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폭력성이 정말 나를 폭력적인 사람으로 만드는가?
얼마 전 엄마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이번 달에 박찬욱 영화가 개봉하는데 베니스에서 8분 30초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대."
"그래? 그것도 보러 가야겠네. 무슨 내용이래?"
"이병헌이 회사에서 잘려. 그래서 다음 회사 면접을 보는데 자꾸 떨어지나 봐. 그래서 결국 다섯 명인가? 없으면 붙을 거 같으니까 걔네를 다 죽일 계획을 세우는 그런 내용인가 봐."
"에이 뭐 그런 영화를 만드냐. 잔인하게."
"그래도 20년 동안 계획하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한 영화라던데."
"그래도 너무 잔인하다."
엄마는 이처럼 폭력적이고 잔인한 매체를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아 그렇게 변한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수위가 올라가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미디어 매체에 대한 걱정도 많다. 이렇게 거칠고 예민한 주제를 미디어에서 다뤄도 되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가끔 내가 보고 있는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나올 때 엄마가 그걸 본다면 저런 걸 뭐 하러 보냐고 한소리 하기도 한다. 그런 장면이 내면의 폭력성을 자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사실 거친 영화를 좋아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더욱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괴물도 좋지만 올드보이가 훨씬 좋고, 마더도 좋지만 친절한 금자씨가 훨씬 좋으며 기생충도 좋지만 헤어질 결심이 훨씬 좋았다. 그뿐인가. 가끔 정말 멀리 간 영화를 보고 싶을 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지간한 예민한 주제나 폭력적인 수위는 내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 궁금하긴 하다. 실제로 내 안에는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는 걸까? 근데 사실 모든 사람들의 내면엔 폭력성이 잠재돼 있지 않나? 그럼 드러내지만 않으면 괜찮은 건가? 아니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허용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좀 폭력적이면 안되나? 그럼 나는 폭력을 두둔하는 건가?
가끔 내 안에 폭력성을 느낄 때가 있다. 직장 상사의 이해되지 않는 방향성이나 잔소리를 들을 때, 운전을 이상하게 하는 진상들을 볼 때,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은 데 나를 건드릴 때 등의 상황에서 내면의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낀다. 그러곤 온갖 욕설을 삼키기도 한다. 그 삼켜진 욕설들은 소화되는 데 꽤 오래 걸리는 편이다. 또 과음 후 다음 날 아침처럼 그 과정도 굉장히 불쾌하다. 그때마다 고민한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말을 속으로도 하지 않나? 나는 이렇게 더러운 말들을 어떻게 떠올리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말 폭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정말 그렇다. 나는 폭력적이지 않다.
타인과 대화할 때 단어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남들보다 훨씬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무례하고 싶지도 않고 오독된 의미를 전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말을 예쁘게 한다는 평을 종종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내가 폭력적인 사람이라면 위선이 된다. 내 마음속에 담긴 악하고 더러운 말들을 어떻게든 들키지 않기 위해 포장지를 세 겹, 네 겹을 거듭 감싸는 행위가 될 것이다. 난 이 위험도조차 의도적으로 인지하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결국 진심이 솔직하게 담겨야 더욱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도 어지간하면 안 하려고 한다. 꾸며내는 말들은 티가 나게 되어있고 결국 자연스레 벗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항상 진심으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폭력성은 담겨있지 않다.
가끔 욱하는 일들이 분명 있다. 일주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직장에서 그런 상황이 많이 벌어지게 된다. 또 출퇴근 길이 멀어 운전도 오래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칼치기와 같은 위험한 상황도 겪게 된다. 그리고 이유 없이 기분 나쁜 날도 있는데 그럴 땐 사소한 말에도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그럴 땐 폭력적인 말들을 떠올리곤 한다. 고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나를 폭력적인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윌 스미스의 시상식 사건이 떠오른다. 크리스 락은 그의 아내를 두고 농담을 던졌고 그는 분명 웃었지만 아내의 눈치를 살폈고 결국 무대로 올라가 폭력을 휘둘렀다. 그의 진심은 본인만 알겠지만 상황만 두고 봤을 때 그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폭력이었다. 크리스 락이라고 잘했다고 할 순 없겠지만 윌 스미스는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라고 그렇게 감정이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순 없다. 나는 스스로 폭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분명 욱하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건강한 생각을 유지하기 위한 해결책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