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일은 잘하는데, 왜 나는 안 보일까

- 보이지 않는 일을, 보이게 만드는 법

by 송송

“계약서 검토했구요, 큰 문제 없어 보인다고 회신했습니다.”


검토한 계약서를 회신하면서

담당자에게 최종 코멘트를 전달 하고 나면,

묘하게 내가 했던 일이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 계약에서 발생할 수도 있었던 문제를 미리 막았고, 덕분에 회사는 불필요한 분쟁이나 손해를 피하게 된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법무의 기여 역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생겼을 문제를 없도록 만든 데

노력이 들어간 것이 분명 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일은 법무팀에서 일할수록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일”은,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든다


법무팀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사전에 문제를 예방하는 일입니다.


계약서의 리스크를 찾아내고,

해석상 불리할 수 있는 조항을 조율하고,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조직의 이익을 지키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할일수록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계약을 잘 막아냈다는 건,

결국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는 뜻이고,


문제가 없었다는 건

조직 내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조용히, 그리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을수록

오히려 존재감은 더 흐릿해지는 아이러니.

이건 법무팀뿐 아니라 인사, 총무, 전략기획 같은 여러 지원 부서들이 겪는 공통된 현실입니다.



일만 잘해서는 부족하다, 존재감을 남겨야 한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일을 눈에 보이게 만들기 위해선,

단순히 ‘잘했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기여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추는 것이 먼저입니다.


스스로에게 정리한 전략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성과를 숫자로 보여주기.
둘째, 전달하는 메시지에 구조를 갖추기.
셋째, 법률 언어를 조직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기.


이 세 가지를 잘하면,

단순히 계약서를 검토하는 실무자에서,

경영 판단을 돕는 전략 파트너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말도 다르게: 존재감은 말투에서 시작된다


예전에는 “이 조항은 위험합니다”

라고 검토의견에 회신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이 조항은 향후 6개월 내에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예상 손해는 약 3억 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숫자를 넣고,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곁들이고,

과거 사례와 비교해 주면 상대방의 판단이 훨씬 쉬워집니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판단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보이게 됩니다.



보고서 한 줄, 메일 한 문장에도 전략이 있다


예를 들어,

보고서에 “문제 없습니다” 라고만 쓰기보다는,
“해당 조건은 현재로서는 큰 리스크는 없으나, 장기적으로 당사에 불리하게 전환될 가능성이 있어 향후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수정 필요” 라는 표현 대신
“이 조항은 분쟁 발생 시 해석상 당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커, 대체 문안 제안이 필요합니다”


라고 쓰면, 내가 단순히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말투 하나, 문장 구조 하나에서

전략적 포지셔닝이 시작됩니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숫자에 담긴 의미


많은 사람들이 성과를 숫자로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숫자에 담긴 맥락과 메시지가 더 중요합니다.


“상반기 계약 260건 중 리스크 조항 17건 사전 식별,

그중 12건 조정 완료”라고 하면,


그 자체로 의미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이 숫자가 왜 중요한지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어야

그 진짜 의미가 전달이 됩니다.


예를 들어,

“이로 인해 이후 유사한 분쟁이 2건 줄었고,

평균 대응 시간이 1.3일 단축되어 실무 효율이 높아졌습니다”까지 연결되면,


그 숫자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변화의 ‘증거’가 됩니다.



법무의 언어를 조직의 언어로 번역하자


마지막으로, 법무팀이 자주 쓰는 표현을

회사의 언어로 바꿔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준법 감시”보다는 “비즈니스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한다”
“법적 방어 논리 확보”보다는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
“리스크가 있다”보다는 “이 조건은 예산 편성이나 일정 확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같은 말도 이렇게 바꾸면,

법무팀의 역할이 단순한 제동 장치가 아니라,

사업을 안전하게 전개하기 위한 지원 시스템이라는

인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결국, ‘일을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한 일을 전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설명이 구체적이고 조직 언어에 가까울수록,
기여는 더 오래 기억되고,

더 단단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다음화 예고

Ep.15. 전략은 참여에서 시작된다

-사내에서 영향력을 만드는 개입과 질문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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