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요리를 못하는 이유

by 별밤

식탁에 둘러앉아 밥 먹을 때 우리 집은 일급 레스토랑이 된다. 와인을 따라준 직원이 이 와인은 어디 포도밭에서 났으며 무슨 품종인지에 대해 소상히 읊듯, 엄마도 우리 곁에 서서 반찬 하나하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마늘쫑은 딱 지금이 맛이 들 때다.”

“제육볶음 어떻노? 괜찮제? 코인을 하나 넣었거든. 지난번에 홈쇼핑에서 산 거.”

“아, 그건 숏츠에서 본 레시피대로 했다.”

“고기만 묵지 말고 나물 무친 것도 좀 묵어봐라!”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며 반짝이는 눈으로 지켜보다가 이따금은 불호령을 내린다. 가장 무서운 건 “벌써 일어나나? 안 된다! 갈치 구워놓은 것까지는 다 먹어라.” 같은, 우리 집 조왕신*으로서 권력을 발휘하여 강력한 엄포를 놓을 때다. 시간 들여 볶고 끓이고 무친 정성도 피 같거니와 냉장고에 들어가 싸늘히 식으면 원래대로의 반찬 대접을 받기 어렵단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러면 우리도 부른 배를 잡고 한숨 푹푹 쉬며 자리에 다시 앉을 수밖에 없다.



식사 내내 곁을 기웃거리며 참견하던 엄마가 수저를 챙겨 자리에 앉거나, 제 몫의 밥을 푸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세상 모든 엄마가 밥을 안 먹는 줄 알았더랬다. 견과류가 박힌 검고 거친 빵,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맨빵, 콩과 팥이 듬성듬성 박힌 떡 등을 엄마는 밥 대신 먹는다. 새우깡이나 에이스 등 짭짤한 과자를 먹고, 거기에 커피와 맥주를 곁들이기도 한다. 빵과 맥주를 함께 먹을 때면 나는 놀리듯이 ‘보리 정식’이라고 부른다.



한때는 두부에 푹 빠져 시장에서 직접 만든 단단한 두부와 콩물을 매주 사들였고, 단백질을 늘리라는 필라테스 강사의 간곡한 말에 못 이겨 닭가슴살을 렌지에 돌려 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밥이라고 부를 만한 한 상, 고기와 생선과 야채 반찬을 밥 한 공기와 먹는 일만은 결코 없었다. 갈빗집에 가더라도 함께 나온 천사채 샐러드나 콩나물 등을 집어먹는 게 전부였다.



엄마가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나는 믿었다. 종류를 막론하고 한 부문에서 솜씨가 뛰어난 사람은 그걸 즐겁게 만끽하는 자일 가능성이 높다. 엄마는 달콤하게 조린 갈비가 뼈에서 분리되는 쾌감을, 탄산수로 반죽해서 바삭하게 부서지는 튀김의 경쾌함을 모른다.



완성될 요리의 맛을 상상하지 못하면서 맛있게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따금 생뚱맞은 발상이 튀어나오는 것도 그래서일 거라고 대단한 논리를 깨우친 것처럼 혼자 끄덕거렸다.



한번은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그 이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발견해낸 깨달음을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말투가 맵고 생각도 행동도 야무진 그 친구가 가만히 듣더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너희 어머니 대단하시네.”

“왜?”

“음식을 잘 먹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매일 요리를 하는 거잖아.”



그 순간 발끝까지 충격이 흐르며 커다란 가마솥이 뒤통수를 땅 때리고 지나가는 것처럼 깨달음이 왔다. 그렇다. 엄마는 자기가 먹지도 않을 3인분의 밥상을 스무 해가 넘게 차려온 것이었다. 맛도 모르는 요리들을 가족이 좋아한단 이유만으로 굽고 끓이고 조리고 무치며, 우리가 한두 마디씩 던지는 평가에 기뻐하기도 하고 시무룩하게 기가 죽기도 하며 살아온 것이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나 혼자 끄덕거리던 보잘것없는 이론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건 엄마가 살아낸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을 하면서 남편을 먹이고 두 자식까지 키워낸 삶의 당당함과 찬란함에 감히 가져다댈 수 없는 사이비였다.



엄마의 요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엄마는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클립이나 숏츠 등의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두부 조림, 닭볶음탕, 돼지 김치찜 등 새로운 레퍼토리들은 생겨나는 족족 언니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나는 열이 많은 체질이라 매콤한 국물요리를 그만큼 즐기지는 못하지만,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가는 알고 있다. 그건 반찬의 맛 따위로 가늠할 수 없는 성공이고, 매 밥상마다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한 쾌거다.






* 조왕신 : 우리 무속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부엌을 관장하는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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