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새벽은 학생들의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작된다.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해가 진 한참 후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삶. 교도소의 일과표보다 더 빡빡하게 짜인 스케줄 속에서, 아이들은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현재를 저당 잡힌다. 우리는 이것을 '입시'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거대한 '인간 개조 용광로'이자, 창의성을 말살하는 잔혹극이다.
앞서 2편에서 우리는 교실이 어떻게 붕괴되었고, 친구가 어떻게 적이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그 원인의 심장부, 입시 시스템이라는 괴물의 내장을 들여다볼 차례다. 이곳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곳이 아니다. 정해진 정답을 누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찍어내는지를 겨루는 속도전의 전장이다.
세상은 복잡하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하나가 아닐 수 있으며, 때로는 해답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교실 안에서 정답은 오직 하나여야 한다. "왜요?"라는 질문은 입시 공부에 방해가 되는 불순물 취급을 받는다. "이건 시험에 나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라는 말은 질문을 봉쇄하는 가장 강력한 주문이다.
이 과정에서 창의성은 거세된다. 창의성이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힘,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용기에서 나온다. 그러나 입시 지옥에서 '다름'은 곧 '오답'이다. 남들이 보지 못한 독창적인 해석을 내놓는 학생은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생각 말고 외우라"는 핀잔을 듣는다. 사고의 확장을 훈련받아야 할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사고의 축소를 강요받는다. 네모난 틀에 맞지 않는 둥근 생각들은 가차 없이 잘려 나간다.
이것은 지적인 폭력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출제자가 파놓은 함정을 피하는 기술을 연마한다. 문학 작품조차 감동의 대상이 아니라 해부하고 분석하여 정답을 도출해야 하는 텍스트 덩어리로 전락한다. 시인의 고뇌를 공감하는 능력보다, 시어의 함축적 의미를 보기에서 골라내는 능력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감수성이 메마른 땅에 창의성의 꽃이 피어날 리 만무하다.
입시 지옥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축은 '상대평가' 시스템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서 90점을 받아도, 남들이 95점을 받으면 나는 패배자가 된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이것은 생존 게임이다.
상대평가 시스템 하에서 학생들의 목표는 '학문의 성취'가 아니라 '타인의 실패'가 된다. 시험 기간이 되면 친구에게 노트를 빌려주지 않거나,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는 괴담 같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진다. 옆자리의 짝꿍은 함께 성장하는 동료가 아니라, 내가 밟고 올라가야 할 경쟁자일 뿐이다.
이 잔혹한 구조는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불안을 주입한다. 1등급은 상위 4%에게만 허락된 좁은 문이다. 나머지 96%는 필연적으로 패배감과 열등감을 느껴야 한다.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대다수를 '루저'로 만드는 셈이다. 상위권 학생이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언제 그 자리에서 미끄러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이러한 줄 세우기는 인간의 가치를 단 하나의 잣대, 즉 성적으로 환원시킨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인 양 대우받고, 성적이 낮은 학생은 '노력이 부족한', '게으른', 심지어는 '문제 있는' 학생으로 낙인찍힌다. 인간의 능력은 다면적이다. 누군가는 수학을 못해도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고, 누군가는 암기력이 부족해도 공감 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 그러나 입시라는 용광로는 이 모든 다양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점수라는 단일 합금만을 생산해 낸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과열을 부른다.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이제는 학교 진도를 앞서 나가는 '선행학습'이 당연한 의무가 되었다. 중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풀고, 초등학생이 중학교 영어를 마스터한다. 이것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단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선행학습은 교육의 본질을 완전히 파괴한다. 배움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 인지 발달 단계에 맞춰 개념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입시는 소화도 되기 전에 억지로 음식물을 밀어 넣는 '푸아그라 사육'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내용을 이해해서 푸는 것이 아니라, 유형을 암기해서 푼다. "이 문제는 이렇게 푼다"는 기계적인 패턴 인식만이 남는다.
이 과정에서 '공부의 즐거움'은 멸종했다. 앎의 기쁨,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 희열은 입시 전쟁터에서 사치스러운 감정이다. 공부는 지겹고, 고통스럽고, 하루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형벌이 되었다. 대학만 가면 모든 공부가 끝날 것처럼 아이들을 다독이지만, 그렇게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은 이미 지적 호기심이 고갈된 상태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탐구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 그저 학점을 잘 받기 위한 또 다른 요령을 찾을 뿐이다.
입시 지옥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과거에는 그래도 다양한 학과와 진로를 꿈꾸는 낭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입시의 종착역은 기형적으로 좁아졌다. 바로 '의대'다. 전국의 수재들이 오로지 의사가 되기 위해 N 수(재수, 삼수 등)를 마다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의대 입시반이 성행하는 나라.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인가?
이는 입시 경쟁이 단순히 개인의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준다. IMF 이후 무너진 평생직장의 신화, 불안정한 고용 시장, 사회 안전망의 부재 속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는 '라이선스'가 보장하는 확실한 안정성을 쫓게 되었다.
