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넘어섬 15화

잘 지내세요?

몸과 마음은 평온이 필요하다.

by wordsfromulsan

이번 글은 다소 짧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근 2~3주 간은 내게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힘든 주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또다시 전투는 시작됐고, 매번 그랬듯, 나는, 이번에도 패배하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을 해야 했다.

한동안 내가 우울증과 불안에서 멀어져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갓 입사에 적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 일이 많이 바쁜 곳이었기 때문에 업무에 몰입하면 잡생각은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병원에 갈 때면 "일이 바빠서 우울감이나 불안에는 무던해지긴 했어요."라고 말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복용 약의 용량도 조절되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잘 안 맞았나 보다. 물론 이게 의사의 잘못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내가 갈 때마다 난 회복되고 있는 방향으로 경과를 얘기했고 환자의 언사가 가장 중요한 정신과 의사로선 내 말을 당연히 믿었을 것이다. 그저 내가 바쁘단 이유로 나를 또 돌아보지 않은 것이다.

운전 중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고 심지어 급하게 가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속으로 모든 교통 법규를 지키고 가도 도착지에서는 또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일찍 출발했다. 그런데 그 순간 마음이 굉장히 급해졌다. 당장 액셀을 밟고 마치 약속 시간에 3시간은 늦은 것처럼 빨리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튀어나오는 순간 내 뇌는 모든 생각을 빨리 감기로 돌리기 시작했다. 평소엔 아무런 느낌이 없던 내 뇌의 존재가 갑자기 느껴지고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뇌의 전원 버튼이 갑자기 켜진 느낌이다. 그 녀석도 해야 할 일들을 한참 동안 미뤄놨다가 데드라인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급하게 모든 일들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듯했다. 과흥분이라고 한다더라.

중간에 차를 세울 순 없었다. 그럴 수 있는 도로가 아니었고 중간에 차를 세운다면 그땐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빨리 약속 장소에 도착해야 했다. 그렇다고 교통 법규를 어길 순 없으니 신호와 속도를 지키며 가야 했고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내 심장이 굉장히 빨리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뇌는 내게 속사포로 생각을 쏟아부었고 심장은 마치 내 차의 엔진처럼 빨리 뛰었으며 마음은 어찌할 줄 모르고 안절부절못했다. 글로 쓰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천만한 상황이었구나.

어쩌면 공감하기 힘들고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도 어려운 이 과흥분 상태는 일을 할 때도 찾아왔다. 급하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고 차분하게 마음먹으면 오히려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내 몸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 당장 키보드를 두들기며 뭐라도 입력해야 했고 마우스를 재빠르게 휘적이며 어떤 자료라도 빨리 찾아 이걸 완성시켜야 했다. 하지만 여긴 혼자 있는 공간이 아니기에 이렇게 약해진 내 심신을 들키기 싫었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졌다. 결국 예상 시간보다 훨씬 빨리 완성본을 제출했고 상사는 이렇게 빨리 가져왔냐며 칭찬했지만 나는 그 어떤 때보다 지쳤다.

이 상황을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지금 처방된 항우울제의 용량이 많은 것 같으니 줄여보자고 했다. 처음엔 왜 증량이 아니고 감량으로 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항우울제를 과하게 복용하게 되면 신경계를 향한 자극이 많아져 과흥분이 올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항우울제는 낮추고 필요시에만 먹어야 하는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선생님은 그 모든 과정에서 차분하고 이성적이었고 그 와중에 따뜻했다. 그리고 어쩐지 아직 약을 복용하지도 않았는데 안심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마 내가 처음 썼던 글에 이런 내용을 언급했던 적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이 몸이 괜찮으면 나를 돌아보지 않고 정신 건강은 특히 더욱 뒷전이 된다고. 한동안 잊고 있었나 보다. 내가 나를 돌봐주고 돌아봐야 하는데 바쁘다고 이걸 잊고 있었다. 물론 약의 용량 때문에 생긴 사건인 게 시발점이겠지만 어쩐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혹여 다른 전조 증상도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많이 든다. 삶에 있어 어떤 힘겨운 상황이 찾아와도 언제나 내가 가장 먼저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지금 내 몸과 마음은 시선을 밖이 아닌 내면으로 돌리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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