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아직도 그 정도밖에 못 해? 옆 팀 김 대리는 벌써 성과를 저만큼 냈는데.”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보상은 확실하다. 필요하다면 밤샘 근무를 해서라도 목표달성을 해야 돼.”
이런 말이 익숙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회사라는 정글, 그 냉혹한 성과지상주의의 한복판에 서 있다. 현대 기업 문화는 ‘경쟁’을 미덕으로 포장하고, 오직 ‘성과’만이 생존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척도라고 외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만들어낸 부산물은 다름 아닌 조직 구성원들의 번아웃(Burnout)과 질병이다. 우리가 환상이라고 규정하는 이 무한 경쟁의 굴레는, 결국 사람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소각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성과지상주의는 능력 있는 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실제 기업 현장에서 이는 무자비한 생존 게임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인간성, 인도주의 - 이런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다. 시스템은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더 많은 생산성과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 '최고가 아니면 의미 없다'는 무언의 압박은 개인의 한계를 넘어선 과도한 노동을 정당화한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공포는, 직원들 스스로 워라밸(Work-Life Balance :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용어. 이는 단순히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50대 50으로 나누는 것을 넘어, 직업적인 요구와 개인적인 욕구 및 책임이 조화롭게 충족되는 상태를 추구하는 개념임)을 포기하거나 생각할 여유를 같지 못하게 한다.
이 개념은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21세기 들어 밀레니얼 세대(Y세대,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와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성과지상주의는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를 부추긴다. 동료는 협력자가 아니라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자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협업의 가치는 사라지고,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한다.
시스템은 소수의 ‘성공’ 사례에 막대한 보상을 약속하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노력은 무시되거나 낮은 평가를 받는다. 계속되는 실패나 낮은 성과는 연봉협상과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이는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흔든다.
기업들은 '열정'과 '도전'이라는 달콤한 포장지로 과도한 노동을 감춘다. 그러나 그 속에서 직원들은 정작 자신의 업무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성과지상주의의 가장 직접적인 희생양은 바로 번아웃 증후군이다. 번아웃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직업 관련 증상으로 분류했을 정도로 심각한 현대인의 질병이다.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며 무기력해지는 이 증상은, 단순히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시스템이 개인의 에너지를 한계 이상으로 강제적으로 소진시킨 결과였다.
번아웃 증후군의 증상으로 만성적인 피로로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워진다. 몸은 늘 쑤시고, 면역력은 급격히 저하된다. 그리고 업무에 대한 흥미와 성취감을 상실한다. 자신과 업무 사이에 방어적인 거리를 두며, 모든 것에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한다. 또한 이전에는 쉽게 해내던 일도 어렵게 느껴진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에 빠진다.
번아웃은 개인의 정신 건강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좀먹는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 문제를 개인의 ‘나약함’이나 ‘스트레스 관리 실패’로 치부하기도 한다.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 은폐되고, 고통받는 개인에게만 책임이 전가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다음은 번아웃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질병 사례들이다.
우울증 : 만성 스트레스는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와 기능을 교란한다. 특히 수면 부족과 영양 불균형은 증상을 악화시킨다. 번아웃의 무기력감과 냉소주의가 심화되면 임상적인 우울증으로 발전한다. 직무 능력 상실과 자기 비난이 결합하여 극심한 자존감 저하와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불안 장애 및 공황 장애 : 성과 압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되면서 신경계가 과도하게 흥분 상태를 유발된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출근길이나 회의 도중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심장 박동 증가,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공황 발작을 경험한다. 이는 번아웃으로 인한 신경계 과민 상태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결과이다.
고혈압 :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지속적으로 분비되면 혈관이 수축하고 심박수가 빨라져 혈압이 만성적으로 상승한다. 고혈압은 그 자체로 증상이 없더라도, 장기간 지속되면 동맥경화와 심장 비대를 유발하여 더 위험한 질환으로 발전한다.
심근경색 및 협심증 : 과로와 스트레스는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혈관 벽에 손상을 준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고 업무 강도가 높은 직장인들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혈관이 막히거나 좁아지는 협심증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심근경색을 겪기도 한다. 이는 특히 과도한 야근과 주 52시간 제도를 무시하는 노동 환경에서 두드러진다.
면역력 저하와 자가면역질환 : 처음에는 감기에 자주 걸리는 형태로 나타나다가, 더 나아가면 면역 체계 자체가 혼란에 빠진다. 그 결과로 면역 세포의 활성도가 떨어져 대상포진 등 바이러스성 질환에 쉽게 노출되고, 심지어 면역 체계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류마티스 관절염, 루푸스 등)이 오기도 한다.
위장관 질환 : 스트레스는 위산 분비를 촉진하고 위장 운동을 방해한다. 만성적인 위염, 위궤양, 역류성 식도염을 호소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 다른 흔한 증상으로 스트레스와 불안이 장 기능을 교란하여 나타나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다. 이는 극심한 스트레스 환경에서는 복통과 설사/변비를 반복하며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준다.
긴장성 두통 및 편두통 : 업무 압박으로 인해 어깨, 목, 두피 주변의 근육이 경직되면서 띠를 두른 듯한 만성적인 긴장성 두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는 퇴근 후에도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근막통증 증후군 : 업무 중 잘못된 자세와 스트레스가 결합하여 특정 근육에 통증 유발점이 생기고 만성적인 근육통이 발생한다. 근육통은 어깨, 승모근, 목 뒤쪽에 집중되며, 심한 경우 수면을 방해하고 집중력을 저하시켜 업무 효율을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만든다.
