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북을 마치며
누구나 지워지지 않는, 삶의 태도나 생각을 바꾸게 하는 사건이 있지 않을까.
난 겁이 참 많은 사람이다.
이번 이야기는 그 사건을 통해 달라진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들의 기록이다.
폭력이 연상되는 장면의 강도를 최대한 낮추려고 했지만 그쪽으로 민감한 분들은 읽지 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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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으로 기억한다.
영화 "사랑과 영혼"으로 전국이 도자기로 넘쳐나고 나쁜 손 고소고발로 변호인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던 그때.
친구와 그 여자친구. 또 다른 친구와 후배. 그리고 나(뭐시 복잡노?? 그냥 5명). 우리도 그 열풍에 동참했다. 지금은 기억도 거의 안 나지만.
영화의 여운을 느끼며(오~~ 마이러브~ 마이 달링~~~ 중얼거리며) 기분 좋게 술 한잔하고 집에 가는 길.
유행하던 오락실의 펀치기계(펀치볼을 위에서 잡아당기는 것)에 모두들 발걸음을 멈췄다.
차례로 한 번씩 펀치를 날렸고 주위엔 구경꾼들과 순서를 기다리는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마지막 순서의 후배.
이 녀석은 술에 취한 나머지 구경하던 분의 머리를 펀치볼로 착각(?)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순식간에 두 무리는 뒤엉켜 흩어졌고 나도 얼떨결에 반대 무리의 한 분과 뒹군다(우린 그냥 구르기만 했다)
역시 구경의 백미는 불구경과 싸움구경인가??
많은 행인들이 단체싸움 관람객이 되어 지켜보는 가운데 수적으로 월등히 많은 상대편(대충 10명은 된 듯)에게 우리는 상당히 심한 마사지를 당했다고 한다.
여기서 좀 이상하지 않은가?
당했다고 한다??
그럼 너는?? 안 당한 거야??
여기서 나의 치욕적인 인생수치
하나가 기록된다.
뒹굴던 나는 어느샌가 구경꾼으로 위장하게 되었다.(고의는 아니었고)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장면.
친구가 악당 몇 명에게 둘러싸여 구석구석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여자친구랑 같이 온 친구였다.
익숙한 실루엣에 고개를 좀 틀었다.
저 멀리 남자친구가 곤경에 빠져있는 광경을 보며 떨고 있는 그녀.
그 파노라마 같은 장면을 번갈아 보며
겁에 질려 꼼짝도 못 하고 벌벌 떨고 있는 나.
몇 초 밖에 안 되는 찰나였지만 시간이 멈춘 듯했다.
누군가 "경찰 온다" 외쳤고 악당들은 친구를 비웃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먼저 그녀에게 다가갔다.
"일단 집에 가있어 연락 줄게" 한 마디 던지고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친구에게 달려갔다.
"야 괜찮나?"
"반점아 내 얼굴 괴안나? 아 C~ 막는다고 막았는데... 다른 친구들은 어딧노?"
"몰라 다 흩어져서..."
" 야~ 쪽팔린다. 빨리 가자~"
그렇게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도 집으로 갔다.
다음날 연락된 다른 친구와 후배는 우찌 집구석까지 갔는지도 모르겠단다.
난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비록 몸은 마사지받지 않았지만 마음은 혈자리를 구석구석 야무지게 찔린 듯 쓰리고 아팠다.
그때 생각했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만
마음에 남은 그 비겁함, 그 찌질함, 그 부끄러움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거라고.
그때 또 다짐했다.
어떤 상황에서 맞아 죽더라도(인명은 재천이다) 비겁하진 말자고.
어떤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쪽팔리게 살지는 말자고.
그리고 이제부터, 그 다짐이
내 삶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얘기해보려고 한다.
<4–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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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글 초보가
5수인지 6수인지도 모르겠는
브런치 작가 입문 후, 이렇게 브런치 북을 감사하게 끝낼 수 있었던 건
가장 먼저 저를 알아봐 주시고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유혜성 작가님 덕분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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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한 곡도 첨부해 봅니다.
작곡 : SUNO AI앱
작사 : 감성반점
제목 : 널 지킬 너
https://suno.com/s/fd8pCk2bPUt9Tkb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