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30달러 아끼려고 바리깡을 든 아내
미국 생활에서 사람 손을 거쳐가는 서비스는 대부분 비싸다. 아마 인건비 자체가 높기 때문일 테다. 특히 미용실 비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팁까지 고려하면 남자 머리 한번 자르는 데 40~50달러는 우스웠다. 더군다나 우리가 사는 데이비스는 조용한 대학 도시라 그런지, 실력 좋은 미용실을 찾기도 어려웠다. 몇 없는 미용실은 그저 그런 품질에 비해 가격만 비쌌다.
15년 전 미국에서 겪었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나는 출국 전 짐을 꾸리면서 홀린 듯이 전문가용 바리깡과 미용 가위 세트를 함께 챙겼다. 미용실에서나 볼 법한, 머리카락이 옷에 들어가지 않게 막아주는 커다란 비닐 커버와 스펀지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진정한 주부가 되기 위한 나의 노력은 코스트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한국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미용실, 네일샵, 마사지 등 사람의 손길이 직접 닿는 서비스 비용이 비싼 이유는 복합적이다. 높은 인건비, 자격증 및 라이선스 취득 비용, 임대료와 공과금, 그리고 15~25%에 달하는 팁 문화까지. 이런 이유로 많은 유학생이나 이민자 가정이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홈살롱'을 여는 경우가 많다.
내 '홈살롱'의 첫 고객은 당연히 엘리였다. 머리카락이 길어지니 매일 아침 묶어주는 것도 일이었고, 무엇보다 겨울이면 동그란 바가지 머리가 얼마나 귀여울까 싶었다. 유튜브를 스승 삼아 열심히 머리 자르는 법을 공부한 뒤 도전했는데, 다행히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백인 아이들이 대부분인 동네에서 까만 바가지 머리를 한 엘리는 단연 눈에 띄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이 "일본 인형 같다"며 귀여워해 주었고, 덕분에 내 어깨도 으쓱 올라갔다.
자신감이 붙자 다음 타깃은 자연스레 남편이 되었다. 하지만 남자 머리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특히 바리깡의 '드르륵'하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겁이 났다. 유튜브 속 미용사들은 자신만만하게 시범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건 그들만의 세상 이야기였다.
"여보, 괜찮다니까. 군대에서는 우리끼리 다 잘랐어. 하나도 안 어려워."
남편은 옆에서 계속 나를 꼬드겼다. 대체 군대에서는 전투 기술 말고 또 무엇을 가르치는 걸까. 게다가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가난한 유학생 부부에게 30달러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남자 머리는 또 왜 이렇게 빠르게 자라는지, 한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야 하는 남편에게 30달러는 적잖은 부담이었을 터였다. 한국에서도 블루클럽 1만원짜리 커트만 하던 남자, 그것이 내 남편이었다.
나는 결국 비장하게 바리깡을 들었다. 손에 잡힌 차가운 금속의 무게감이 묘하게 무거웠다.
작은 욕조 속에 스툴 의자를 집어넣고 남편을 앉혔다. 상당히 비좁았지만 머리카락이 사방팔방 날리는 걸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비닐 커버를 목둘레까지 꼼꼼히 두르고 나니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가 나왔다.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마치 진짜 미용실 같았다.
엘리 머리를 다듬을 때는 바리깡 없이 가위로도 가능했다. 그냥 머리 길이만 적당히 줄이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소위 말하는 '상고머리'를 해줘야 해서 처음부터 바리깡을 들어야 했다.
내 인생 계획에 헤어 디자이너는 단 1초도 없었는데, 어쩌다 내가 남의 머리까지 자르게 됐을까. 혹시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손이 덜덜 떨려왔다. 좀처럼 시작하지 못하자 남편이 나를 안심시켰다.
"자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어? 빵꾸 좀 나면 어때."
그래,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남편의 두상이 동그란 편이어서 다행이었다. 설마 너무 망치지는 않겠지.
손에 힘을 빼고 빗을 대고 조심스럽게 바리깡을 움직였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는 무섭지만 머리카락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게 보였다. 자꾸 바리에 머리카락이 감겨오는 느낌이라 왼손에 들고 있던 빗을 더 강하게 잡았다.