하지만 이 쏠림 현상은 국가적 재앙이다. 과학자, 공학자, 인문학자, 예술가가 되어야 할 인재들이 모두 청진기를 잡기 위해 줄을 선다.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시도를 해야 할 젊은 두뇌들이,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된 길로만 몰려가는 사회에 혁신이 일어날 리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 대다수가 겪는 좌절감이다. 의대에 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묵시적인 메시지는 수많은 청춘을 패배주의로 몰아넣는다.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고민할 시간도 없이, 사회가 정해놓은 단 하나의 정답을 향해 달리다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비하하게 만든다.
입시 지옥은 거대한 가스라이팅이다. "지금 고생하면 평생 편하다", "대학 간판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말로 아이들의 현재를 착취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명문대에 들어간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곳에는 또 다른 형태의 경쟁이, 취업이라는 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세상은 바뀌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추월하는 시대에, 오지선다 정답을 잘 맞히는 능력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챗GPT가 몇 초 만에 내놓는 답을 얻기 위해 12년을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낭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능력, 서로 다른 지식을 연결하는 능력, 기계가 가질 수 없는 공감과 창의성이다.
하지만 입시 시스템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유물인 '성실한 노동자', '시키는 대로 하는 인재'를 찍어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은 고유한 빛깔을 잃고 무채색의 수험생으로 획일화된다. 창의성은 말라비틀어지고, 자존감은 순위표 아래 깔려 질식한다.
경쟁은 환상이다. 옆의 친구를 이겨야 내가 산다는 것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가장 악질적인 거짓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트랙을 달릴 수 있다. 아니, 트랙 밖으로 나가서 들판을 달릴 수도 있고, 달리기를 멈추고 춤을 출 수도 있다. 입시라는 좁은 깔때기만이 유일한 통로라고 믿게 만드는 이 최면에서 깨어나야 한다.
아이들은 경주마가 아니다. 등급이 매겨지는 고기가 아니다. 그들은 생각하고, 느끼고, 꿈꾸는 온전한 인간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 멈추지 않는다면, 이 잔혹극의 결말은 우리 사회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창의성이 죽은 사회, 패배감에 젖은 청년들이 넘쳐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입시 지옥을 벗어나 대학에, 혹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은 과연 자유로워질까? 안타깝게도 경쟁의 망령은 학교 담벼락을 넘어서도 집요하게 우리를 따라온다. 이제 무대는 교실에서 '무한 경쟁의 사회'로 확장된다.
다음 편에서는 성인이 된 우리가 마주하는 또 다른 환상, '능력주의의 함정: 공정하다는 착각과 스펙 쌓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달렸지만, 왜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인지, 그 불편한 진실을 파헤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입시의 종착역은 기형적으로 좁아졌다. 바로 '의대'다. 전국의 수재들이 오로지 의사가 되기 위해 N 수(재수, 삼수 등)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이 2025년 현재 적나라한 대한민국의 현실인가? 왜 의대가 지금 최고 인기 학과인 이유는 무엇인가? 1등급 의대는 어느 대학인가? 서울대, 연대, 고대, 경희대 등의 경쟁률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
이에 대한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현실을 팩트 체크한다.
1. 2025년 대한민국 입시의 현실: "의대 블랙홀"
현실이다. 2025학년도 입시에서 의대 쏠림 현상은 '광풍' 수준을 넘어 '블랙홀'이 되었다.
직장인의 귀환: 대기업 직장인, 명문대 공대 재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와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수능판으로 돌아오는 'N수생' 비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서울대의 굴욕: 대한민국 최고 지성이라 불리는 서울대학교 신입생들조차 등록을 포기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2025년 정시에서 서울대 합격자 중 상당수가 등록을 포기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타 대학 의대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 공대보다 지방대 의대가 낫다"는 인식이 완전히 굳어졌다.
단순히 명예 때문이 아니다. 철저하게 '생존'과 '돈'의 문제이다.
압도적인 생애 소득 격차: 의사의 평균 연봉은 일반 대기업 직장인의 4~5배에 달한다(평균 2~3억 원대 vs 5~6천만 원대). 생애 소득으로 환산하면 수십억 원의 차이가 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격차는 계급의 차이를 만든다. 정년 없는 라이선스 (직업 안정성): 대기업은 40~50대면 퇴직 압박을 받지만, 의사는 면허가 있는 한 70~80세까지도 일할 수 있다. 100세 시대에 이보다 강력한 보험은 없다.
AI 공포와 이공계 기피: 챗GPT 등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코딩이나 일반 사무직은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가 크다. 반면, 인간의 신체를 직접 다루는 의료 행위는 AI 대체가 가장 늦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공계 기피, 의대 쏠림'을 가속화했다.
