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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명상(徒步冥想) 14 - 어머니 뱃속같이 편안한 곳

사진 : 망우리역사문화공원

by 전영칠


코스 : 망우역 - 유명인사 안내가벽 - 인문학길 - 사색의 숲 - 안창호묘터 - 구리/망우전망대 -

동학정 - 치유의 숲 - 중랑전망대 - 용마산 - 아차산 - 아차산역

거리 : 13KM




│유관순 누이여, 부디 17세로 다시 환생하시길 │


망우리 역사문화공원(忘憂里 歷史文化公園)은 단순한 공동묘지를 넘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영광을 함께 간직한 '살아있는 역사박물관'과도 같은 곳이다.


망우리의 이름에 얽힌 기원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묏자리(건원릉)를 정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지금의 망우리 고개를 넘으며 "이제야 오랜 근심을 잊었도다(吾今然後야 忘憂矣)"라고 말한 데서 '망우(忘憂)'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근심을 잊는' 언덕은 훗날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다.


흰 눈 내린 날, 오늘은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의 역사를 함께 한 망우리역사문화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명상하기로 한다.

망우리공동묘지는 1933년 개장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서울 시내에 묘지 공간이 부족해지자 경성부(현재의 서울시)가 공동묘지로 조성했다. 당시 이태원, 신촌 등에 있던 공동묘지들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개장 초기부터 수많은 서울 시민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시대의 아픔을 안고 스러져간 수많은 영혼들이 이곳에 묻혔고, 묘역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1973년 3월, 신규 매장을 중단했다. 그리고 1992년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여 묘지를 이전하도록 장려하고 '망우리 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현재는 단순한 묘지를 넘어 시민들을 위한 산책로와 쉼터, 그리고 근현대사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하여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망우리 역사문화공원


오늘날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은 울창한 숲과 잘 닦인 산책로(총 5.2km)가 어우러져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19만 평의 면적이다. 동시에, 묘역에 잠든 인물들의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배우고 성찰할 수 있는 도심 속 역사 문화 공간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이곳은 단순히 죽은 자들의 공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고 미래 세대가 역사의 교훈을 얻어 가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은 '근현대사 인물들의 야외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사회 각계각층의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잠들어 있다.


공원 내에는 이들의 묘역을 잇는 '인문학길' 2km가 조성되어 있다. 역사인물 사잇길 A코스가 있고, 경관중심 사잇길 B코스가 있다. 일제강점기와 근세사를 거쳐 독립운동가, 예술가, 문화인, 학자, 사회공헌가 등 잘 알려진 분들의 묘가 있는 신성의 땅이다.

만해 한용운(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시인, 승려) , 조봉암(초대 농림부장관), 오세창(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소파 방정환,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아동문학가 강소천, 화가 이인성, 연극인 차범석, 유관순 열사, 시인 김영랑, 도산 안창호 묘터 등이 있다.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 <유중권(柳重權) 이소제(李少悌)> 은 1919년 4월 1일, 충남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무자비한 일본 헌병대의 총에 맞아 모두 같은 날 순국하셨다. 유관순 열사는 눈앞에서 부모님을 모두 잃는 참극을 겪은 것이다.

체포 당시 17세. 참으로 꽃다운 나이로 감옥에서도 대한독립만세를 만세를 부르다 순국했다.


유튜브에서 유관순 열사의 고등학교, 대학교의 풋풋한 모습을 AI로 편집해 올린 것을 보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현대를 살았다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조국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누구 못지않게 행복한 중고, 대학시절을 보낼 것 아닌가.



여고복을 입은 유관순 열사(AI복원 : 그려DREAM-세상을 그리다)


유관순 열사의 묘가 가묘가 된 데에는 비극적인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18세의 나이로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 이화학당의 노력으로 겨우 인도되어 서울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하지만 당시 일제의 감시와 집안의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봉분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초라한 무덤이었다.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비극은 그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말인 1936년, 일제가 이태원 공동묘지를 군용 기지로 조성하면서 묘지 이장 사업을 강행했다. 이때 연고가 있는 묘는 이장되었지만, 돌보는 이가 없었던 유관순 열사의 묘를 포함한 수많은 무연고 묘들은 유실되고 말았다.

