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일을, 보이게 만드는 법
“계약서 검토했구요, 큰 문제 없어 보인다고 회신했습니다.”
검토한 계약서를 회신하면서
담당자에게 최종 코멘트를 전달 하고 나면,
묘하게 내가 했던 일이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 계약에서 발생할 수도 있었던 문제를 미리 막았고, 덕분에 회사는 불필요한 분쟁이나 손해를 피하게 된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법무의 기여 역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생겼을 문제를 없도록 만든 데
노력이 들어간 것이 분명 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일은 법무팀에서 일할수록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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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일”은,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든다
법무팀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사전에 문제를 예방하는 일입니다.
계약서의 리스크를 찾아내고,
해석상 불리할 수 있는 조항을 조율하고,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조직의 이익을 지키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할일수록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계약을 잘 막아냈다는 건,
결국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는 뜻이고,
문제가 없었다는 건
조직 내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조용히, 그리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을수록
오히려 존재감은 더 흐릿해지는 아이러니.
이건 법무팀뿐 아니라 인사, 총무, 전략기획 같은 여러 지원 부서들이 겪는 공통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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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잘해서는 부족하다, 존재감을 남겨야 한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일을 눈에 보이게 만들기 위해선,
단순히 ‘잘했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기여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추는 것이 먼저입니다.
스스로에게 정리한 전략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성과를 숫자로 보여주기.
둘째, 전달하는 메시지에 구조를 갖추기.
셋째, 법률 언어를 조직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기.
이 세 가지를 잘하면,
단순히 계약서를 검토하는 실무자에서,
경영 판단을 돕는 전략 파트너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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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도 다르게: 존재감은 말투에서 시작된다
예전에는 “이 조항은 위험합니다”
라고 검토의견에 회신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이 조항은 향후 6개월 내에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예상 손해는 약 3억 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숫자를 넣고,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곁들이고,
과거 사례와 비교해 주면 상대방의 판단이 훨씬 쉬워집니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판단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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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한 줄, 메일 한 문장에도 전략이 있다
예를 들어,
보고서에 “문제 없습니다” 라고만 쓰기보다는,
“해당 조건은 현재로서는 큰 리스크는 없으나, 장기적으로 당사에 불리하게 전환될 가능성이 있어 향후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수정 필요” 라는 표현 대신
“이 조항은 분쟁 발생 시 해석상 당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커, 대체 문안 제안이 필요합니다”
라고 쓰면, 내가 단순히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말투 하나, 문장 구조 하나에서
전략적 포지셔닝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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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보다 중요한 건, 숫자에 담긴 의미
많은 사람들이 성과를 숫자로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숫자에 담긴 맥락과 메시지가 더 중요합니다.
“상반기 계약 260건 중 리스크 조항 17건 사전 식별,
그중 12건 조정 완료”라고 하면,
그 자체로 의미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이 숫자가 왜 중요한지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어야
그 진짜 의미가 전달이 됩니다.
예를 들어,
“이로 인해 이후 유사한 분쟁이 2건 줄었고,
평균 대응 시간이 1.3일 단축되어 실무 효율이 높아졌습니다”까지 연결되면,
그 숫자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변화의 ‘증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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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의 언어를 조직의 언어로 번역하자
마지막으로, 법무팀이 자주 쓰는 표현을
회사의 언어로 바꿔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준법 감시”보다는 “비즈니스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한다”
“법적 방어 논리 확보”보다는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
“리스크가 있다”보다는 “이 조건은 예산 편성이나 일정 확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같은 말도 이렇게 바꾸면,
법무팀의 역할이 단순한 제동 장치가 아니라,
사업을 안전하게 전개하기 위한 지원 시스템이라는
인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결국, ‘일을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한 일을 전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설명이 구체적이고 조직 언어에 가까울수록,
기여는 더 오래 기억되고,
더 단단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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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Ep.15. 전략은 참여에서 시작된다
-사내에서 영향력을 만드는 개입과 질문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