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쏠 수 있어! 쏠 수 있어!

다 내가 부족한 탓이겠거니...

by 마르쉘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내가 T회사에 다지고 있었을 때... 나도 비록 적은 연봉은 아니었지만,

대학병원의 간호사였던 내 아내의 연봉은 나보다 훨씬 많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 10년 정도가 더 흘렀을 때 간호사 생활 20년 차에 접어든 아내의 연봉 액수를 알고 나서는

남편인 나조차 '대학병원 간호사의 수입'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재정립하거나 머릿속에서 지워야 했다.


즉. 내 아내의 연봉 수준은 내가 짐작으로나마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었고,

그렇게 우리 부부 둘의 합친 연봉은 10년 전에 이미 억대를 넘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부부 합산 수입이 억대는 될 것 같은 친구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친구로 구분하고 나누어 보고 있더라...

친구들끼리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말이다.


일화가 있다.


그 10년 전...

여덟 명 정도가 되는 유년시절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온 친구들 모임에서

억대 연봉을 받을 것 같은 몇 놈들이 각자 돌아가며 골프 라운딩 갔을 때

(모두 같이 동시에 골프에 입문한 사이기도 했다)

한 번씩 도합 100만 원이 좀 넘는 친구들 그린피 비용까지 한번 시원하게 한턱 쏘기로 했다.

세 놈 정도가 그 쏘는 대상이 되었고 나는 그 세 놈 속에 들지 못했다.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연봉이나 수입 같은 것은 예민한 부분이고 개인 프라이버시라서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서로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뭐지? 다 공유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여하튼,

친구들이 나를 볼 때 한 턱을 쏠 수 있는 친구로...

내가 그만한 돈을 흔쾌히 쾌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는 보이지는 않았었나 보다.

사람들은 특히 제일 가깝다고 생각했던 동네 친구들은 유독 나를 '박봉일 것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나 보다.

친구들 눈에는 내가 그렇게 빈약하고 없어 보였을까?


나도 쏠 수 있어!


나도 적은 연봉이 아니었고, 특히 나의 아내가 대학병원의 간호사인 것도 이미 알고 있던 친구들인데....

대학병원 간호사의 연봉 초임이 얼마인지 대략 감만 잡고 있었어도

나와 간호사 20년 차인 우리 부부의 수입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 친구들은 일단 나를 그린피를 시원하게 쏠 수 없는 '무능' 쪽으로 제쳐놓은 것을 보면...

" 야! 너도 너네 부부 합치면 1억 넘지 않아?" 하고 한 번쯤이라도 물어보지도 않았던 것을 보면...

아마도 나를 그리 여유 있는 놈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그린피를 쏘겠다고 했어도 그 돈을 집사람에 받아내는 게 더 큰 문제였지만 말이다.


총 맞은 것처럼...


나야 돈이야 굳었으니 좋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해서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씁쓸했다.


총 맞은 것처럼 아프고 많이 섭섭하고 서운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야 이 XX덜아! 나도 마누라랑 합치면 억대 연봉이야! XX들아~" 하고 유치하게 내 수입을 밝히는 것도

참 우스웠다.


뭐, 이제 와서 그때 이야기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저 내가 잘 나가던 시절의 한때를 그리워하는....

과거를 못 벗어나고, 과거에 너무 얽매여 있는 '현실부정' 같은 푸념뿐인 것을....


그러나 한 가지!


친구 관계이든

사회관계이든

지인 관계이든

대한민국의 관계 속에서 '잘 나감'의 지표는 결국 '돈'이라는 것을..

아주 확실하고 분명하게 느꼈던 그때가....

나에게 있었다.




지난날!

나는 한때 연봉도 적지 않았고, 흔히들 말하는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던 기업, '아래아 한글'을 만든 '한글과컴퓨터'에서 웹마스터로 활동하며

기업의 공식 웹사이트와 여러 패밀리 웹사이트의 관리 및 운영을 총괄했다.

웹과 DB를 활용한 웹 마케팅 부서에서도 영업 부서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했다.


