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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06. 2020

좀비는 타인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타인이다.

1968년, 좀비의 탄생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이 제작한 흑백 공포영화. '시체들의 새벽', '시체들의 날'을 합하여 '조지 로메로 좀비 영화 시체 3부작'이라 불리기도 한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인육을 먹는 시체들의 모습을 그려냈지만, '좀비'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두 번째 작품인 '시체들의 새벽'에서였다.


'좀비'는 '부활한 시체'를 뜻하는 말로, 아이티를 비롯한 그 주변국이 믿는 '부두교'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느 민족의 '신'을 뜻하는 '은잠비(Nzambi)', '줌비(Zumbi)'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조지 로메로 감독이 묘사한 좀비를 시작으로, 좀비는 대중문화의 취향에 따라 사람보다도 더 빨리 진화했다.

느릿느릿하고 흐물흐물한 존재에서, 달리고 뛰고 지능을 갖게 되고. 심지어는 살아 있는 사람과 사랑까지 나누는 좀비 캐릭터도 탄생했다. 


귀신은 사람의 원형을 차용한다.

처녀 귀신, 드라큘라, 구미호, 좀비 등. 영혼의 형태와 잔인성의 차이는 다르지만 그 기저에 사람의 형태가 없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말하는 귀신이 인간의 관념과 문화, 그리고 시대의 감정과 두려움 등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즉, 최근 다양하고 수두룩하게 쏟아지는 좀비 또한 인문학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고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뜯어볼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심신 이원론에 기반한 좀비 고찰


'이원론'이란 세계나 사상을 두 개 상호 간에 '독립'하는 근본 원리로 설명하는 입장이며, 세계나 인간을 설명할 경우 쓰인다.

데카르트는 '심신 이원론'을 통해, '정신'과 '육체'를 각각 독립하는 실체로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에 큰 반박을 하지 않는다. 그 둘이 어떻게 상호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철학과 과학이 아직 규명하지 못한 부분은 분명 있지만 우리는 '몸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를 따로 구분하여 이야기한다는 걸 보면, 심신 이원론은 우리 정서에 깊숙이 배어 있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좀비는 이 심신 이원론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좀비에게 물려 바이러스가 전해지면, 사람은 죽고 시체는 살아난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영혼이 사라짐을 말하고, '시체가 살아난다'는 육체의 움직임이 여전히 있다는 걸 뜻한다. 즉, 그 둘은 분리된 결과를 이르며 좀비는 '심신 이원론'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우리는 그러한 '법칙'을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프랑스 관념론 철학자인 베르그송은 '심신' 통합의 근거를 '지각'에 두었다.

그는 '정신'은 과거를 보존하는 기억이며, '육체'는 행동의 중심이며 지각하는 것을 통해 그 둘이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이 이론 또한 좀비의 법칙에 부합된다. 좀비로 변한 존재에게 과거는 없다. 가족이나 친구를 알아보지 못하고, 가장 중요한 자신을 인식할 수 없는 존재. 


고통을 느끼는 지각도 사라졌으므로, 자신의 영혼이나 정신을 되찾을 기회는 영영 없는 것이다.


왜 이 시대는 좀비를 양산하는가?


그렇다면, 왜 이 시대는 좀비를 양산하는가?

문화와 미디어, 일상에 좀비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이유.


나는 그것을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역시나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것이고, 두 번째는 인문학 논리에 따른 것이다. 

나는 이 둘을 '양면론'으로 규정한다. 즉, 각각 독립적이어서 따로 떼어 구별하지만 분리시킬 수 없는 양면으로 본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능이자 생존을 위한 암묵적 체계이며, 그 암묵적 체계는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왔으나 반대로 그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좀비를 양산한다면 어느 곳에 수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또는, 좀비를 양산하면 어디선가 팔릴 것이라는 수요를 예측한 것일 수도 있다. 즉, 화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므로 좀비는 탄생한 것인데 중요한 건 '양산'이 자본주의 관점이라면, '수요'는 인문학적 관점이라는 걸 알아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시대적인 트렌드도 한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처녀 귀신은 너무 올드하고, 흡혈귀의 변주는 한계를 맞이했으니 새로운 형태의 귀신이 나올 타이밍이긴 한 것이다. 


좀비와 우리,
그리고 사람에 대한 염증


좀비 영화에서, 주인공은 우리는 사투를 벌인다.

방금 전까지도 인간이었던 존재로부터 도망치거나, 숨어 사는 것이 일상이 되는데. 이쯤 되면 누가 살아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모습을 보며 나는 많은 것을 떠올린다.


그래, 지금 나의 삶은 어떤가?

나는 숨을 쉬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는 살아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살아가며 영혼을 (육체와 분리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잘 언급한다.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땐 영혼이 탈탈 털렸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영혼이 탈탈 털린 존재는 육체만 남았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우리는 때로 좀비가 되는 것이다. 영혼 없이 말하는 그 순간도. 멍 때리는 그 순간도. 정신은 육체와 분리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표현하고 통용한다.


더불어, 누군가를 가리켜 '생각 없는 사람'이란 표현을 썼던 그 순간을 되돌아보자.

사람은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말을 돌이킬 때, '생각 없는 사람'은 '살아 있는 시체'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러한 '살아 있는 시체'를 하루에도 여러 번 만난다.


그리고, 편을 나누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매도함으로써 우리는 '살아 있는 시체'를 실제로 양산해내기도 한다.

나와 다른 상대 또한 나를 '생각 없는 사람'으로 규정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과연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는 가히 엄청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그리고 남을 좀비로 만드는 과정이 영화 속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좀비는 타인이다!


유명 관광지에 떼로 몰린 사람들.

할인 행사를 하는 매장의 문을 열자 떼로 달려가 먼저 물건을 집으려는 사투. 지나가는 길거리에서 나의 앞길을 막는 사람부터,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


나는 이러한 모습에 염증을 느낀다.

말 그대로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려, 그들을 좀비로 규정하는 것이다. 타노스의 건틀렛으로 절반을 날려 버리고 싶단 생각까지 한다. 같은 사람이면서 이러한 이중적 생각을 하는 이유가 뭘까를 돌아보면, 그것은 결국 타인에 대한 '염증'과 '두려움' 그리고 '불편'이다.


나를 제외한 타인은 모두가 경계 대상이다.

개인주의화로 내 존재의 경계는 넓어지고, 그 선을 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적으로 규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먹고살기 힘든 존재는 결국 서로에게 무언가를 빼앗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좀비 영화가 그려내는 아포칼립스 또한 이러한 우리 삶에 대한 경고라 볼 수 있다.


인정사정없이 달려드는 좀비 떼는 타인을 닮았다.

그래서일까. 그 어떤 거리를 두어야 하는 우리에게 벌어진 팬데믹이란 상황이 나는 우연이라 보기가 어렵다.


배려가 사라진 세상.

영혼 없이 육체의 즐거움과 물질적 획득이 우선이 되어 사투를 벌이는 우리. 


집에 가만히 앉아 정신을, 배려를, 사랑을, 마음을 챙기라는 그 어떤 메시지 같아 나는 섬뜩하다.

육체에 생기는 전염병이, 어쩌면 정신을 치료하기 위한 백신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좀비는 타인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타인이다.


여기저기 양산되는 좀비가 자꾸만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의 삶이 좀비와 크게 다르지 않은건 아닌지.

좀비 바이러스를 타인에게 퍼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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