'어라?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오, 이거 생각보다 쉬운걸?'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드르르르륵"
갑자기 손이 미끄러졌다. 바리깡이 빗을 벗어나 남편의 두피 위를 거침없이, 정말 거침없이 달려갔다. 순식간에 머리카락 한 줄기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아, 망했다. 완전히 망했다.'
손이 떨렸다. 남편의 머리에는 마치 고속도로처럼 선명한 대머리 길이 생겨 있었다. 양옆 머리카락 사이로 하얗게 드러난 두피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그 '땜빵'이구나.
나는 남편을 동네 바보로 만들어버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쩌지? 어떻게 수습하지? 목이 말랐다. 남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입을 벙긋거렸다.
"어..."
남편이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나는 황급히 그를 막았다. 아직 보여줄 수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 당황한 표정만 봐도 상황을 눈치챈 듯했다. 손거울로 자신의 머리를 확인한 그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괜찮아. 어차피 사람들 내 머리에 관심도 없어. 정 안되면 그냥 삭발하면 되지, 뭐."
이럴 때가 아닌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르면 자를수록 더 이상해졌다. 땜빵이 덜 보였으면 해서 같은 층위의 머리카락을 더 자르고, 너무 그 부분만 흰색이라 주변 층위도 더 자르고... 악순환이었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자, 남편이 거울 두 개로 자기 머리를 이리저리 비춰보며 차분하게 '지휘'를 시작했다.
"땜빵 난 부분은 어쩔 수 없어. 괜히 덮으려다 머리 전체 균형이 망가져. 차라리 그냥 새로운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게 마음 편해. 군대에서 이런 일 흔했어. 머리가 너무 억세서 바리깡 날이 말려들어간다니까."
손이 미끄러져서 생긴 사고를 머리카락 탓으로 돌리는 남편이 고마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태연한 척 해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군대 경험 2년으로 대체 어디까지 커버칠 수 있는 걸까?
나는 그의 지시에 따라 땜빵은 그냥 땜빵으로 놔두고, 나머지 머리를 조심스럽게 다듬기 시작했다. 마치 수술실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대화하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왼쪽으로. 아니다, 너무 많이. 살짝만."
"이 정도?"
"음, 그래도 보이네. 뒤쪽 머리를 좀 더 앞으로 가져와봐."
한바탕 격전 같은 소동이 끝나고, 욕조에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들을 함께 치우며 깊은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30달러를 아끼려다가 남편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맞나?'
다음 날, 남편과 같은 수업을 듣는 한국인 동료가 그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형님, 머리 누가 잘랐어요? 완전 웃겨요."
그러면서 요 옆에 마트 상가에 저렴하게 잘해주는 베트남 사람이 있다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 후로도 계속 나에게 머리를 맡겼다. 나는 차마 '그냥 30달러 내고 미용실 가'라는 말을 삼켰다.
덕분에 나의 헤어컷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남편의 머리에는 더 이상 고속도로가 나지 않았고, 제법 그럴듯한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은 뭐든지 직접 해야 하는 DIY의 나라. 세탁기 수리비로 3,000달러를 날렸지만, 남편의 머리를 자르며 월 30달러를 아꼈다. 이게 손해인지 이득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워간다는 사실만이 분명할 뿐.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미국에서의 생존 기술을 익혀가고 있었다.
p.s. 그렇게 남편은 나의 전속 모델 겸 실험체가 되어주었지만, 나는 도저히 남편에게 내 머리를 맡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은 어느 일본인이 운영한다는 헤어샵. 가격은 무려 58달러였고, 그것도 머리를 감겨주지 않는 조건이었다. 부담스러운 가격 탓에 1년에 딱 두 번, 큰맘 먹고 갈 수 있었다. 덕분에 내 머리는 미용실에 다녀온 후 두 달간은 사람 모습을 유지하다가, 나머지 네 달은 질끈 묶은 채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역시 DIY의 나라에서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건, 너무나 비싼 사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