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적인 존재의 본능,
시기와 질투
운전을 하다 보면,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를 깨닫는다.
이 말을 떠올려 보면 한 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도로 위엔 나보다 느린 멍청이와 나보다 빠른 미친놈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존재들이 모여서 투닥투닥하는 직장생활은 참으로 가관이다.
나를 중심에 두면, 나보다 느린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나보다 빠른 사람을 보며 시기와 질투를 일삼는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감정에 충분히 동의한다. 그리고 이해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직장이라는 먹고사는 고단함의 밀도가 높은 곳에서 그러한 마음은 필수다.
본능을 거스르려는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이다.
본능에 압도되면,
순리를 거스르려 한다.
그러나 사람은 본능대로만 살 순 없다.
그래서 사회에는 규율이 있고 법이 있으며, 관습법과 도덕법이 있다. 지나친 본능의 억제도 문제지만, 지나친 본능의 발현도 문제다. 즉, 남을 무시하거나 시기 질투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거나 고집하는 것은 직장생활에 있어 큰 독이 된다. 나로 인해 힘들어질 남도 있겠지만, 결국 스스로를 헤치는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은 마음의 균형을 깨뜨려 놓고 마는데, 편하지 않은 마음은 직장 생활의 많은 것들을 그르친다.
사심이 개입되고, 업무와 조직의 성과보다는 개인의 감정에 좌우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업무 역량은 물론 평판도 좋지 않게 된다. 이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나도 겪고 싶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많은 것들이 벌어진 뒤였다.
돌아보니, 조직의 효율과 성과는 뒤로 하고 내 사심을 채우려 폭주했던 잔해들만이 남아있었다. 그 사심은 (나만) 인정받으려는 욕구였고, (누구보다) 빨리 가고 싶었던 욕망이었다. 등을 돌린 사람들과, 바닥까지 내려간 평판. 순리를 어기고, 그림자를 추월하려던 어리석은 나는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홀로 서성였다.
결국,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남이 안되기만을 바란 마음의 결과였다.
남 안 되는 것보다,
나 잘되는 게 더 빠르다!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 나보다 인정받는 사람.
그리고 나보다 빨라 보이는 사람. 시간은 매우 상대적인 것이어서, 정말 잘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남 안되길 바라는 마음은 조급함과 더해져 결과적으로는 매우 더디게 흐른다.
'남'은 언제나 나보다 잘 나가 보일 수밖에 없고, 오히려 잘 되는 경우가 많고, 그럼 나는 언제 저렇게 되나라는 조급함이 고장 난 타임머신이 되어 마음의 시간을 헤집어 놓는다.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차선을 바꾸면, 옮겨간 내 차선만 더 막히는 삶의 진실을 우리는 매일 마주하지 않는가.
남 안되길 바라는 순간, 시간은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내가 잘 될 방법을 찾는 게 맞다.
다른 사람이 운으로 잘 나가던, 실력으로 잘 나가던. 그건 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에게 운이란 게 왔을 때, 그걸 살려 낼 실력이 있는가, 사심 없이 회사의 목적과 목표에 맞게 나는 움직이는가. 그래서 나온 성과가 결국 나와 우리 것이 될 거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오랜 직장생활을 해보면, 더불어 사심 없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길을 걸어보면 깨닫게 된다.
나 하나 잘되는 게 큰 의미가 없고, 아무리 옆 사람이 보기 싫어도 결국 다 잘 되어야 내 밥그릇도 더 커지고 단단해진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는 차이는 시기와 질투가 아닌 결핍의 에너지로 사용해야 한다.
스스로를 채워가며 성장시키는 힘. 더불어, 나보다 느린 사람에겐 언제나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차선과 신호에 따라 언제 그 사람이 나보다 더 빨리 목적지에 다다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결국, 남을 신경 쓰기보단 나에게 집중하는 게 맞다.
그것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며 얻은 직장생활의 순리이자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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