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수 있을 그 때에
여기 두 사람이 만났다.
좋은 감정은 피어나고 둘 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둘 만의 이야기는 거듭되며 사랑에 가까워진다.
좋아하는 길목에서 사랑으로 가는 데는 항상 문턱이 하나 있다.
사랑으로 받아 들일 것인지 아닐 것인지에 대한 능선이다.
우리네는 특히나 더 사랑이라는 능선에 민감하다.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는 클 수도,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많이 좋아하는 마음´이 모여 ´사랑´이 되는 법칙이 우리 마음속에 아로새겨져 있어 그렇다.
다만, 누군가에게 고백할 때 좋아한다는 말과 사랑한단 말은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좋아하다 사랑하는 것이 수순이라면.
사랑하다 좋아한다는 것은 서로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했다가 거절당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 하면 뭔가 모자란 느낌의 그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 이루게 되는 교집합은 우주라 칭하고 싶다.
전혀 몰랐던 두 사람이 만나 생기는 교집합이 커지고, 그 크기는 상상을 불허한다.
누군가는 사랑을 속도로 표현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사랑의 깊이를 이야기할 것이다.
속도가 빠르면 깊이를 걱정하고.
깊이를 재다보면 속도가 나지 않는다.
다만, 사랑에 대한 속도나 깊이는 어느 수작이 아닌 이상 완벽한 제어가 어렵다.
내 속도가 적당한지, 내 깊이가 충분한지에 대한 생각은 오만이다.
그저 감정에 충실하다 보면 진심은 통할 것이다.
과하거나 부족함은 상대방에게서 들려온다.
그 속도와 깊이가 잘 맞는다면 마냥 행복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마냥 삐걱댈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은 있다.
서로의 속도와 깊이를 속내어 털어놓고 맞추어가는 것.
이분법적인 편협한 생각을 버리면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속도가 빠른 사람은 이미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깊이가 깊은 사람도 나름 속도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사랑과 욕심은 불가분의 관계다.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은 이내 문제를 야기한다.
사랑할 시간도 모자란 판국에 서로의 서운함을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된다.
알아달라는 것이다.
내 사랑이 이렇게 크다는 것과 더 많이 받고 싶은 마음에 안달 나 있다는 것.
서로를 향한 아름다운 말만 하던 사람들.
각자의 서운함만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지쳐간다.
사랑해주는 모습보다 못해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사랑해주느라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뭘 더해달라는지에 대해 모르겠는 마음.
앞으로 다시 돌아가.
서로의 속도와 깊이가 맞지 않고 있다.
한 때는 이제 그만 만족할까 싶다가도.
만족하는 순간 최고 정점이 될까 봐.
최고 정점이 되면 떨어질까 봐.
그걸 두려워한다.
욕심이 계속돼도 문제지만.
만족하는 그 순간도 문제다.
욕심이 남은 상태에서의 만족은 체념이다.
욕심이 남은 상태에서의 만족은 거짓이다.
다시.
보자.
사랑이 고픈 상태에서의 만족은 체념이다.
사랑이 고픈 상태에서의 만족은 거짓이다.
고로.
만족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완벽한 사랑의 속도와 깊이는 없다.
그 속도와 깊이가 정확히 일치하고 메카닉 하게 돌아간다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감정은 언제나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고.
예상치 못한 감정을 제어하는 건,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해결될 일이라면.
사랑이란 감정은 이미 학문으로 해결되었을 것이다.
아파할 일도 없고, 힘들어할 일도 없고.
어려워할 일도 없고, 끙끙 앓을 일도 없다.
대책이 있을 것이고, 약이 있을 것이고.
학원이 있을 것이고, 과목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기가 순수하다고 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아기만큼 욕심 많고 악랄한 존재가 없다.
배고프다고, 혼자 있다고, 사랑 달라고 울어 젖힌다.
저 혼자 힘들고 저 혼자 외롭단다.
발버둥 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이기적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기와 매우 유사해진다.
같이 있어도 외롭고, 사랑해줘도 부족하다.
아기와의 공통점은.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을 주더라도 채워질 순 없는 존재라는 것.
사랑의 속도와 깊이에 대한 단상이 길어졌다.
길어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닐 것을.
내가 고민 한다한들 사랑이라는 논제는 영구미제로 남을 것이 뻔하다.
아마 세상 모든 사람들의 숙제이자 숙명이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면서 사랑할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할 기회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어쩌면 사랑이란 것에 아파하며 고민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이별의 속도와 깊이는 사랑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기에.
사랑은 살고자 하는 고통일지 모르나.
이별은 죽고자하는 고통임에 분명하다.
사랑과 이별의 공통점은 이렇게.
속도와 깊이의 제어가 안된다는 것이다.
둘은 멈췄는데 사랑은 지속되는, 원치 않는 관성의 법칙.
깊은 기억을 지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기억과 추억의 저주.
마침내는 사랑 한 번 못해 본 사람을, 사랑을 시작조차 못하는 사람을.
그렇게 마냥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서러움을 간직하며.
시간이 흐르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억겁의 시간이라도 흘러 아픔이 잊힐 그즈음.
난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서 행복했었다고.
넌 나를 사랑하게 되어서 행복했었으면 좋겠다고.
언젠가 한 번 만나서 사랑해야 하는 운명이라면.
그 시기가 언제라도 좋겠다.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
또는 치매로 기억하지 못하는 그때가 아닌.
기억할 수 있는 때.
둘 만의 명장면을 그릴 수 있을 때.
그래서 기억을 모두 모아 마음에 담아둘 수 있을 때.
마음에 담아 둔 그 기억들이 추억이 될 수 있을 때.
그때는 언제일까.
바로 지금. 바로 여기.
그렇게 너.
그렇게 나.
그렇게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