그러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임원 출신 여성 CEO가 새로 영입되면서

기업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어 충성을 다했던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회사에 대해 매우 큰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렇게 회사에서 '토사구팽'을 당하고 나서도, 한때 그 회사에 몸담았었다는 자부심은 많이 컸다.


이후에 재취업한 곳은 문화재청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재재단이었다.

처음엔 2년짜리 '전문계약직'으로 입사했지만,

곧 정규직이 되었고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통을 견디지 못했고 사람들이 너무 싫었지만

나의 가족 네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임을 잊지 않고 조직에서 끝까지 버티기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연봉과 나의 정신적인 건강을 충분히 맞바꿀 만했다고 결론을 내렸고

아내와 두세 달 상의 끝에 결국 7년 만에 스스로 그곳을 나왔다.

사표를 던지고 나올 그 당시.."돈은 벌면 되지... 연봉에 연연하지 말자" 했다.


친한 지인들이나 친구들로부터 "미친놈, 병신" 소리를 들었다.

"그 좋은 꿈의 직장을 왜 나왔냐"는 말을 한 동안 들었지만...

그것마저 금방 그쳤다.


역시 사람들은 타인이었고, 자신들의 일은 아니었고, 그냥 뭐... 상관없는 일이었다.

남의 일에는 그 다지 관심이 없었다.




이후, 해외 온라인 비즈니스 모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실제로 뛰어들어 수익을 내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지금까지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제는 국내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도 발을 담그고 있다.

아주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평타는 치는 수준으로 꾸준히 사업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수년.. 시간이 많이 흘러갔고

지금은 수입이 많이 줄어서 그때같이 여유가 있지도 않고 잘 나가고 있지 않다.

결국 나도 자영업자였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 쪽으로도 매출이 크게 줄었고,

한국우체국의 국제 배송 운임 체계 변경으로 해외 배송 운임이 10배 이상 인상되어

해외로 수출하는 업자들에게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어느 정도 매출을 올리고는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아쉬움이 크다.

이러다 보니 자꾸만 나의 왕년, 잘 나가던 과거의 행복했던 경력을 운운하게 된다.

참 비굴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과거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과거에 기댄다고 흉이나 볼 텐데 말이다.


그렇다.

요즘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동기들 사이에서, 지인들 사이에서...

점점 위축되고 작아져 가고 있는 것 같고, 자꾸만 '존재감'이라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자꾸만 옛날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존재감'이 아닌 '자존감'을 좀 높여서 살아야겠다.

초등학교 동창회를 나가게 된 지 2년이 지났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있어서 좋기는 한데 가끔, 요즘 너는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온다.

어떤 놈은 나에게 너는 진짜 직업이 뭐냐고 물어본다.


직업을 뭐라고 해야 좋을지 말해줄 명함이 없다.

예전에는 나에게도 그럴듯한 '명함'이 있었다.

'명함'이라는 것이 '존재감'을 더 높여주는지 '자존감'을 더 높여주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명함이 있기는 하지만 해외 바이어들에게 보내는 용도로 사용하는 명함만을 가지고 있다.

별도로 국내 비즈니스용 명함은 새기지 않았다.


" 나? '반 백수'... 그냥 그렇게 불러라" 대답한다.

차라리 나도 그게 편하다.

직업도 있고 돈은 버는데 , 뭔가 항상 부족하다고 느낀다.


명함을 다시 새긴다면 뭐라고 새길까?


웹디자이너...

웹마스터...

온라인마케터...

자영업자...

해외 비즈니스 온라인 셀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인터넷 작가...

프리랜서...


사업자등록도 하고 어엿하게 해외 수출도 하고 있지만, 그런 거 말고..

하루 중에 제일 나른할 즈음이면 이렇게 카페에 와서 글도 쓰고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남에게 주거나 팔지 않고 오롯이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좀 많이 여유로운...


'나'라고...


명함을 새겨야겠다.


그리고....


"어디 보자~!"


그래도 오늘 하루,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만큼 위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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