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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17. 2020

삶은 몇 인칭이어야 하는가.

어느 한 곳에 편향된 글은 삶을 왜곡시킨다.

삶은 내가 써 내려가는 글이다.


이 말에 대해 기를 쓰고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명제는 우리를 '작가'로 규정한다. 더불어 '써 내려가는'이라는 현재형은 그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전제를 둔다. 다행히, 지금까지 써 온 내용은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거울 삼아 지금을 성찰하고 미래를 덤덤히 맞이 한다. 즉, 지난날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나의 역사를 돌이키는 것이며, 나는 나의 역사를 써왔고 지금도 쓰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칭'에 민감해져야 한다.


나는 삶을 몇 인칭으로 보며,
써 내려가고 있는가?


'인칭'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소설은 인칭에 따라 내용과 전개가 뒤바뀐다. 효과적인 전개 또는 반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적절하고 탁월한 인칭을 선택해야 한다. 인칭은, 어느 한 글의 처음과 끝을 결정짓는 절체절명의 '선택'이다. 우리 삶이 '선택'의 연속이며, 그에 따른 책임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인칭'의 중요성은 더 절실히 와 닿는다.


우리 삶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출발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므로, 세상은 내가 인지하는 만큼의 범위를 뜻한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받아들이는 만큼, 쌓이는 지식정도로만 세상을 이해한다. 그래서 '인지'와 '지각'은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다른 말로, 이것이 바로 '인칭'이라 할 수 있으며, '관점'이라고도 통칭할 수 있다.


그러다 우리는 세상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알고 보니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부모와의 교류를 통해 생존할 수 있었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줄 알았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갖게 되기까지 한다. 이는 매우 우울한 과정이지만, 대신 '1인칭 관찰자 시점'이라는 선물을 얻는다. 즉, 다른 이들을 조망해야 한다는 깨달음과 경험을 통해 체계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사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 대한 로망이나, '3인칭 관찰자 시점'에 대한 중독이다.

신이 아닌 이상 우리는 나와 남을 모두 알 수 없기에,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삶의 자세는 경계해야 한다. 더불어, 내 일도 아니고 남 일도 아닌 것처럼 삶을 대하면 인생엔 남는 게 없다. 


나는 0인칭을 앙망하며,
'메타 인칭'을 지향한다.


사실, 나는 '0인칭 시점'을 갖고 싶단 생각이다.

그것은 허구일 수도 있고, 이상일 수도 있으며 무한이라는 실체를 말하기도 한다. 0인칭 시점은 나와 남을 아우르고, 한 발자국 떨어져 보는 것이 '3인칭 관찰자'와 비슷하지만 관찰로 끝나지 않는 것이 그 차이다. 즉, '자기반성'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농축되어 들어있는 진정한 인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너 자신을 알라"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이 말을 나는 그래서 '0인칭 시점'으로 해석한다. '자신'을 인식하기 위해선 나로부터 한 발 떨어져야 하며, 자신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깨달음 때문이다. 즉, 자신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오만을 깨뜨리고, 한 걸음 물러나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나도 제대로 모르면서 남을 평가하려는 그릇된 시각에 보기 좋게 어퍼컷을 날렸다는 느낌이다.




시대는 바뀌었다.

1차원이 아닌 고차원으로 변했다. 그래서 고도로 숙련된 작가들은 인칭을 자유자재로 바꾸어가며 글을 쓴다. 똑똑해진 독자들을 대하기 위해선 틀의 파괴와 확장이 필수다. 삶도 마찬가지다.


이제, '인칭'은 고르거나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거나 '관리'해야 할 것이다.

즉, 적재적소에 '인칭'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메타 인칭'이라 명한다.

'메타인지'를 활용하여 나를 돌아보고, 나는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떤 인칭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훈련하는 그것. 


내가 써 내려가는, 내 인생이라는 글은 내가 직접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자면 나는 이 글을 잘 써 내려가야 하고, 다양한 '인칭'을 구사하며 이야기를 풍부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느 한 곳에 편향된 글은 삶을 왜곡시킨다.

왜곡된 삶은 안타깝다.


'메타 인칭'이 필요하다고, 스스로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강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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