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고픈 현대인의 고해성사
모태솔로, 알파메일, 알파걸, 너드남녀 등 우리는 이성과 연애에 참 관심이 많다. 솔로지옥, 나는솔로, 환승연애와 같은 프로그램들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르고 콘크리트 같은 마니아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심지어 일상 속에서 잘 모르는 사이에서도 스몰 토크의 목적으로 연애 상대의 존재 유무를 묻기도 한다. 그러다 더욱 친해진 사이라던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농담인 마냥 "너는 왜 연애를 못할까?"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그런 얘기를 듣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있다며 참 열심히 연애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건 그 과정에 사랑이 존재하는가? 그들은 정말 사랑해서 만나는 걸까? 아니면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될 것 같은 마음에 하는 걸까?
사실 나는 연애를 몇 번 하긴 했지만 이게 정말 사랑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정말 사랑스럽고 간절해서 만났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을 할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이 정말 좋았다기 보단 그저 상황에 따라 이들과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장단을 맞춰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연애를 한다는 생각에 설렜고 그렇게 타인에게 자랑하는 순간에 뿌듯했으며 스킨십과 잠자리를 함께 한다는 생각에 좋았던 게 아니었을까. 이런 마음으로 연애를 했다고 하면 그들에게 실례되는 마음가짐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 내가 사랑을 느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연애 감정이 여전히 판타지 같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그게 쉽지 않았다. 다음 연애 상대한테는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의 내 모습을 일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첫사랑과 몇 번의 연애를 훑어보기로 했다. 첫사랑은 나보다 몇 살 많았던 누나였다. 10대의 끝자락에서 알게 된 그 누나는 친절하고 애교도 많았으며 적당히 털털했기에 주변에서 꽤 많은 호감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그 경쟁을 뚫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그 누나가 좋았지만 그녀에게 나는 그저 어린 동생이었을 뿐이고, 나이가 많은 형들은 경험도 많고 능숙한 매력을 언제든 뽐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많이 보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저 누나와 연을 맺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친한 누나 동생의 관계로 지냈다. 그러다 보니 각자 연애를 하면서 그녀는 나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에겐 항상 아슬아슬한 줄을 타는 듯한 기분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다 이 감정을 오히려 삭이게 된 계기가 벌어졌다. 여느 날처럼 다른 형과 나, 그리고 그 누나와 함께 술을 한 잔 하게 되었고 모두 텐션이 많이 올라버린 나머지 그날은 꽤 많이 마시게 되었다. 그러다 그 형은 먼저 집에 가게 되었고 나와 그 누나 둘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깊은 얘기를 하던 우리 둘은 결국 선을 넘었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먼저 넘었다. 꽤나 오랫동안 이성적인 마음을 품고 있던 내가 먼저 그 누나의 경계심이 허물어졌다는 걸 눈치챘고 마치 오랫동안 먹잇감을 노리고 있던 맹수처럼 그 틈을 재빠르게 파고들었다. 그 이후로도 겹치는 인맥이 많았던 우리는 가끔 함께 술을 마시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고, 이야기 듣는 걸 잘하는 나는 꾸준히 그 누나의 고민을 많이 들어줬고, 그러다 보면 나는 이야기를 들어준 대가를 받겠다는 것 마냥 열심히 빈틈을 노렸다.
그래서 그 누나와 잘됐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사실 그 당시 그 누나의 고민은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의 반대가 크다는 게 주요했고, 누나는 어떻게든 그 결혼을 성사시키고 싶다는 게 요지였기 때문에 내가 그 관계에 파고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시기에 누나가 나를 사랑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나도 누나를 사랑해서 그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정말 솔직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파고들었고 그저 오랜 시간 좋아했지만 연인이 될 수 없어서 소비했던 감정을 보상받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남들은 아름답다고 하는 첫사랑. 이루어질 수 없어서 더 애틋하다는 첫사랑. 내겐 첫사랑에 사랑은 남지 않게 되었고 남들한텐 각색해서 얘기해야 하는 치부가 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연애를 했던 동갑의 여자다. 그 친구와는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나를 참 힘들게 했다. 처음엔 그냥 그랬지만 전역한 지도 얼마 안 됐던 터라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에 살살 간질거리게 꼬드겼고 그러다 보니 마치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구도로 사귀게 되었다. 그 이후엔 마치 다른 대학생 커플들의 모습처럼 만났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데 구경도 가고 서로 학교는 달랐지만 캠퍼스도 산책하며 꽤나 청춘처럼 데이트했다.
문제는 밤이었다. 그 친구의 집안은 꽤 독실한 개신교 집안이었고 믿거나 말거나 성경험이 없는 친구였다. 하지만 누구나 압박할수록 반감이 커진다고 성이라는 분야를 향한 호기심이 굉장히 강했다. 그러다 그 물꼬를 터뜨린 게 나였고 그러다 보니 그 어떤 사람보다 열정적으로 임했다. 틈만 나면 우리는 서로의 옷을 벗겼고 서로의 모든 곳을 탐닉했다. 물론 그 순간은 좋았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이 금세 질렸다. 그게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애초에 정말 내가 진심으로 좋아해서 만난 관계가 아니다 보니 나는 그런 열정이 생기진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성격적으로도 맞지 않는 부분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이별을 고했다. 더 이상 내가 이 친구를 향해 열정과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보고 싶지 않았던 부분이었을지 모르겠다. 그 친구는 애정결핍이 굉장히 심한 편이었고 이게 이별을 고하자 집착으로 번졌다. 나는 분명히 헤어지자는 의사를 전달했고 이유도 충분히 설명했지만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전화를 해대는 것은 물론이고 내 본가에도 찾아왔다. 심지어 내가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와 마당에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던 순간에 모두가 보는 상황에서 나타나 이야기를 하자며 나를 끌고 가기도 했다. 그 당시엔 너무 힘들었다. 내가 어딜 가든 그 친구가 있으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했고 혹여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내가 차단한 그 친구가 다른 번호로 건 것일까 싶어 최대한 피했다. 지금도 그 친구가 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건 분명히 잘못됐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그 친구는 내게 사랑을 지불했는데 내가 그에 맞는 대가를 돌려주지 않아서 억울했던 걸까. 비싼 돈을 내고 좋은 상품을 샀다고 생각했는데 그 택배가 집에 도착하지 않는 그런 기분일까. 결국 나도 그 순간에 사랑은 없었으니까. 내게도 나쁜 결말의 지분이 있는 건 아닐까.
이 글 또한 어쩌면 고해성사의 일부일 것이다. 사랑이라고 착각했거나 사랑을 빙자해 이성을 만나며 육체적 관계만을 요구했던 그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직접 거쳐보니 알겠다. 진실된 사랑이 정말 필요하다. 다만 이걸 정말 믿지 못한다는 게 내 문제가 아닐까. 20대가 끝나고 30대의 시간이 점점 흘러갈수록 사랑이 추상적으로 다가오긴 한다. 이제는 육체적 관계가 아닌 결혼을 꿈꾸며 그 조건에 맞고 안맞고를 따지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도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다음엔 꼭 사랑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미안하다. 아마 이 글을 못보겠지만 보게 된다면...너네 이야기도 주제가 됐다...미안하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