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꾸준하게 나아가는 것이, 빠르지만 어리석은 것보다 낫습니다.
꾸준함이란 말 앞에 우리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누군가의 꾸준함을 부러워하는 삶이 이어집니다.
돈을 주고서라도 우리는 꾸준함을 사려합니다.
꾸준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의 발자취를 읽으면 나도 그렇게 될 거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변한 건 조금 더 얇아진 지갑이고, 남는 건 '꾸준함을 위해선 이러해야 한다'라는 써먹을 데 없는 비루한 지식과 '역시 나는 안돼...'라는 자책뿐입니다.
결국, 꾸준함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왜 그럴까를 돌아봅니다.
마음속 저 깊은 곳을 거꾸로 날아 발견한 건 여지없이 '조급함'입니다.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앞으로 나아간다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룰 겁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아니, 안다고 착각합니다. 안다는 건 머리와 마음이 일치할 때 성립되는 조건입니다. 머리로 알고 마음이 의사결정을 내려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 체육대회에 참가하여 달리기를 하다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채 되지도 않아 보기 좋게 고꾸라졌더랬습니다. 생각과 마음은 저 앞을 바라보고 뛰었는데 몸이 따라주질 못했던 겁니다. 착각으로 인한 생각과 몸의 엇박자. 내 몸 상태가 어떠한지도 모른 채, 그저 빨리 뛰겠다고 앞서간 생각과 마음. 넘어지고 나서야, 저는 제 상태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결과를 빨리 얻어 내려는 속셈.
'꾸준함'은 멀어지고 천천히 가서 뭐 하냐라는 회의감이 듭니다. 남는 건, 포기입니다. 더 무서운 건 그 포기 앞에 주저앉은 자신에 대한 미움입니다. 돌이 날아옵니다. 그 누구도 던지지 않은 돌. 어느새 괴물처럼 커진, 스스로로가 만들어낸 자괴감이 던진 돌입니다.
남이 던진 돌보다 더 아픕니다.
상처는 더 깊습니다.
조급함은 어리석음입니다.
그림자를 앞서가려는 마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림자를 떼어 놓고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조급한 마음은 몸과 그림자를 떠나 저만치 앞으로 나아가 있습니다.
그 거리와 괴리가 커질수록 우리의 포기는 늘어납니다.
꾸준함은 멀어져만 갑니다.
인디언은 말을 달리다 잠시 멈춰 뒤를 돌아봅니다.
자신들의 영혼이 따라올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꾸준함의 중심엔 내가 있어야 합니다.
정신과 육체, 영혼과 그림자를 한데 모은 존재.
꾸준함을 얻고 싶다면, 그림자를 앞서 나가선 안됩니다.
[종합 정보]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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