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구청, 은행 업무 처리하기
계약한 집으로 입주 후 평일이 되어 우리는 전입신고를 위해 아침 9시부터 구청으로 갔다. 그날은 남편 회사 인사팀 직원이 도움을 주기 위해 함께했다.
인사팀 직원분과 만난 후 곧바로 창구로 가서 번호표를 뽑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벨이 울렸다. 다시 창구로 가서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온, 영문화된 온갖 서류들을 제출했다.
그로부터 우리는 수 시간을 그냥 기다리고 기다리기만 했다.
사실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업무 처리를 하는지 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아날로그식 행정처리인지, 우리나라처럼 인터넷 전산으로 전자 결재 후 진행하는 방식이지만 그저 그 절차가 느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절차가 정말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우리는 몇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면서 별로 기억에도 남지 않을 이야기들만 잔뜩 늘어놓았다. 남편 회사 인사팀 직원분과 어색함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구청에서 전입 신고 절차를 완료하고, 마이 넘버 카드 발급 신청까지 하고 나니 벌써 12시였다. 고작 전입 신고와 신분 증명용 카드 발급 신청을 하는 것뿐인데 여러 창구를 왔다 갔다 해야 됐고, A창구에서 B창구로, B 창구에서 C 창구로 옮겨질 때마다 거의 40분에서 1시간씩 기다렸다.
간단히 점심을 먹은 이후에는 남편 월급 수령용 계좌를 개설하러 은행에 갔다. 은행에서도 계좌를 발급하는 데 두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그중 우리가 서류를 작성하고 창구 직원과 대면한 것은 채 5분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2시간 25분 정도는 그냥 앉아있었다.
이때, 아직 우리가 일본 현지 휴대폰 요금제에 가입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연락 가능한 일본 전화번호가 없었다. 우선은 통장 서류에 남편 회사 사무실 번호를 적어두었는데 전화번호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은행에 방문을 해서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전화로 변경하는 것도 안되고, 인터넷, 모바일로도 당연히 불가능했다.
고작 은행 정보에서 전화번호 하나를 바꾸기 위해 남편이 아까운 휴가까지 쓰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했다. 다행히 가족이 방문해서 바꿔도 된다고 하여 내가 방문하기로 했다.
6월 말 경, 여름이 오며 해가 한창 뜨거워지고 있던 날이었다. 너무 뜨거운 나머지 자외선 차단이 어느 정도 되는 우산으로도 햇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뜨거웠던 날, 은행에 등록된 남편 정보에서 전화번호를 바꾸기 위해 15분 정도를 걸어 은행에 도착했다.
통장을 개설하던 날, 우리를 담당했던 창구 직원이 적어준 지참해야 할 것들의 목록이다.
대리인인 내가 전화번호를 바꾸기 위해서는 남편과 내 재류카드, 그리고 통장을 개설하면서 발급받은 캐시카드를 지참하면 된다고 친히 적어서 알려줬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다 제대로 챙겨 왔다.
은행에 들어가면서 번호표를 뽑고 잠시 대기하니 내 차례는 금방 다가왔다.
창구로 가서 서류들을 내밀며 전화번호를 변경하겠다고 얘기했다.
창구 직원은 서류의 주소란에 우리 집 주소를 가타카나로 모조리 쓰게끔 시키더니, 한창 주소를 작성하고 있는 나에게 인감을 가져왔냐고 물었다.
다른 직원이 적어준 지참품 목록에 도장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가져오지 않았고, 도장은 없다고 얘기하자 통장 개설 시 서류에 찍은 도장과 똑같은 도장이 없으면 변경이 안된단다.
내가 이 더운 날 직사광선에 땀 뻘뻘 흘리며, 고작 전화번호 하나 바꾸자고 여기까지 왔는데 안내받지도 못한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전화번호 변경이 안된다니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났다.
나는 성격 상 이런 일이 있으면 보통, '그러면 가지고 다시 올게요.' 하고 마는 편이지만 이 때는 너무 화가 나서 따지고 들었다.
'지난번에 통장 개설을 해 준 직원은 재류카드 두 개와 캐시카드만 가져오면 된다고 했다.'라고 말했지만, 당연하게도 들려오는 대답은 '죄송하다, 그렇지만 도장이 없으면 안 된다.'라는 대답뿐이었다.
한국에서는 휴대폰만 있으면 어플로 간단하게 끝날 수 있는 일인데 일본에서는 사람이 직접 왔다 갔다 하며 도장까지 찍어야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너무나도 답답했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자국민도 아닌 외국인인 내가 화내고 답답해해 봐야 일본은 이런 아날로그식 일처리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날은 나도 개인적인 다른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갔다가 다시 은행으로 가는 일은 할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다른 날 도장을 가지고 다시 방문해서 전화번호를 변경했는데, 그렇게 전화번호를 변경하는 것도 변경 서류를 제출한 후 처리될 때까지 40분 정도를 기다렸다.
내가 살아본 외국이 두 곳밖에 없기는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외국에 살수록 한국만큼 살기 편한 나라가 없다는 생각만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