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8. 리스크만 말해서는 전략 회의에 들어갈수없다

– 사업팀의 언어로 말하기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by 송송



"계약서에 손해배상액이 과도합니다."


법무팀 입장에서는 꽤 심각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만약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을 책임져야 하며, 그 부담은 결국 회사 전체의 재무 리스크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회의실에서 이 문장을 던졌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의외로 심드렁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손해배상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설마 그렇게까지 청구하겠어요?” 이런 반응은 법무팀에게 익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장면입니다.


우리가 정리한 리스크가 실제로 이해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또 그냥 법무팀이 늘 하는 말 정도로 치부된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맞는 말이 설득력 있는 말은 아니다


법적으로는 옳은 말이고, 조항 하나하나의 리스크도 근거를 갖고 설명했지만, 상대방이 그저 듣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질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해는 되더라도, 행동은 하지 않는 말이 되는 순간, 그 설명은 사실상 조직 내에서 효력을 잃습니다.


우리는 법적으로 옳은 이야기를 합니다. 판례도, 유사 사례도, 통계도 준비해서 근거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 말이 상대방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리스크는 늘 존재합니다. 하지만 리스크에 대한 설명이 ‘내 일’로 들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논리적이고 근거가 탄탄해도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법무팀이 조직 내에서 더 전략적인 역할을 하려면, 이제는 '법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라 '조직이 움직일 수 있는 말'을 설계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리스크는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말해야 합니다


같은 리스크라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해석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IT팀, 영업팀, 기획팀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각기 다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해배상 한도 없음'이라는 문제 이렇게 번역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IT,기술팀 에게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장비 결함이 발생했을 때 손해 전액을 부담해야 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 실패가 곧 비용 리스크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IT, 기술팀은 ‘이게 내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야 움직입니다.


영업팀에게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서비스 중 장애가 생기면 고객이 청구하는 손해배상 요구를 제한할 수 없습니다. 영업 리스크와 직결됩니다.”

실제 매출과 클라이언트 대응까지 연결되는 언어여야 영업팀이 ‘이건 그냥 리스크가 아니라 영업 방어선의 문제구나’ 하고 체감하게 됩니다.


기획팀에게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현재 조건은 손해배상 예산 예측이 어렵습니다. 유사 계약 대비 리스크 프로파일이 과도하게 높습니다.” 이런 식의 표현은 예산, 계획, 수치 중심의 사고를 하는 기획팀에게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갑니다.


이처럼 하나의 리스크가 상대의 관심 키워드, 일의 방식, KPI 구조에 따라 다양한 언어로 ‘재번역’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생깁니다. 저는 이 작업을 ‘멀티 프레이밍(Multi-Framing)’이라고 부릅니다.



전략 회의에 참여하려면, 프레이밍 능력이 필요합니다


조직 내 전략 논의에 참여하려면 '법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넘어서, '그 문제가 해당 부서에 왜 중요한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프레이밍 능력은 단순한 말솜씨가 아니라, 법무팀의 전략적 역할을 확장하는 핵심 역량입니다.


법무팀이 조직 내에서 실질적인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법률 용어를 넘어서 '행동으로 연결되는 언어'로 메시지를 바꾸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조직의 각 파트는 모두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언어를 배워야 하고, 그것을 우리 메시지에 녹여내야 합니다. 더 이상 법무팀의 메시지가 단지 “참고용”으로 머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략 회의로 가는 입장권입니다.



법무팀도 '말의 번역기'를 갖춰야 합니다 - 법무조직에서 체계적으로 구조화하기


그렇다면 이런 프레이밍 능력은 개개인의 센스나 경험에만 기대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역량일수록 조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조화해 두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리스크 유형별 ‘부서 맞춤 설명 문장’ 정리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건, 주요 리스크 유형에 대해 각 부서의 언어로 다시 표현해보는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무제한 손해배상이나 일방적 해지권, 개인정보 위반처럼 자주 등장하는 리스크들을 리스트업하고, 이를 IT, 기술팀, 영업팀, 기획팀의 시각에서 각각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미리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같은 내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번역'해보는 연습을 쌓다 보면, 점점 더 빠르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부서별 키워드 및 KPI 도출

이와 함께, 부서별로 어떤 키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파악해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기획팀은 주로 예산이나 ROI, 유사 사례와 같은 지표 중심의 언어에 익숙하고, IT기술팀은 장애 발생률, 복구 시간, 시스템 안정성과 같은 실무적이고 계량화된 리스크를 중요하게 봅니다. 영업팀은 고객 클레임, 매출 영향, 신뢰도 하락 등 외부 평판과 직결된 언어에 민감합니다.


내부 커뮤니케이션 템플릿 활용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팀 내에서 말의 스타일을 통일시키는 커뮤니케이션 템플릿을 갖춰두는 것입니다. 법무팀의 구성원이 누구든 비슷한 톤과 구조로 설명할 수 있도록, 일정한 포맷과 표현을 공유해두는 것입니다.


AI 리포트 자동화를 위한 문장 데이터 축적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런 다양한 문장과 표현들을 내부 데이터셋으로 축적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향후 GPT 같은 AI를 활용해 자동 리스크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계약서 분석을 자동화하는 시점이 오면, 우리가 쌓아둔 ‘말의 자산’이 매우 유용한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문장을 예쁘게 정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무팀의 메시지가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전략적 장치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준비하는 이 모든 과정은 보고서를 잘 쓰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조직이 법무팀의 말을 움직임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설계입니다. 그리고 이 설계는, 작은 언어 습관 하나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맞는 말보다, 움직이게 하는 말


리스크를 말하는 방식 하나에도 전략이 필요합니다.
법무팀이 리스크 전달자(notifier)로 머무를 것인지, 전략 설계자(advisor)로 자리매김할 것인지는 결국, 말하기 방식에서 갈립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늘 단순합니다. 법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라, 움직이게 하는 말.

그 시작은, 사업팀의 언어로 다시 말하기입니다.





다음화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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