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달, 검은 달, 그리고 파란 달

- 천의 얼굴, 가능성, 우주의 신비, 큰 뜻. 폴 베를렌 '하얀 달'

by 가을에 내리는 눈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음악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내가 그의 음악을 처음 만난 것은 국민학교 때였다. '아니 무슨 음악이 이래?' 그것이 나의 첫 반응이었다. 쇤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와 거의 같은 계열의 난해하고 들어주기 힘든 소리의 총체였다. 적어도 그때의 내게는 그랬다.


그러다가 또 우연히 그의 그야말로 아름다운 멜로디의 '정상적인' 음악을 듣게 되었다. 아침 시간 듣기 좋은 재즈음악 분위기가 나는 그의 여러 피아노 연주곡들. 새로운 드뷔시였다. 그의 이런 음악 중에 특히 나는 '네 개의 손을 위한 작은 피아노 모음 춤곡' (한 대의 피아노에 두 사람이 앉아 함께 연주하니 손이 모두 네 개인 것이다)을 즐겨 듣는다. 물론 우리가 잘 아는 '달빛' (Clair de Lune)이라는 신비스럽고 고운 피아노곡도 있다. 그의 이런 달콤한 (그러니 인상주의보다는 후기낭만쪽에 더 가까운 곡들) 피아노 음악들을 모아놓은 한 시간짜리 영상을 나는 자주 듣는다. 아주 좋다.


후일 알게 되었다. 드뷔시는 현대음악의 큰 줄기를 이루는 '인상주의'를 시작한 사람, 쇤베르크는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작곡가.


오늘 드뷔시 얘기로 시작한 이유는 달빛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이다.


달은 본래 어떤 색깔을 하고 있을까? 우주에서 바라보는 달은 짙은 회색빛이다. 하지만 지구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달의 색깔은 조금 과장을 더하면 '천 가지 색'의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밤의 달 색깔은 노란색이다. 그러나 낮동안의 하늘의 달은 흰색에 가깝다. 흔한 것은 아니지만 붉은색 달이 있다. 몇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파란색의 달도 있을 수는 있다, 물론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특별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그러니 우리네 일상 속에서 사실 파란색 달은 거의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더 정확할 것이다. 낮동안 어쩌다 우리가 보았다고 생각한 파란색 달, 푸른 하늘과 겹쳐진 착시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검은색의 달도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그 순간에도 달은 그곳에 있다. 그러니 어두운 색이고 굳이 검은색이라 말한들 그리 틀린 것은 아니리라. 매달 달이 처음 생겨 나올 때, 아직은 초승달도 아닌 그런 상태에 있을 때. 그때는 태양빛이 우리가 보는 쪽의 달을 비추지 않으니 그저 깜깜할 수 밖에. 태양과 지구와 달의 상호 위치가 변해가면서 이제 서서히 달이 태양의 빛을 자신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 눈에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우리가 달의 모습을, 달의 색을 보고 느끼게 되는 과학적 이유다.


달은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니다. 별이 아닌 것이다.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의 위성 중 하나. 그저 태양빛을 받아 그 색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 뿐이다. 그러니 사실 달빛은 반사 특히 '산란' (scatter, 이리저리 널리 흩뿌리다/살포하다/사방으로 흐트러뜨리다, 빛을 어지럽게 사방으로 퍼뜨리는 것)이라는 난반사 과정을 통해 태양의 빛을 다른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달빛이 결국은 태양의 빛이라니!


그 반사와 산란의 과정에서 태양빛의 파장의 종류별로 그 생명력의 길이가 달라진다. 금새 산란되며 결국 우리들의 눈에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파장들, 이를테면 파장이 짧은 파란색 계통. 또 오래 살아남아 우리 눈에 도달하는 파장이 긴 것들, 붉은색 계열.


그래서 태양이 지구 가까이 수직으로 떠있는, 그러니까 파장들의 필요 이동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아지는 낮 시간의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태양의 높이가 낮아지고 그래서 그 빛이 지표면을 따라 좀 더 멀리 길게 이동해야 하는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의 저녁에는 하늘이, 태양이 붉게 보이는 것이다. 이런 여전히 내게는 어려운 물리학적 설명은 여기까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르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어찌 쉽게 설명할 수 있겠나? 도리도 아니고!