당시 경성부는 이태원 공동묘지의 무연고 분묘 2만 8천여 기를 화장하여 망우리 공동묘지(현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의 한 곳에 합장했다. 이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의 유해도 다른 무연고 유해들과 함께 섞여 화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열사의 유해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관순 열사의 넋이라도 기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비록 열사의 유해를 직접 모시지는 못했지만, 그 유해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망우리 합장묘역에 추모의 공간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2018년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누구보다도 행복한 가정을 택해 부디 환생하시기를 기도한다.


근심을 잊는다는 의미의 망우(忘憂) 산. 망우산(281m)은 어머니 같은 산이다.

어머니 복부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 있을까. 제 아무리 뛰어난 남자라도 남자의 고향은 어머니 뱃속이다.

그 어머니 뱃속 같은 곳에서 영면하는 분들이 많다. 망우산 남쪽에는 한강과 잠실벌판이 자리 잡고 있고, 북쪽에는 봉화, 불암, 삼각산이 자리 잡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터다. 최대 묘역 수는 약 28,500여 기에 달했으나 지속적인 이장 및 정비 사업을 통해 현재는 약 8,400여 기의 묘가 남아 있다. 이는 서울 시내에 위치한 단일 묘지공원으로는 가장 큰 규모이다.



│죽음은 이별일까? │


도보하며 명상을 하는 시리즈를 쓰니 몇몇 분이 명상하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명상에 대해 아시겠지만 생소하신 분들을 위해 명상에 대해 여기에서 잠깐 기본적인 부분만 말해보려 한다.


명상(Meditation)은 복잡하고 신비로운 종교적 수행이 아니라, '현재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며 자신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기술이자 훈련이다.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판단 없이 그저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 마음의 평온과 통찰력을 얻는 과정이다.

명상은 스트레스 해소, 집중력 향상, 감정 조절, 그리고 자기 이해 증진 등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준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호흡 알아차림 명상' 방법을 안내한다.


1. 준비단계 - 1단계로 명상을 위한 준비를 한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혹은 잠들기 전 시간을 활용하는 분들이 많다.

본격적인 명상에 앞서, 편안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하루 5분으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길게 한 번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익숙해지면 점차 10분, 15분으로 늘려나간다.

장소는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이면 된다.

명상자세의 핵심은 척추를 곧게 펴서 의식은 깨어있게 하되, 몸의 나머지 부분은 이완하는 것이다.

의자에 앉을 경우는 엉덩이를 의자 등받이에 붙이지 않는다.

척추는 허공에 기둥을 세우듯 자연스럽게 펴고, 머리가 척추 위에 가볍게 얹혀 있다고 상상한다.

어깨의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늘어뜨린다.

바닥에 앉을 경우는 방석이나 쿠션을 엉덩이 밑에 받쳐 앉으면 허리를 펴는 데 도움이 된다.

책상다리(양반다리)나 반가부좌 등 자신이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무릎이 엉덩이보다 높이 올라가지 않도록 방석 높이를 조절하는 것이 좋다.

손은 무릎 위에 편안하게 올려놓는다.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거나 아래로 향하게 해도 상관없다.

턱은 살짝 아래로 당겨 뒷목이 펴지는 느낌을 유지한다.

눈은 완전히 감거나, 혹은 시선을 아래 45도 방향의 한 점에 부드럽게 고정한다. 눈을 뜨고 할 경우 초점이 맞지 않아도 괜찮다.

혀는 입천장에 가볍게 대거나 편안하게 둔다.

마음가짐으로 '특별한 경험을 해야 해', '생각을 완전히 없애야 해'와 같은 기대를 버린다. 오늘의 명상은 그저 앉아서 호흡을 바라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명상 중에 졸리거나, 잡생각이 들거나, 몸이 불편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자책하지 말고, "아, 생각이 떠올랐구나", "졸음이 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린 뒤 친절한 마음으로 다시 호흡으로 돌아온다.

자세를 잡고 앉았다(1분) 면, 먼저 심호흡을 2~3회 크게 한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면서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자세를 잡고 앉았다면, 먼저 심호흡을 2~3회 크게 한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면서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2. 호흡에 집중하기 (3분) - 이제 의식의 초점을 '호흡'으로 가져온다. 숨이 몸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감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코끝, 가슴, 배 어디든 한 곳을 정해 주의를 집중한다.

