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기를 마치며

by 유지니안

안녕하세요. 유지니안입니다.


드디어 3부 '정착기'가 막을 내렸습니다. 1부 '생존기'가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2부 '적응기'가 미국 문화와 시스템에 녹아들기 위한 노력이었다면, 3부 '정착기'는 우리 가족이 진짜 데이비스에 뿌리를 내리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착기라는 이름이 조금 거짓말 같아요. 737일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가 과연 데이비스에 정착했을까요? 아니요. 우리는 끝까지 이방인이었습니다. 플로리다 여행은 예산 때문에 포기했고, 도어 딩 사고로 미국 보험사와 싸웠으며, 딸기 사려다 도랑에 빠져버렸죠. 타이어는 터지고, 코로나까지 우리 가족을 덮쳤습니다.

정작 이 시간 동안 우리가 정착한 건 '데이비스'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서로에게 정착'한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의 Bar 시험이라는 500일의 대장정. 처음엔 그저 '남편 뒷바라지'라고 생각했어요. 700개가 넘는 도시락을 싸면서도, 원맨쇼로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으면서도, '이것도 내 역할이겠지' 싶었어요.


불연듯 어떤 분이 해 주신 '남편 합격의 80%는 제 덕분'이라는 말을 남편에게 던졌을 때, 남편은 부정했죠. 그리고 남편은 "51:49"라고 못박았습니다. 그 한마디에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아, 내 희생은 겨우 49%의 가치였구나.'

그때 깨달았어요. 우리는 미국에 와서야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남편에게 저의 뒷바라지가 49%에 불과하다는 것처럼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노력과 그 가치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인해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이후 남편은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긴 했어요. 그건, 단순히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가 아니었어요. 드디어 '육아'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거죠. DPNS duty day에 가서 청소하고, 엘리 통학을 도맡고, 플레이데이트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그제야 남편은 알았을 겁니다. 내가 지난 1년 반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혼자 감당했는지를.

엘리도 달라졌어요. "Daddy busy"가 입버릇이던 아이가 "I love you, Daddy!"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와 딸 사이에 쌓인 737일의 추억은, 앞으로 엘리가 커가면서 잊을 수도 있겠지만, 무의식 어딘가에는 분명 남아있을 거예요. 그 따뜻한 온기가.

DPNS에서 한국을 알리던 날, 엘리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들었던 "She's ready"라는 말, 5월의 graduation에서 받았던 박수갈채... 이 모든 순간들이 우리를 '정착'시킨 건 데이비스가 아니라 서로였습니다.


이건 데이비스를 떠나 한국에 돌아와서의 일이지만, 저희는 각자의 역할을 더 확실하게 바꿔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저는 그 사이에 회사에 복직하면서 박사과정도 밟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어요. 남편도 육아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고, 저도 회사일과 학업의 스트레스에 대해 느꼈구요. 사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도 상당하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소개하는 걸로 할게요.


이번 정착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블루베리 머핀 에피소드예요. 미국인들의 모험 정신, 커뮤니티에 대한 기여, 그리고 타인을 위한 작은 배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문화가, 어느새 우리 가족의 일부가 되어 있었죠. 물론 여전히 극I인 저에게 미국식 친밀감은 버겁지만요.


4부는 "이방인-데이비스 737 작별기"입니다. 737일의 시간이 끝나가는 마지막 순간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담으려 합니다. 떠나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요. 짐 정리부터 시작해서 아파트 deposit 돌려받기, 엘리가 친구들과 이별하는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미완의 꿈'들과 작별하는 이야기까지.


미국에서 학업을 하겠다는 제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그리고 남편의 Bar 자격증 역시 당장은 쓸 곳이 없지만, 언젠가는 빛을 발할 날이 오겠죠. 엘리의 영어는 다 까먹었지만, 그 시간의 경험은 어딘가에 남아있을 거예요.


결국 우리는 데이비스에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단단히 정착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737일의 가치는 충분했다고, 지금의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투덜거리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저 역시 이런 소중한 기회가 행운이라고 느꼈습니다만, 인간은 간사한 존재라 그런지 그 이면의 어려움과 섭섭함이 있었습니다.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기록들도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지니안 올림


P.S. 여전히 환율 계산하는 버릇은 못 고쳤어요. 한국에서 마트에서 뭘 살 때마다 "이거 달러으로 얼마지?" 하는 제 모습에 남편이 웃습니다. "여보, 여기 한국이야. 굳이 달러로 바꿀 필요 있어?" 맞아요. 근데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거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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