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보명상(徒步冥想) 13 - 오지에 숨고 싶으시다고요?

사진 : 3 가구 사는 비수구미

by 전영칠

코스 : 해산령쉼터 - 임도 - 비수구미 마을(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 평화의 댐

거리 : 15km



비수구니 마을(50000:1 지도)


화천 비수구미마을은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에 위치한 오지마을이다. 오래전 화천댐과 파로호가 생기면서 길이 막혀 육지 속 섬이 된 곳이다. 비수구미(秘水九美)라는 이름은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홉 가지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구미, 즉 아홉 가지 아름다움은 물소리, 구름, 화전밭을 일구었던 골짜기, 빙어조림, 산나물 백반, 출렁다리, 모터보트, 비목탑, 세계평화의 종이다.
환경오염이 없는 비수구미 계곡에서는 원시림과 바위가 밀집한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볼 수 있다. 야생 난초와 야생화가 피어나고, 산천어, 꺽지, 빙어와 송어 등 맑은 계곡에서만 사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비수구미마을로 가는 방법은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과 생태길을 트레킹으로 가는 2가지가 있다. 배를 타면 10분 이내에 도착한다.

반면에 비수구미 생태길은 화천에서 평화의 댐 가기 전 해산터널을 지나 깊고 호젓한 숲길을 2시간 여 걸으면 마을에 닿는다. 비수구미마을에서는 자연과 함께 편안하게 쉴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숙박할 수 있으며, 직접 뜯은 산나물과 된장, 청국장 등으로 만든 정갈한 밥상을 맛볼 수 있다. 또한 파로호 호반과 접하고 있어 낚시를 즐길 수 있으며, 모터보트를 타고 평화의 댐과 비목공원, 세계평화의 종 공원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비수구미마을은 자연휴식년제 기간에 출입이 제한되므로, 트레킹이나 계곡을 둘러보려면 허가가 필요하다.


비수구미 마을의 역사는 화전민들의 정착으로 시작되었다. 6.25 전쟁 이후,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사람들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화전을 일구며 터전을 잡은 것이 마을의 시초이다. 이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삶을 이어왔다.

이곳에는 해산터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해산령 고개는 옛날 화천, 양구, 인제 사람들이 넘나들던 중요한 교통로였다. 이 고개를 넘던 임산부가 산고를 느껴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에서 '해산(解産)'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출발지인 해산령터널


해산령터널 - 입구와 출구가 뻥 뚫려 있고 그 사이를 불들이 이어주고 있다. 터널의 모습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쓰임새를 보았다. 차 다니지 않는 폐터널이 있다면 그곳에 명상센터를 만들면 어떨까. 우리는 서로와 서로에게 터널이 된다 -

우리가 모두를 이어주는 터널 같은 존재라면 삶이 넓어질 것 같다.


겨울 자연이 만들어 놓은 개망초꽃 군락의 자태가 보인다. 하얀 꽃들의 모습이 그대로 화석처럼 서 있다. 한송이를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한송이, 두 송이 모여 이루어진 개망초꽃들의 군락은 숨 막히도록 화려하다.

비수구미 마을 근처 계곡의 물은 공장도, 인적도 없어 글자 그대로 '자연 그대로'이다.


걷다 보니 강원도 토종 꿀벌집들이 보인다. 나무속을 파 만들고 세워두었는데, 뚜껑에 모자 같은 것을 얹어 마치 사람 얼굴 같다.

조금 더 가니 자연휴식년제로 인해 출입통제구역을 설정해 둔 곳이 보였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휴식년을 설정한 것은 그만큼 자연과 사람 사이의 이해가 열렸음을 뜻한다.



토종꿀벌통


현재 주말이면 수백만의 길꾼들이 산과 들을 걷고 있다. 기계음에 시달리는 도시는 여전히 타고 있는 차종에 따라 사람의 귀천을 따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차를 버리고 걷기를 시작했고, 1위 하던 등산인구를 앞질렀다. 2023년 국민생활체육조사 (2024년 1월 발표)에 의하면 규칙적으로 생활체육에 참여하는 사람들(주 1회) 중 가장 많이 하는 운동 종목 1위는 '걷기'로, 참여율은 37%에 달했다.

2위인 등산(17.3%)과 3위인 보디빌딩(16.3%)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이다. 한 달에 1회 이상의 등산인구는 약 3,200만 명이다. 걷기 인구는 그보다 많으니 '걷기'는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즐겨하는 생활체육 활동이 되었다.

우리 역사에는 한민족의 뿌리인 홍익인간의 이념이 있다. '걷기'에 '명상'을 더해 영성계발과 자아완성의 목적으로 걷기 명상을 한다면 몸 마음 건강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으리라 본다.


비수구미 마을은 과거에는 30 가구가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살며 분교가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1970년대 화전민 정리 사업과 불편한 교통으로 인해 대부분의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2025년 현재 비수구미 마을에는 3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의 주민이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과거에는 배를 타거나 험한 산길을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였으나, 지금은 비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비수구미마을은 현대 문명과 거리를 둔 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혹시 현실에 지치고, 도시의 문명에 찌들어, 한동안이라도 자연 속에 숨고 싶으신 분이 있으면, 이곳으로 오라. 이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 오염된 도시의 먼지를 깨끗이 털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을 이장집이 보인다. 4~ 5명이 모여 있다. 무슨 일일까. 3 가구가 전부이니 마을 주민 다수가 동원된 듯하다. 이장의 집 지붕에 스카이라이프를 포함해 네 개의 수신기가 보인다. 폐교도 보인다. 둥그런 자연석을 쌓아 만든 마을 아이들이 오르던 폐교입구의 돌계단에 이끼가 무성하다.

비수구니 마을은 주위에 널린 죽은 나무를 모아 겨울을 난다. 기름값만으로는 겨울을 감당하기가 벅찬 탓이다. 군불을 때니 오히려 겨울을 보내는 묘미가 있을 것 같다.


바다 같은 파로호 한쪽에는 집 한 채가 덩그러니 혼자 산다


사람에게서 떨어지니까 자연이 맑다. 사람에게서 떨어지니까 사람이 보인다. 사람에게서 떨어지니까 사람의 가치를 알게 된다.

무엇인가를 채울 사람은 이곳을 방문하라,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파로호 한쪽 가에 제멋대로 산 소나무가 보인다.

제멋대로 산다는 건 참 좋은 것이다. 화두는 사실 자연에 다 깔려 있다. 이곳에 오면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임도길 바닥에 솔잎들이 깔려 있다. 이곳에도 산에 멋대로 살아가는 소나무가 많다.

소나무는 한민족의 정서를 담고 있는 나무다. 전국적으로 이상기온으로 소나무가 많이 고사되었다.

이대로 50년 후면 한반도 소나무는 온난화로 전멸할 것이라고 한다.


선착장의 배를 타고 평화의 댐으로 향한다. 많은 말을 남긴 평화의 댐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제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타향 길꾼에게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또 다른 무엇이다.

keyword
이전 12화도보명상(徒步冥想) 12-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가 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