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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29. 2019

'나'라는 사람

'나'를 알기도 전에, 우리는 '직장인'이 된다.

'나'는 누구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아니, 답이 여러 가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다시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꺼림칙하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다르고, 밥 먹기 전 나와 밥 먹고 난 후의 나는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족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답은 나중에 어느 절대자의 멱살을 붙들고 물어볼 일이다. 평생을 우리는 이 질문을 해대며 살고, 또 답을 맞히지 못해 안달복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니까. 꽤 참 억울하단 생각이다.


철학과 심리학은 그래서 인기다.

돈이 되는 학문은 분명 아니었는데(지금도 그리 큰돈은 안 되는 것 같지만), 물질이 풍성해진 작금의 시대에 어쩐지 많은 사람들이 내면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그것들을 찾는 모양새다. 기술로 삶의 변화를 가져온 스티브 잡스도,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들의 욕구를 집어냄으로써 성공을 했고 이는 인문학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사람들이 인문학과 철학, 심리학에 관심을 기울이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심리학은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기에 좋은 학문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는 "심리학의 과거는 길지만 그 역사는 짧다"라고 말했다. 철학으로부터 이어진 심리학의 역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다. 즉, 사람이라는 존재가 생겨났을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고민 해왔다. 물론,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그 답은, 가상의 세계까지 만들어낸 지금의 21세기에도 난제로 남아있다. 삶의 비극이자 묘미다. 알지 못해 답답하지만, 알아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으니.


이 말은, 심리학이 (아직도) '사람'을 다 알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라디오를 분해했다가 조립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때는 다시 조립을 하지 못한 적이 있고 또 어떤 때는 조립은 했으나 작동하지 않거나 일부 부품이 남은 적이 있었다. 심리학은 여러 기법과 실험 그리고 다양한 이론으로 사람의 마음을 이리저리 분해해 놓는다. 분해하고 분석할 땐 그럴싸하지만, 그것을 다 모은다고 마음의 지도나 사람의 원형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작동하지 않거나 일부 부품이 남은 채로 조립된 라디오처럼.


'직장인'은 누구일까?


사춘기를 지나며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처절하게 고민한다.

그 답을 몰라 속상해하고 반항한다. 사회적 책임도 크게 없으니 마음껏 방황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어느덧 사회에 발을 들이게 되고, (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어느새 직장인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뒤집어쓴다.


먹고사는 고단함, 밥벌이에 매진하다 보면 내가 누군지에 대한 질문은 사치다.

그 답을 알아갈 새도 없이 분주하게 살다 보면, 내가 페르소나 인지 페르소나가 나인지 모를 하루하루의 날들이 반복되고 쏜살같이 지나간다. 회사의 전략과 성장을 위한 보고서는 수천 개를 만들면서도, 정작 내 삶을 위한 나에게로의 보고서는 써 본일이 없이.


그렇게 우리는 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어느새 직장인이 되고 만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난 후, 그와 같은 요동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큰 정체성의 혼란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직장이, 사회생활이 힘든 건 그 때문이다.

더 큰 정체성의 혼란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 직장이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도 나와 같은 혼란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내가 누군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욕구불만에 가득한 사람들이, 자신을 알기도 전에 직장인이라는 가면과 정체성을 엎어 써야 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혼란스러울까.


'나'라는 존재에 대한 답은 우리가 평생 찾지 못할 답일지 모른다.

하지만, '직장인'은 어떤 존재인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다. '직장'을 바라보고, '타인'을 바라보고, 직장인이라는 가면을 쓴 '나'를 바라본다면.


심리학의 시선으로, 수많은 시간을 직장인으로서 살아왔다.

많은 일이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으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일어나기를 여러 번. 심리학은 분명 도움이 되었다. '나'를 100% 알 순 없었더라도, '직장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나 '타인' 그리고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즉, 나는 지금껏 '일'을 배우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관찰하고 배우고 공부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지금껏 심리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직장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선 어떤 마음이 들었고, 누군가에겐 어떠한 상처를 받았으며 그러할 땐 어떤 마음 가짐을 가지면 조금은 덜 다칠 수 있는지. 그에 앞서, 직장이라는 곳과 나와 내가 아닌 '직장인'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짚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무릇, '본질'을 알 때 우리는 그것을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고, 잘 받아들일 줄 알면 그것에 대해 더 잘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시간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처럼, 이 질문에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니, 나를 모른 채 직장인이 되었다면 우선 심리학의 시선으로 직장인인 우리를 바라보자. 어쩌면 그것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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