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 나는 누구인가?
카페 디알로고스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잔잔하고 일정한 속도.
마치 모든 의심을 덮어주는 듯한 리듬.
진우는 검은 잉크로 된 펜을 바꾸고 있었고,
라빈은 방금 막 창가 자리에 놓인
물방울들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문득 생각이 들었어,”
진우가 중얼거렸다.
“내가 쓰는 이 문장들이, 과연 나를 말해주는 걸까?”
첫 번째 손님은 데카르트였다.
단정한 셔츠와 연갈색 코트, 그가 앉는 방식은
마치 직선으로 의자와 대결하는 듯했다.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두 번째 손님은 자크 데리다.
불쑥 들어온 그의 코트는 젖어 있었고,
털어낼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는 의자에 앉기도 전에 말했다.
“그건 너무 낡았어. 생각이 곧 존재라니,
그건 존재를 언어의 조작 속에 가둔 것 아닐까?”
진우는 흠칫했다. 데카르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그럼 그대는, 존재가 언어에 앞선다고 보나?”
라고 물었다.
데리다는 짧게 웃었다.
“나는 존재라는 단어 자체가 미심쩍어.
‘나’란 말도 그래.
우리는 우리가 말한 ‘나’를 믿고 있지,
실제의 나를 보는 게 아냐.”
그때, 세 번째 손님이 들어왔다.
주디스 버틀러.
검정 터틀넥과 넓은 프레임의 안경,
그녀의 표정은
‘지금도 읽고 있는 중’ 같은 인상이었다.
“‘나’는 고정된 게 아니에요,”
그녀는 커피를 받자마자 말했다.
“‘나’는 반복된 행위예요.
나는 매일같이 나를 연기하죠.
그게 젠더이든, 신념이든, 인간관계든.”
데카르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그대는 실체 없는 허상을 살아간다고 믿나?”
버틀러는 웃었다.
“우린 모두 허상 안에 머무는 존재들이에요.
실체는 환상이고, 반복은 그 환상을 정당화하죠.”
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나는 내가 믿고 싶은 나에 머무는 거야.
그리고 그 믿음조차,
언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라빈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 ‘나’란 결국...
말해지는 방식에 불과한 걸까요?”
진우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어떻게 말해지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같다.
밖에선 비가 그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물방울 하나하나가,
‘나’라는 질문의 조각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