몇 년 전 미국항공우주국 (NASA)이 지난 10년에 걸쳐 이탈리아 전역의 여러 장소에서 촬영한 보름달의 색상 모음집을 소개했다. 열심히 눈을 부릅뜨고 몇 번을 세어본 결과 각기 다른 색깔의 보름달이 무려 48가지나 되었다. 마치 물감 혹은 색의 기본적 종류와 그 배열표를 보는 듯 했다. 매혹적인 서로 다른 붉은색 계열의 것들부터 보석 호박 (amber)의 짙은 황토색, 노랑과 옅은 노랑, 코발트 블루의 파란색 여러 색상들, 회색빛 여러 종류, 거의 흰색에 가까운 달의 모습. 나로서는 아주 귀한 경험이었다. 여러분도 한번 찾아서 보시라. 신기함과 아름다움이 함께 가득 몰려온다.


이제 붉은 보름달을 살펴본다. 레드 문 (Red Moon) 혹은 블러드 문 (Blood Moon)이라고 부른다. 붉은색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이름이다. 블러드 문은 개기월식때 나타난다. 달과 지구,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여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현상, 월식 (lunar eclipse, 달의 먹힘/그 빛의 상실/그래서 어두워짐).


달의 일부가 지구의 본 그림자에 가려진 경우를 부분월식이라고 하고 전부 가려진 경우를 개기월식 (다 개, 이미 기, 그러니까 모조리/전부/온통의 뜻 - 달 전부가 이미 다 지구 그림자에게 잡아먹힌 경우, 즉 다 잠식되고 달의 그 어느 부분도 아무 것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이라 한다.


그러나 지구가 이렇게 달을 가려도 태양빛은 워낙 강력하다. 몇 가지 이유와 그에 따른 방법으로 결국에는 그 빛이 달에 도달한다. 대기의 굴절, 파동이자 입자인 빛의 휘어짐과 산란 등이 그 주된 요인이다. 다만 이때는 아침 저녁 태양의 노을처럼, 파장이 짧은 푸른색 태양빛은 이미 거의 흩어져 사라지고 파장이 긴 붉은빛만 지구의 대기를 통과해 굴절되면서 달에 도달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달에 도착한 붉은색 빛을 달은 다시 반사한다.


이렇게 태양의 붉은빛이 지구를 넘어 달에 도달하고, 달이 이 빛을 반사하면서 달이 핏빛처럼 붉게 보이는 블러드 문 현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간접적으로 태양빛의 파편을 맞은 달의 뜻밖의 색, 이리 말해도 되려나?.


한반도에서도 며칠 전 3년만에 개기월식과 그에 따른 붉은빛 달, 그러니까 블러드 문을 볼 수 있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정상적인 둥근 보름달, 차츰 가려지는 달의 모습 (부분월식의 시작), 그리고 이어진 달의 완전 잠식 상태 (개기월식, 약 20분정도 지속), 이때 나타난 블러드 문. 충분히 멋졌다, 사진으로 본 것만으로도. 다음번 이런 기회는 4년 후인 2029년 6월에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글쎄, 그때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다.


태양빛이 도달해야 하는 달까지의 거리/대기 속 먼지의 정도/대기 중 입자들의 크기/그에 따른 산란의 정도/태양과 지구와 달의 상호 위치/지구의 밤과 낮 그 구체적 시간대/화산 폭발이나 대형 산불 등의 자연재해/우리가 보고 있는 부분이 달의 밝은 쪽인가 어두운 쪽인가의 여부/달 표면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 각각의 빛 흡수, 반사 그리고 그 산란의 정도/인간의 착시 현상, 이렇게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우리 눈에 비치는 그때의 달의 빛깔을 결정짓는다. 참으로 신기하고 어려운 천체물리학의 세계다.


다음은 '파란색 달 (Blue Moon)'이다. 사실 이것은 달의 빛깔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30일이 조금 못 되는 달의 공전주기로 인해 2-3년에 한 번은 1년에 13번, 그러니까 어느 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뜨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의 그 두 번째 보름달을 블루 문이라고 한다. 이 '블루'라는 단어는 사실 파란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비슷한 발음이 나는 다른 단어에서 온 것이라 한다. 그 원래 단어의 뜻에 '배반하다, 배신하다' 뭐 그런 뜻이 있단다. 한 달에 한 번만 뜨기로 한 (그러니까 1년에 12번 떠야 하는) 약속이나 규칙을 어기고, 뜬금없이 떠오른 그 보름달은 배신자라는 뜻이다.


