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발표를 기다리며

공지와 레딧 새로고침으로 채운 10월의 나날

by 유지니안

시간이 흘러 10월. 한창 데이비스의 가을을 만끽하면서도, 우리가 곧 떠나야 함을 직감하게 된 그때. Bar 시험 결과 발표 예정일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Bar 시험은 52개 주에서 거의 같은 날에 치러지는 반면, 그 결과는 주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주는 9월 말에 발표가 나오는가 하면, 어떤 주는 11월이 되어서야 발표한다. DC Bar는 통계적으로 10월에서 11월 사이에 발표가 나곤 했다. 특히 1년 전에는 10월 중순에 발표한 바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그동안의 통계를 볼 때, 올해는 10월 초에 날 것 같아."

하지만 10월이 다 되어가도록 DC Bar 홈페이지 공지사항엔 아무 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남편은 초조하고 불안한지 집안일과 학업에 잘 집중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Bar를 위해 꽤 많은 것을 포기했다. 남편은 '이렇게 나와 엘리가 희생했는데도 Bar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 속에 살았다. 오죽하면 reddit에 가입해서 barexam 서브레딧을 계속 새로고침하며 보고 있었을까.


barexam 서브레딧에는 남편과 같이 7월에 시험을 봤던 사람들이 계속 글을 올리고 있었다. 더 빨리 결과가 나온 주(State) 합격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탈락자들은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 아니면 일단 직장부터 구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글을 올리는, 그야말로 대혼란과 대환장의 콜라보 파티가 따로 없었다.


남편은 어느 주에서 발표가 났는지 매일매일 체크했다.

"오늘은 텍사스에서 발표가 났어. DC랑 비슷한 때에 결과가 나오는 주야."

"이상하네, 뉴욕에서 벌써 발표가 났다는데? DC보다 늦게 나왔던 것 같은데."

유달리 이번 DC Bar 시험 결과는 늦게 나왔고, 남편의 초조함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공지사항 떴다!!"

드디어 DC Bar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이 올라온 것이다.

As previously announced, the July 2023 Uniform Bar Exam results will be released to bar exam takers on or before November 3, 2023. The results will be made public 2-3 days following the notification to exam takers.
(이전에 공지된 바와 같이, 2023년 7월 통합 변호사 시험 결과는 2023년 11월 3일 또는 그 이전에 시험 응시자에게 공개될 것입니다. 결과는 응시자에게 통보된 후 2-3일 뒤에 공개됩니다.

뭐야, 이게 무슨... '이전에 공지된 바와 같이'라니? 11월 3일까지라고?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이 10월 중순인데 11월 3일까지라니. 그것도 'on or before'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표면적으로는 기존 발표 기한을 재확인하는 평범한 공지였지만, 결과 발표만을 기다리던 우리에겐 "As previously announced(이전에 공지된 바와 같이)"라는 표현이 "그만 좀 물어보라"는 뜻으로 읽혔다.

남편은 좌절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공지를 다시 올릴 정도로 많은 DC Bar 지원자들이 남편과 같은 상태이상에 빠져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공지사항 또 떴다!!"

드디어 DC Bar 시험 결과가 나왔나 싶어 내 가슴도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일 오전 9시 이후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아... 내일 합격자 발표를 하겠다는 공지였다. 남편은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말했지만,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음... 몸은 솔직하다.

그렇게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는 정말 너무 길게 느껴졌다. 이 시험은 단지 남편 혼자 본 것이 아니다. 우리 가족, 나와 엘리가 합심해서 노력한 결과인 것이다. 내 노력은 과연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그때, 남편이 레딧에서 이상한 글을 하나 읽었다면서 보여주었다.

"미리 합격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데?"

요는 이랬다. 작년 7월과 올해 2월에 시험을 봤던 사람이 쓴 글이었는데, 시험 볼 때 썼던 프로그램(ILG Exam360)에 다시 로그인해보면, 합격자와 불합격자에게 다른 알림이 뜬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올해 2월에 떨어졌을 때 "You can view Essay/MPT Study Materials"라는 노란색 알림이 떴었는데, 이번에도 동일한 노란색 알림이 떴다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이 글을 본 수많은 DC Bar 응시자들이 같은 방식으로 확인한 결과, 어떤 사람들은 노란색 알림이 보이지 않고 페이지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이거 한 번 해봐야겠어."

"굳이 먼저 할 필요가 있겠어? 내일 새벽이면 발표가 나는데? 혹시 노란색 알림이 뜬다고 해도 신빙성이 떨어져서 결국 최종 발표 때까지 마음 졸이면서 있어야 하잖아."

하지만 그동안 결과 발표를 기다리면서 거의 말라 비틀어지기 직전이 되어버린 남편은, 도저히 그 하루를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방으로 들어가서 노트북으로 레딧에서 나온 방법을 실행해보았다.