3.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면 알아차리기 - 명상을 하다 보면, 100% 확률로 마음은 다른 곳으로 달아난다. 과거의 기억, 미래의 계획, 걱정, 상상 등 온갖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이것은 실패가 아니라 명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생각이 떠올랐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마음 챙김(Mindfulness)'의 핵심이다.

마음속으로 "아,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가볍게 이름표를 붙여준다.

4. 부드럽게 호흡으로 돌아오기 -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그 생각에 끌려가거나 자책하지 말고, 아주 부드럽게 의식의 초점을 다시 호흡이 느껴지는 곳(코끝, 가슴, 또는 배)으로 가져온다.

명상은 이 과정의 반복이다. [호흡 관찰] → [생각이 떠오름] → [알아차림] → [호흡으로 돌아오기]. 이 사이클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는 것이 바로 마음 근육을 단련하는 훈련이다.

5. 명상 마무리하기 (1분) - 정해둔 시간이 되면(휴대폰의 부드러운 알람을 활용), 바로 눈을 뜨고 일어나지 않는다. 먼저 의식의 범위를 호흡에서 몸 전체로 넓힌다. 몸의 감각을 느껴본다. 주변의 소리, 공기의 흐름 등 외부 환경을 천천히 인식한다.

준비가 되면 부드럽게 눈을 뜬다. 잠시 시간을 내어 명상을 통해 잠시나마 자신과 함께 있어 준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이 과정을 반복해 명상의 근육을 키운다. 끊임없이 육신의 나, 정신의 나를 관찰한다. 나를 관찰하면서 나를 객관화한다. 그러면서 참된 자아는 무엇이고, 참된 자아는 누구인가로 접근해 가는 것이다. 도보하며 명상하는 것은 위의 단계를 응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눈 덮인 한강



사잇길 B코스 사색의 숲, 생명의 숲, 무궁화동산, 치유의 숲을 천천히 걷는다. 도산 안창호의 묘터는 1973년 도산공원으로 이전하여 비석만 남아 있다. 뒤편 구리-한강 전망대는 멋진 뷰를 선사한다. 강동대교, 암사대교, 백봉산, 예봉산, 검단산, 무갑산, 금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파 방정환은 우리나라 뿌리 아동문학가다.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고, 색동회를 조직하여 어린이들을 보호하였으며, 어린이날을 최초로 만들었다. 방정환은 어린이들을 위한 끊임없는 활동과 과로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는 오랜 기간 신장염과 고혈압을 앓았으며, 1931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여보게, 밖에 검정 말이 끄는 검정마차가 와서 검정옷을 입은 마부가 기다리니 어서 가방을 내다 주게."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의 묘비에는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 같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그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죽을 때까지 안고 떠났다.


'님의 침묵'의 시인 한용운은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한용운은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서울 성북동의 심우장에서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중풍(뇌졸중)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의 어려운 생활로 인한 영양실조가 건강 악화에 영향을 미친 것이 원인이 되었다.

한용운 묘소는 등록문화재 제519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까이 연보비가 세워져 있다.

- 한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서, 이 같은 본성은 남이 꺾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한용운 묘소를 보고 나면 중랑전망대가 나온다. 중랑전망대는 가장 멋진 전망을 선물한다. 서울시내와 북한산 보현봉, 망우역, 봉화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이 한눈에 보인다.

멋진 자연미감상을 하면 수도 없는 잡생각들이 거의 사라진다. 명상에도 도움을 준다.


'한국의 고갱' 천재화가 이인성은 1950년 경찰과의 사소한 언쟁 끝에 총을 맞고 38세로 아까운 생을 마쳤다.


'명동신사' 시인 박인환의 묘 연보비가 보인다.

박인환은 평소 시인 이상을 깊이 흠모했다. 그의 기일을 맞아 사흘간 폭음한 것이 결국 갑작스러운 죽음(심장마비)으로 이어졌다. 그의 나이 불과 29세였다. 그의 요절은 한국 문단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으며, 많은 문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 목마와 숙녀 중에서


암울하고 불행한 시대에 그들은 청춘을 불살랐다. 그리고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의 행복을 누린다.


눈이 와 온 천지가 하얗다.

하얀색 망우리역사문화공원을 걷는다. 죽음은 이별일까.

그들은 죽어 역사와 애국, 인생, 예술과 문학의 향기를 남겼다.

삶과 죽음 사이를 천-천-히 음미하며 이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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