다.
저녁마다 어떠한 기다림이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이렇게 처음부터 약을 먹고 자는 것이 맞는지 고민된다. 어쩌면 조금 더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 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너무 효율성을 생각해서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 아까워 최대한 미루다가 급하게 약을 먹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러다가 나는 이제 약을 먹지 않고는 스스로 입면 하는 능력 자체가 상실되지는 않을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데 지금부터 약 없이 잠을 잘 수 없는 날들이 오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다. 방학 때 약을 먹지 않고 학기 중보다 늦게 자고 충분한 숙면 후 늦게 일어나면 수면 조절 능력이 다시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기대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시간대의 수면이 아니기에 직장을 그만둘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수면장애이다.
저녁마다 약을 바로 먹게 만드는 근원은 무엇일까? 내일의 체력과 몽롱함 보다는 퀭한 눈과 푹 패일 볼 살이 더 걱정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내 나이에 눈이 조금은 피로해 보이고 살이 파여 보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내가 너무 젊음과 외모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애초에 남들보다 마른 내가 조금 다른 날보다 더 피로해 보인다고 해도 그 누구도 내 외모에 신경 쓰지 않지만 스스로 보기 싫다는 생각조차 비겁한 핑계일 뿐 그저 학습된 보기 좋은 여성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일 뿐일 수도 있다.
분명 나는 학기 중에도 약 없이 잘 자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이다. 아무리 늦어도 12시가 넘으면 잤고 못 자는 날도 꽤 있었지만 그런 날조차 새벽 3시면 잤으니 그래도 4시간은 잤다는 말이다.
약을 먹고 잔 지 아직 겨우 한 달지나 두 달 차인데 벌써 예전이 그립다. 이 마음이 커지면 우울증이 되는 것이겠지 싶다. 오늘부터는 12시를 넘기기 전에는 약을 먹지 않을 계획이다. 매번 일지를 쓸 때마다 약을 먹기로 정한 시간대가 달라지는 것 같다. 어느 날은 10시면 먹자고 생각했다가 11시 30분까지 기다리자고 생각했다가 이젠 12시다. 최대한 버텨서 스스로 잘 수 있도록 시도라도 해 볼 생각이다. 간혹 못 자는 시즌에 약의 도움을 받게 되더라도 스스로 잠드는 날을 늘려가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