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우가 쏟아지던 8월의 어느 밤의 이야기
"별똥별한테 소원을 빌면 이루어준다며?"
8월 중순, 남편의 Bar 시험 발표까지 약 2~3개월을 남겨둔 날이었다. 데이비스의 살인적인 여름 더위가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었고, 우리 가족에게는 잠시 숨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페이스북에서 본 소식.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8월 12일부터 13일 새벽에 절정을 이룬다는 거였다. 올해는 특히 달이 거의 없어서 관측 조건이 최고라고.
한국에서는 미세먼지에 가려 별 하나 보기도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별똥별을 볼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역시 소가 들판에서 풀을 뜯고 노는 낙농업의 도시, 밤에 도시에서 조금만 나가도 어두컴컴한 데이비스다웠달까.
저녁 9시,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우리는 구글맵에서 찾은 '최고의 별 관측 포인트'로 향했다. 근처의 한적한 들판. 도시의 불빛에서 벗어난 곳이라고 했지만, 사실 데이비스 자체가 이미 충분히 시골이었다.
"엄마, 우리 어디 가?"
카시트에 앉은 엘리가 물었다. 만으로 4살이 된 엘리는 이제 제법 문장을 만들어 말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한국어가 더 편했다.
"별 보러 가는 거야.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걸 볼 수 있대."
"별이 떨어져? 그럼 반짝반짝하는거야?"
"음... 그냥 쭉 하고 떨어지는거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직접 보면 알겠지 뭐.
"여하튼 그걸 보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
"소원? 그럼 난 장난감 사달라고 해야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캠핑 의자를 펼치고 앉은 가족부터 아예 픽업트럭 짐칸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있는 커플까지. 심지어 누군가는 전문적인 망원경까지 설치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토성의 고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캠핑 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목은 아프고 모기는 극성이었다. 준비해 온 모기 스프레이를 온몸에 뿌렸지만, 캘리포니아 모기들은 한국 제품 따위는 우습다는 듯 계속 달려들었다.
"언제 나와요, 별똥별?"
엘리가 계속 물었다. 이미 평소 잘 시간을 한참 넘긴 터라 눈이 스르르 감기는 게 보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곧 나올 거야."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저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Did you see that? Amazing!"
"There! Another one!"
방금 별똥별이 떨어졌다는 거였다. 아니, 왜 우리 쪽엔 안 나타나는 거야? 나는 애꿎은 하늘만 노려봤다.
그때였다. 내 시야에 하얀 선이 스윽 지나갔다. 짧고 빠른, 하지만 분명한 빛의 궤적.
"방금 봤어?"
나는 흥분해서 남편을 쳐다봤다.
"어? 뭐가 지나갔어?"
하필이면 우리는 서로 등지고 360도를 커버하려고 반대 방향을 보고 있었다. 남편은 놓쳤고, 나만 본 거였다.
"별똥별이야! 진짜 떨어졌어!"
그 후 10분쯤 더 기다렸을까. 마침내 별똥별들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짧은 것, 긴 것, 밝은 것, 희미한 것. 각양각색의 유성들이 칠흑 같은 하늘을 가로질렀다.
"봤어? 저기!"
"어, 나도 봤어!"
남편과 나는 동시에 같은 별똥별을 목격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소원을 빌었다.
'제발... 남편이 Bar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우리가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게 해주세요.'
737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그 안에서 우리가 이루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았지만, 가장 절실한 건 역시 그거였다. 남편의 합격. 그것만 된다면 이 모든 고생이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을 테니까.
"소원 빌었어?"
별똥별 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응."
"뭐 빌었어?"
"남편 합격하게 해달라고."
내 대답에 남편이 잠시 멈칫했다. 백미러로 본 그의 눈가가 촉촉해진 것 같았다.
"너는?"
"나는...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었어."
"에이, 그런 추상적인 소원을 빌면 어떡해! 구체적으로 빌어야 이루어진다고!"
"그래도 그게 제일 중요하잖아. 시험 붙는 것보다 우리가 건강한 게 더 중요해."
뒷자리에서는 엘리가 벌써 곯아떨어져 있었다. 결국 별똥별을 제대로 못 봤지만,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 거였다.
"근데 있잖아,"
남편이 갑자기 말했다.
"사실 나도 합격 빌었어. 그리고... 네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게 해달라고도 빌었어."
우리는, 나는 미국 2년간 너무 힘들었다. 이제는 좀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사실, 그동안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분명 행복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추억들이 켜켜히 쌓여있으니까.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행복과 힘듦은 서로 양립이 가능했다. 나는 죽을 것 처럼 힘들었지만,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으니까.
그래서 그랬을까. 남편이 빌었다는 소원이, 갑자기 가슴팍에 꽂혀왔다.
'이제, 그만 힘들어도 되는걸까?'
소원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이미 결과를 알고 있겠지만, 남편은 Bar 시험에 합격했다.
엘리가 꿈결에 빌었을 장난감 소원은? 글쎄, 그 후로도 우리는 "그건 너무 비싸"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 사격으로 장난감 부자가 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장난감 그만 사!"라고 말해야 할 정도다.
그리고 남편이 빌었던 '가족의 건강과 행복'? 안타깝게도, 한국에 돌아와서 더 힘든 생활을 보내고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으니. 그 와중에 남편의 육아휴직(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육아휴직을 했다)이 끝이 났고, 결국 육아까지 나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예전과 다른 점은 남편의 육아 및 가사 참여도가 꽤 올라갔다는 것. 역시 사람이 겪어보니 힘듦을 아는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온 후, 가끔 하늘을 올려다본다. 서울의 밤하늘엔 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미세먼지와 도시의 불빛에 가려진 하늘은 그저 뿌연 회색빛일 뿐이다.
그럴 때면 더욱 그리워진다. 데이비스의 그 맑은 밤하늘이, 쏟아지는 별들이, 그리고 간절한 소원을 품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8월의 그날, 우리 가족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