재즈를 좋아한다. 압구정동 집 근처 로데오 거리에 유명한 째즈 클럽이 있었다. 내부는 온통 파란색 장식으로 가득했다. 그 클럽의 이름이 '원스 인 어 블루 문' (Once in a Blue Moon)이었다. 나는 늘 궁금했었다. 이 영어 숙어의 원래 뜻은 '아주 뜸하게, 몇 년에 겨우 한 번' 그런 뜻이다. 아니 그렇다면 여기 주인은 고객들이 그렇게 뜸하게 이 집에 오기를 바라는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인데?


나중에 들어보니, 자주 있는 일은 결코 아닌,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의 참으로 아름다운 순간' 그런 의미를 생각했다고 한다. '화양년화', 꽃같이 아름답고 화려했던 시절, 그것과 비슷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끝으로 '검은 달' (Black Moon)에 대해 살펴본다. 이건 좀 쉽다. 보름달 (풀 문, full moon)에 대한 반대 개념을 가진다. '새로 생겨나는 달 (new moon)'은 매달 반복되는 달 사이클의 시작점이다. 이때 달은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쪽은 달의 어두운 반쪽, 그러니까 태양빛이 비추지 않는 곳 (shadowed side)이다. 그러니 당연 어둡고 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 역시 달의 구체적, 실질적인 색깔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한 해에 나타난 13번째 보름달을 가리키는 말이 블루 문이듯이, 그렇게 등장하는 13번째 새로 생겨나는 달이 바로 블랙 문이다.


오늘의 시를 본다. 드뷔시로 하여금 명곡 '달빛'을 작곡하도록 만든 그 시다.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른렌 (Paul-Marie Verlaine)의 '하얀 달'이라는 시다. 나는 그의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또한 편견이고 편협한 내 사고에 기초한다. 하지만 나 좋으려고 읽는, 애써 번역까지 하는 외국 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 읽어야 하지 않겠나? 내게 그런 권리와 자유는 있다.


나는 아르튀르 랭보의 시를 좋아한다. 인간 랭보에 대해서도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나의 브런치 글에서도 벌써 몇 번 그의 시를 소개했다.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Arthur Rimbaud)는 37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쓸쓸하게, 그리고 허망하게 죽었다.


불과 17살의 나이에 폴 베를렌을 만난다. 부적절한 육체적 관계를 지속한다. 그때 베를렌의 나이는 랭보보다 10살이나 많았다. 랭보는 여전히 미성년자였다. '취향의 차이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어느 프랑스 철학자가 그랬다. 맞다, 나도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런데 성적인 취향에 관한 한, 나는 여전히 좀 생각을 달리한다. 결과적으로 랭보의 불행한 삶과 젊은 나이 죽음에는 이 부적절한 성적 취향이 크게 작용했다. 나는 그렇게 본다. 그리고 랭보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폴 베를렌에게 훨씬 더 많은 비난 가능성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시를 잘 읽지 않는다. 그의 인상도 나는 별로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원하고 뜻하는 바가 그런 개인적인 편협한 이유보다는 당연 앞서야 하기에 이 시를 번역했고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그래도 역사적, 예술사적, 아니 지금 내가 늘어놓은 이런 에피소드적인 의미와 얘깃거리가 있으니까!


하얀 달 (White Moon)

- 폴 베를렌

달이, 하얀 달이,

나무들 사이로 빛난다 :

밝게 빛나는

작은 가지들 저마다

흔들거리는 수많은 잎 아래로

자신의 목소리를 질주하듯 날려보낸다


오 참으로 사랑스러운 존재들이여.


여기저기의 물웅덩이들은

마치 심연의 거울처럼

바람이 흐느껴 우는

검은 색 젖은 버드나무의 실루엣을 투영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꿈을 꿀 시간이다, 시간도 잠이 든다.


거대하고, 달콤하게 달래주는,

그렇게 부드러운 위안이

어느 한 별에 의해 자줏빛으로 물든

저 천상의 고요로부터 내려와

가만히 떨어지고 있다...


너무도 아름다운 시간이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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