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넘어섬 12화

장례희망

삶의 주체가 되는 것과 죽음 앞에 의연한 것

by wordsfromulsan

Don’t worry ’bout me, don’t worry ’bout them
나나 그들이나 걱정하지 마
Don’t worry ’bout you, and what you gonna do
네가 나중에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마
And it’ll be a long time before you ever see me again
나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일 거야
Don’t worry ’bout me, don’t worry ’bout me
날 걱정하지 마, 날 걱정하지 마
Don’t worry ’bout you and maybe I do
네 스스로를 걱정하지 마,

Kanye West - never see me again (unreleased, leaked)

And nothing hurts anymore, I feel kinda free
이제 그 어떤 것에도 상처받지 않아, 이제 진짜 자유를 느껴
We're still the kids we used to be, yeah, yeah
우린 아직도 그때의 어린애들 그대로야, yeah, yeah
I put my hand on a stove, to see if I still bleed, yeah
내가 아직도 피를 흘리나 난로에 손을 올려봤어

Kanye West - Ghost Town

아는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한 공간에 다 있는 게 신기해
모르는 사람이 계속 우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나 미안해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이찬혁 - 장례희망



죽음이 당신에게 어떤 현상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두려운 존재일 수도 있고, 어쩌면 기대되는 순간일 수도, 어쩌면 현실이 중요하게 다가와 관심 밖의 아주 먼 존재일 수도 있겠다. 나는 두려워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도 그쪽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절대 미지의 현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죽음의 후기를 들려줄 수 없다. 과학적으로 죽음을 연구하는 이들도 가장 정확한 표본을 수집하려면 죽어본 사람을 데려와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물론 임사의 순간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이 일종의 음모론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이 또한 일방적인 언어적 소회만 있을 뿐 신뢰 가능한 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우리는 언젠간 반드시 다가올 죽음도 종류를 구분하고 있다. 편안한 수면 중 고통 없이 사망하게 된다면 "호상"이라 칭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끔찍한 이유나 끝없는 고통을 가져다주는 질병으로 인해 사망한다면 "악상"으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엔 장례식장에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오는지도 평가하고 판단한다. 어차피 죽는 건데. 당연히 언젠간 죽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죽는가와 그다음 나의 평가까지 고민하게 된다. 누군가는 현실에 집중하고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다 보면 걱정하는 죽음에 대한 결과는 자연스레 긍정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한다. 무슨 말인진 알겠다. 하지만 어떡하는가. 난 그 걱정을 떨쳐낼 수 없는데.

이 글의 주제는 내가 평소 하던 고민에서 시작됐다. 남들도 한 번쯤 하는 고민이겠지만 나는 그들에 비해 조금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언젠가 생을 달리했을 때, 내 장례식장엔 얼마만큼의 조문객들이 방문해 줄지, 그들은 또 나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들을 늘어놓을지, 슬퍼하지 않으면 어떡할지에 대한 고민이 꽤 많다. 몇 번 정도 생을 그만두고 싶었기에 아마 그런 고민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 내가 힘들고 의지가 없다고 해서 결정한 선택이 타인에겐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까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증상이 심해질수록 주변 인물들과의 연락을 병적으로 줄여갔기에 아무도 안 오는 쓸쓸한 장례식장이 되면 어떡하지. 혹여 일부 조문객들이 내게 침이나 뱉고 가면 어떡하나. 와 같은 고민들이었다. 혼자 죽으려고 했던 놈이 생각은 참 많았다. 어쩌면 내가 내 삶에 있어서 잘 살았다는 자신감이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뭔가 이뤄놓은 것도 없고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도 없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봤던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살아있을 적 그는 분명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가장의 역할을 수행해 내는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3일간의 장례식동안 조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장례식장 관계자들도 그렇고 직장 동료였던 분들도 그렇고 이렇게 많이 오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했던 걸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슬퍼하고 그리워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정말 그처럼 살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측면에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가증스럽기도 하다. 누군가를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삶은 소위 "급"이 높은 것이길 바라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 하지만 내 삶에 있어 그 어떤 것보다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 치부다. 결국 나도 타인 앞에서는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는 그들보다 위대하고 위에 있길 바라는 찌질한 사람인 것이다.


앞서 칸예 웨스트와 이찬혁의 곡에 담긴 가사들을 일부 인용했다. 그들이 실제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곡 안에서 만큼은 죽음 앞에 의연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never see me again"은 칸예 웨스트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 전에 썼던 곡으로 10분 내내 랩으로 자신의 죽음을 얘기한다. 동시에 자신을 비난했던 이들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하며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 나를 다시 보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라고 하기도 한다. 어차피 다가올 죽음과 사라지고 난 뒤 자신의 손을 떠난 세상에 있어서 그들은 다른 이들의 반응이 아닌 여전히 자신이 주체가 되어있다. 그런 시점에서 그들은 삶의 기준과 잣대가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꽤나 자주 나도 그런 생각은 한다. 삶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됐을 때 죽음 또한 의연해질 것이라고. 하지만 이걸 실천하는 게 쉽진 않은데. 부디 언젠가는 그렇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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