나는 솔직히 저게 얼마나 맞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 그런데...

"오! 나 노란색 알림 안 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내심 안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내일 발표가 걱정이 아닌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다음날 어르스름한 새벽 그냥 눈이 떠졌다.

'시험 결과는 아직인가?'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6시 15분. DC Bar 결과는 DC 시간으로 오전 9시, 캘리포니아 시간으로 오전 6시에 이미 발표했을텐데..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이상하게 집이 너무 적막했다. 만약 합격했으면 남편 성격에 벌써 나를 깨웠을 텐데.

'혹시... 떨어졌나?'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천천히 밖으로 나가보니... 남편은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합격자 발표를 이미 확인하고, 상심한 마음에 잠을 자고 있는 건가?


남편을 깨워보았다.

"일어나 봐. 혹시 결과 나왔어?"

남편이 부스스하게 일어난다.

"아니? 확인 안 했는데?"

아니, 그렇게 합격자 발표를 노래 부르고 다닌 사람이 맞나? 한 달 내내 히스테리를 부리고 정신쇠약에 걸릴 것처럼 굴더니, 막상 당일에 합격자 발표를 안 보고 자고 있다고?

"빨리 확인해 봐!"

남편이 부리나케 노트북을 켰다. DC Bar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그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 혼자 확인하고 싶어."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만약 합격이면 케이크 사러가자고 해줘” 하고 부엌으로 갔다. 커피라도 내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손이 계속 떨렸다.

1분... 2분... 3분...

이상하게 너무 조용했다. 합격했으면 소리를 질렀을 텐데. 설마 정말 떨어진 건가? 남편에게 뭐라고 위로해야 하나. '괜찮아, 다시 보면 돼' 같은 뻔한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자기야..” 차분한 목소리.

“응?”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쳤다.

절대 실망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리라. 부담을 주지 않으리라.

“케이크 사러가자.“

남편이 나즈막히 말했다.

"진짜? 진짜야?"

"그래! 내가 잘못 들은 것 아니지? 한 번 직접 봐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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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mmittee on Admissions is pleased to inform you that you were successful on the July District of Columbia administration of the UBE.

You are hereby notified of your scaled score(s):
Written Component Scaled Score: 157.4
MBE Scaled Score: 172.8
UBE Scaled Score: 330

Your UBE Score is transferable to any UBE jurisdiction with a minimum passing score of 266 and to any other UBE jurisdictions with a passingscore equal to, or below the score you attained as long as you meet the jurisdiction’s eligibility requirements. For a list of UBE jurisdictions andtheir passing scores see: https://ncbex.org/exams/ube/score-portability/minimum-scores/. For information on eligibility requirements pleasecontact the jurisdictions directly.


successful이라는 단어가 눈에 박혔다. 2년간의 미국 생활,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지난 3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엘리야! 일어나 봐! 아빠 시험 합격했대!"

잠에서 깬 엘리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왔다.

"좋은 거야?"

"응! 이제 아빠 더 이상 학교에서 계속 공부 안 해도 돼! 엘리랑 더 오래 있을 수 있어!"

엘리는 아직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우리가 기뻐하니까 같이 웃으며 폴짝폴짝 뛰었다. 우리는 거실 한복판에서 서로 껴안고 빙빙 돌았다.


그 순간,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남편이 열심히 공부한 결과지만, 이건 우리 가족 모두의 승리였다. 매일 도서관에 가는 남편을 배웅하며 "파이팅!" 외쳐주던 엘리, 시험 기간 내내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았던 나, 그리고 불안과 압박감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남편.

2여 년 간의 미국 생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이 아침의 함성이 아닐까. 낯선 땅에서 우리가 함께 이뤄낸 작은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 미국 Bar 시험 이모저모 >
- 미국은 주(State)마다 변호사 자격이 다르며, 각 주별로 Bar 시험을 봐야 함
- DC Bar는 외국 변호사들이 많이 응시하는 시험 중 하나
- 합격률은 주마다 다르지만 보통 50-70% 수준 (외국인은 30%)
- 시험 결과 발표일이 주마다 다른 이유는 각 주의 행정 시스템과 채점 방식 차이 때문
- 레딧의 barexam 서브레딧은 수험생들의 최대 커뮤니티로, 정보 공유에 큰 역할을 함
- ILG Exam360은 많은 주에서 사용하는 온라인 시험 플랫폼


p.s. 남편의 DC Bar 합격 기념으로, 평소에는 비싸서 먹지 못했던.. 큰 맘 먹고 새크라멘토의 '파리바게트'(정말 우리나라에서 진출한 그 파리바게트다)에 가서 생크림딸기케이크를 샀다. 정말이지 너무나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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