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른다. 벌인다. 그리고 쓴다.
‘문어발식’의 뜻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한 기업이나 재벌이 다른 업종에 진출하면서 규모를 늘려 나가는 방식을 이르는 말. 그 최후는 대개, 아니 확실히 좋지 않다. 왜냐하면 좋지 않은 결과에 ‘문어발식 경영이 문제다’라는 해석을 갖다 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어발식’이란 말이 수식어로 붙는다면 무언가 좋지 않다는 걸 바로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편견은 관점을 바꿀 때 아주 좋은 디딤돌이 된다.
오히려 편견이 강할수록 우리는 관점을 더 빠르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문어발식’이란 말을 꽤 괜찮은 과정과 결과에 붙이려 한다.
물론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나의 ‘글쓰기’다.
우선 저지르고,
우선 벌여놓는 것의 매력
우리네 삶은 녹록지 않다.
말 그대로 팍팍하다. 매일이 불안하다. 이건 마치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덜 불행하려고 사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삶의 매 순간, 과감한 결정과 선택을 잘 하지 못한다. 저지르고, 벌여놓는 경험을 한 적이 그리 많지 않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서 자라온 이유다.
글쓰기를 마음먹었을 때, 에세이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생각을 해보자.
매일 책상에 앉아 에세이와 씨름을 하다가 금세 지쳐버릴 수 있다. 더불어, 이것 하나 꾸준히 쓰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여기에서 무너지면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조급함이 강한 군대와 같이 몰려온다. 실제로 내가 이와 같았다면, 나의 글쓰기는 거기서 멈췄을 것이다. 그건 내 글쓰기의 가능성
을 하나의 장르로 한정 짓는 일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시작에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우선 저지르고, 우선 벌여놓는 것이었다.
즉, 문어발식 확장. 에세이, 자기 계발, 여행기, 시, 산문 등. 처음의 시작에 내 브런치 매거진은 이미 대여섯 개였다. 믿는 구석 없이, 말 그대로 만들어놓고 어떻게 되나 보기로 했다. 짜릿했다.
살면서 이처럼 마음껏 저지르고, 벌여놓는 기회는 많지 않다!
그렇게 벌여놓고 집중이 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관점의 차이로 설명한다. 장르 하나하나라는 미시적 관점으로 보면 나는 벌여놓고 수습을 못하
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장르를 모아 그것을 ‘글쓰기’라는 거시적 관점으로 보면 그중 하나만 써도 나는 성공하는 것이다.
게다가 에세이가 안 써지면 자기 계발을, 너무 피곤하여 기력이 없을 땐 짧은 시를, 추억에 젖고 싶을 땐 여행기를 정리한다.
즉, 벌여놓은 서로의 장르는 상호 보완재가 되고 더 나아가 영감을 주는 좋은 자극이 된다. 머리로 쓰기 힘든 날은 마음으로 쓰고, 그마저도 힘든 날은 사진첩을 뒤적여 여행기를 쓰면 된다. 백 줄 쓰지 못하는 날이면 단 한 줄을 써도 된다는 마음의 여유가, 문어발식 글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말 재밌다.
글 하나만을 목표로 쓰려면 쉽지 않은 다짐이 필요한데, 오늘은 여러 개 중 하나만이라도 쓰자고 하면 정말로 써진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은 내가 일전에 말한 책이 아닌 글쓰기(모수 모으기), 목표는 없어도 목적은 확실한 글쓰기,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를 지향할 때에만 가능하다. 벌여놓고 수습이 안 되거나, 오히려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데 문어발식 확장이 방해된다면 위 세 가지 중 하나가 안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문어발식 글쓰기의 최후는? 여러 권의 책이 연달아 나왔다는 결론이다.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과정’에 더 감사한다. ‘최후’라는 개념이 또 다른 시작이라는 ‘과정’을 선물했으니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글쓰기를 시작하면 삶은 이처럼 다채로워진다.
문어발식 글쓰기(경영)는 자연스럽게 서로 발전적인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된다.
도태될 것은 도태되고, 글과 장르 간 합병이 되기도 하며 결국 살아남는 것들은 좋은 콘텐츠로 알아서 살아남는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래와 같다.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 더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