번아웃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을 때 나타나는 신체의 비명이다. 현대의 직장인들은 이 비명을 무시한 채 계속 달려 나가다가, 결국 신체적, 정신적 파국을 맞이하기도 한다.
회사가 직원들의 '건강'을 '생산성 유지'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조직은 겉으로는 활발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병들고 지치는 직원들이 점점 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 대부분의 대기업은 이미 시차출퇴근제나 선택 근무제를 도입했다. 이는 근로자가 정해진 총 근로시간을 채우는 조건으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제도다.
네이버, 카카오, SK텔레콤 등 IT 기반 대기업들은 유연 근무제를 거의 전면 도입했다. 직원들은 오전 7시부터 11시 사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주 단위 또는 월 단위로 정해진 총 근무시간만 준수하면 되었다. 이를 통해 육아나 자기 계발 시간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포스코 등 일부 제조 대기업은 격주 주 4일제형 선택 근로제와 같은 혁신적인 형태를 도입했다. 한 주는 5일 근무, 다음 주는 4일 근무하는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긴 휴식 주기를 제공하며 호평을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확산된 재택/원격 근무는 이제 많은 대기업에서 정규 근무 형태로 자리 잡았다.
주 1~2회 전사적 재택근무를 실시하거나, 팀장 재량에 따라 수시로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경우가 일반화됐다. 이는 특히 출퇴근 시간이 긴 수도권 직장인들의 피로도를 크게 줄여주었다.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문화도 확산되었다.
연차 소진율을 팀 성과 평가에 반영하거나, 특정 기간(예: 여름, 연말)에 리프레시 휴가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실제로 일부 IT 기업에서는 연차 소진율이 95% 이상을 기록하는 등 높은 수준을 보였다.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술과 환경에 둘러싸여 성장하여 이를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사고하는 세대를 뜻하는 용어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대표적인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그 이후 세대인 Z세대이다. 이들 세대는 성과지상주의와 자주 부닥치는 세대이다. 이들 세대의 특징을 이해해 이들에게도 협업과 상생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제도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기업의 워라밸은 여전히 ‘부서별, 직무별 불균형’이라는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물리적인 야근 시간은 줄었다. 하지만 이는 '퇴근 후 업무'라는 새로운 형태로 변질되었다.
유연 근무제를 사용하더라도, 정해진 코어 타임(예: 오전 10시~오후 3시) 이후의 업무는 집에서 노트북을 켜고 처리하는 ‘자발적 야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업무량 자체가 줄지 않았기 때문에, 근무 시간만 유연하게 바뀐 것일 뿐, 총 노동 시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불만이 제기되었다.
‘PC-Off제(정해진 근무시간이 지나면 업무용 PC의 사용이 자동으로 제한되거나 종료되도록 하여, 근로자의 초과 근무(야근, 휴일 근무 등)를 줄이고 정시 퇴근을 유도하는 근로시간 관리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관리자들은 직원들에게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업무 지시를 계속한다. 직원들 역시 다음 날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퇴근 후에도 업무 관련 메시지를 확인하고 일부 작업을 처리한다.
모든 부서의 워라밸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현장직, 영업직, 핵심 프로젝트팀 등은 여전히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시달리기도 한다.
신제품 출시나 시스템 개발을 앞둔 연구개발(R&D) 부서, 또는 해외 수주가 걸린 영업/생산관리 부서는 주 52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집중 근무를 강요받기도 한다. 제도적으로는 보상 휴가나 대체 휴무가 주어졌지만, 업무 공백 때문에 실제로 휴가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같은 회사라도 본사 경영지원팀은 정시 퇴근이 비교적 자유로운 반면, 현장 생산관리팀은 밤낮없이 교대 근무와 돌발 상황 처리로 인해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기도 한다.
워라밸 제도 도입으로 가장 큰 압박을 받는 것은 중간 관리자(팀장급)들이다.
상사는 정해진 기간 내에 성과를 요구하고, 부하 직원은 워라밸을 요구한다. 관리자들은 정해진 근로시간 내에 팀원들의 성과를 끌어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결국, 팀원들의 잔여 업무를 관리자 본인이 퇴근 후 처리하거나,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업무를 배분하는 등 스트레스가 심화된다. 양쪽에 낀 중간관리자의 '짠한 처지'다.
2025년 한국 대기업의 워라밸은 '양적 개선(제도 도입)'은 이뤘으나, '질적 개선(조직 문화)'은 아직 미흡한 상태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겉으로는 선진적인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뿌리 깊은 성과지상주의와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어, 근로자들은 제도가 허용하는 워라밸 대신 '눈치 워라밸'을 경험하고 있다.
진정한 워라밸은 단순히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을 넘어, 업무 외적인 영역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회사라는 정글을 숲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경쟁은 환상이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진정한 성과는 개개인의 능력 이상으로, 안정된 환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업에서 나온다.
단순히 숫자로만 측정되는 단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 혁신적인 아이디어, 팀워크 기여도, 건강한 조직 문화 구축 등 장기적인 가치를 성과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휴식을 '낭비'가 아닌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충분한 재충전 없이 이뤄지는 노동은 결국 비효율과 질병으로 이어진다. 일과 삶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또한 실패를 용인하고, 성과 압박 대신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직원들이 자신의 문제를 숨기거나 홀로 고통받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회사라는 정글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성과지상주의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인 인정과 성취를 뒤틀어 어떻게 개인을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제는 무한 경쟁의 허상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성과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새로운 조직 시스템을 구축할 때다. 그래야만 우리의 일터는 사람을 소진시키는 정글이 아닌, 모두가 함께 자라나는 건강한 숲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