의대 입시생들 사이에서는 '빅 5 (Big 5)'라고 불리는 최상위 그룹이 존재한다. 병원 규모, 매출, 역사 등을 종합한 부동의 1 티어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동의 원탑)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신촌 세브란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서울성모병원, 국내 최대 병상 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삼성서울병원 연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서울아산병원 연계)
이 뒤를 이어 고려대 의대가 맹추격 중이며, 그 외 '인서울 의대(경희대, 한양대, 중앙대 등)'가 최상위권을 형성한다.
2025학년도는 의대 증원 이슈로 인해 경쟁률이 요동쳤지만, 상위권 의대의 인기는 여전히 폭발적이었다. (전형별로 상이하므로 대표적인 수치를 요약한다.)
가천대 의대: 논술 전형 등에서 104.19 : 1이라는 경이적인 경쟁률을 기록하며 전국 최고 수준을 보였다. 고려대 의대: 학생부교과 약 20.5 : 1, 학업우수형(종합) 약 38.3 : 1
성균관대 의대: 논술 전형의 경우 수백 대 일에 달하는 경쟁률을 보이며, 종합 전형도 매우 높다.
경희대 의대: 학생부교과 약 6.9 : 1 (최저학력기준 충족이 매우 까다로워 허수 지원이 적음), 네오르네상스(종합) 약 20~30 : 1 수준 (해마다 높음) 서울대/연세대: 최상위권들만의 리그라 표면적 경쟁률은 10~15:1 수준으로 보일 수 있으나, 지원자 전원이 전국 수석급이라 실질 경쟁 강도는 측정 불가 수준이다.
결론적으로, 제2부에 쓴 내용은 과장이 아니라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의 정확하고 뼈아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의대 입시는 이제 단순한 진학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불안과 욕망이 응축된 가장 뜨거운 용광로이다.
1. 2025년 대입 인구: "역설적이게도 학생 수는 많다"
많은 분이 "저출산(0.7명)이니까 대학 가기 쉽지 않나?"라고 오해하지만, 2025년 입시를 치르는 학생들은 2007년생, 일명 '황금돼지띠' 아이들이다.
2025학년도 고3 학생 수: 약 45만 명 (전년 대비 오히려 약 2만 명 증가). 2007년 당시 출산율이 1.25명 정도로 반짝 반등했기 때문에 올해는 일시적으로 수험생이 늘어난 해이다. (출산율 0.7세대인 2023~24년생이 대학에 가는 18년 뒤에는 정말 아무도 없을 것이다.)
N수생 폭증: 여기에 의대 증원 이슈를 노리고 뛰어든 졸업생(N수생)이 약 18~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총 수험생: 약 50만 명 이상이 좁은 문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서울이 아니면 대학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2025년 수시 모집 결과를 보면 그 격차는 '역대 최대'이다.
서울권 대학 경쟁률: 평균 18.7 : 1 (역대 최고치 경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려면 19명 중 1명이 되어야 한다.
지방권 대학 경쟁률: 평균 5.99 : 1 (사실상 미달). 대입 수시 모집은 1인당 6장의 원서를 쓴다. 따라서 경쟁률이 6 : 1 미만이면, 중복 합격으로 빠져나가는 인원을 고려할 때 **'사실상 정원 미달'**로 간주한다. 즉, 지방 대학의 평균 자체가 이미 '미달 위험권'이다.
지방 대학, 특히 비수도권 대학들의 상황은 '마이너스 경쟁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처참하다.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은 다음과 같다.
사실상 미달 대학 비율: 전국 대학 중 경쟁률 6 : 1 미만인 대학의 80% 이상이 지방 대학이다.
경쟁률 1 : 1 미만 학과 속출: 지방 사립대 중하위권 대학의 상당수 학과는 경쟁률이 0.8 : 1, 0.5 : 1 수준이다. 이는 지원자 수가 모집 정원보다 적다는 뜻으로, 원서를 내고 시험장에 나타나기만 하면 100% 합격이라는 의미이다. 심지어 일부 지방 대학은 신입생 충원율이 50%도 되지 않아, 교수들이 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제발 원서만 써달라"라고 읍소하는 것이 현실이다.
환상 속의 레이스: 학생들은 '대학 입시가 치열하다'라고 믿고 죽어라 달리지만, 그 치열함은 오직 '상위 10% 대학'과 '의대'에만 존재하는 인위적인 병목 현상이다.
버려진 트랙: 나머지 90%의 대학은 텅텅 비어 있다. 우리가 '입시 지옥'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가 똑같은 바늘구멍(서울/의대)으로만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지옥이다. 옆을 보면 텅 빈 문들이 활짝 열려 있지만, 아무도 그곳을 '성공'이라고 부르지 않기에 거들떠보지 않는다.
예고된 멸종: 지금의 고3(황금돼지띠)이 지나가고 나면, 학생 수는 급격히 꺾인다. 불과 5~10년 뒤에는 서울 주요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 대학이 물리적으로 소멸할 운명이다. 우리는 지금 가라앉고 있는 배(대학 간판)의 상석(서울)을 차지하려고 서로를 밟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이 좁은 문이 과연 유일한 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