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보다 큰 짐을 들고, 프랑스로 가다.
몸보다 큰 짐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몸의 감각을 휩쓸어 지나간다. 낯선 공기가 코를 통과해 내 몸 한 바퀴를 돌아 나오자, 자연스레 깊은숨이 내뱉어졌다. 파랑, 하얀, 빨강색 꽤나 상징적인 색색의 조명이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을 맞이하듯 창문 너머로 반짝인다. 이곳은 여태 내가 살아온 땅과 다르다는 것을 모든 몸의 감각 기관들이 정신없이 말해주고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보이는 큼직한 광고판. 다양한 얼굴색을 가진 모델들이 낯선 외지인을 웃으며 맞이하고 있다. 자동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몸을 싣고, 납작하고 반질거리는 큼직한 유리를 마주 본다. 불빛에 반사된 얼굴은 천진난만한 모델들과 상반되게 퉁퉁 부어있다. 밤 11시가 다 되어 이곳, 프랑스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표를 끊지 않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 것은 인생에 처음이다.
컨테이너 벨트를 바라보며 거대한 회천초밥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캐리어는 커다랗고 반짝이는 은색이니 퉁퉁한 참치일까나. 실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저 멀리 내 몸뚱이 만한 짐이 나온다.
익숙한 짐을 힘껏 들어 올린다. 3개월치 짐의 무게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다 두고 정리해 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무게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무거운 짐이 생길 때면 항상 함께 들어 나르는 그가 있었기에, 그 무게를 몰랐다. 쇳덩이 같이 익숙하지 않은 무게에 울컥, 다시 눈과 코에 찡하니 물이 찬다. 이 모든 짐을 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갔지만, 그 안에는 살아갈 필수적인 물건들이 너무 많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금 배에 힘을 꽉 쥐어본다.
할 수 있어.
20대 내내, 치열한 삶은 연속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도 나가보고, 편의점 알바, 식당 알바, 학원 강사, 학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장학금을 받아야 했고 새벽 6시까지 술을 마셔도 오전 9시 수업을 놓치지 않았다. 언젠가 친한 동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포기를 해봐야 해.”
서울로 상경한, 갓 어른이 되었던 충청도 촌뜨기는 어려운 일들이 생겨도 어떻게 해서든 이겨내는, 도전하는 맛을 알아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촌스럽지만 정직한 말 하나를 믿고 나아갔다. 어린 시절 우리 집 한쪽 벽에는 먹으로 써진 문장 하나가 걸려있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내가 이겨낼 수 없는 일들은 있기 마련이다. 열심히 노력한들,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쏟아지는 소나기에 잠시 쉬어가려 했지만, 지붕 하나 없어 맨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그냥 대차게 맞고, 볕이 들기를 기다리자 마음먹었지만, 소나기인 줄 알았던 그 비가 가랑비일 줄이야.
도저히 내 힘으로 이겨내기 벅찬 상황들이 물 밀듯 쏟아질 때면 떠밀린 감정을 술에 담아 몸뚱이 안으로 부어댔다. 다음날이면 잊힐, 내가 뭐라 씨부리는지도 모르는, 공허한 말들은 술과 뒤섞여 시간을 탕진했다. 매일같이 동네 술집을 찾는, 텅 빈 술병과 술잔을 붙들고 떠드는 술쟁이 진상이 되는 것이다. 갉아먹히는 몸과 정신을 탈각되는 고통으로 착각했다. 건강은 젊음에 빚지는 거라, 몸은 결국 그 모든 빚을 감당해야 했다.
서른이 넘어, 원인 불명의 발목 통증이 찾아왔다. 발바닥이 땅에 닿으면 뇌가 번쩍거리고 수백 개의 바늘이 왼쪽 발을 찔러대는 고통에 몇 년간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런 느린 걸음을 맞춰 함께 걷는 이가 있었다. 땅이 바뀌고, 계절이 변해도 그는 항상 옆에서 나의 속도와 걸음의 너비를 맞췄다. 우리는 서로의 것을 나누었다. 나누는 것이 익숙한 우리라는 존재는 그 어떤 무게도 잊게 했다. 우리로 채워진 나는 더 이상 술을 찾지 않았다.
쿵.
이를 악물어 짐칸에 캐리어를 싣고, 자물쇠를 단단히 걸어 잠근다. 괜찮았던 왼쪽 발목이 찌릿거렸다. 오랜 비행 때문이다. 다행히 꾸준한 재활과 치료를 통해 정상적으로 걷게 되었으나, 여전히 관리가 필요하다. 기압 때문인지, 매번 비행기를 타고나면 꼬박 몇 주를 고생한다. 주먹으로 툭툭 아픈 부위를 내리치니 저린 게 조금은 나아졌다.
연인과 헤어지고 단 며칠 만에 서울의 모든 짐을 정리했다. 딱히 프랑스에 로망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더 이상 그 땅을 밟고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가장 필요한 것들만 챙겨 비행기에 올랐다. 언제고 한국을 떠나리라 결심했던 것만 거의 10년이었지만, 이렇게 올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오랫동안 묵을 수 있는 숙소가 운명처럼 알고리즘으로 떴고, 그 숙소가 프랑스였기에 무작정 행선지로 정해졌다. 정해둔 버짓과도 얼추 맞았고, 사람을 마주치기 싫어 선택한 시골은 꽤나 조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은 공항 근처 호텔에서 잠을 정하고, 내일은 파리 북역을 통해 노르망디 근처의 시골마을로 떠난다.
전처럼 해외에 온 것이 딱히 실감 나진 않았다. 그저 익숙지 않은 얼굴과 통하지 않는 언어가 평소보다 많아졌다고 느꼈다. 통하지 않는 언어는 묘한 안도감을 만든다. 이해되지 않는 당연함이 때론 편안함을 선사하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는 가끔 서로의 말을 너무 잘 알아듣는다. 통하는 말은 활짝 열린 문이기도 하다. 나는 닫을 수 있는 문이 달린 작은 공간이 필요했다.
말려있던 어깨를 피고, 몸을 곧추 세웠다. 프랑스에 소매치기가 그렇게 많다고 들었다. 더군다나 밤의 이동이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소매치기들도 허점이 있는 사람들을 골라 노린다고 했다.
살면서 처음, 오롯이 혼자 지내는 시간을 갖는 때이다. 충분히 고민하고 헤매기 위해 이곳에 왔다. 지난 모든 시간들은 저마다 의미를 갖고 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지금의 내가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더럽게 무거운 이 짐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내야지. 나를 지키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 아는 사람도 없고, 아는 곳도 없는 이 땅에서 나를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몸에 힘이 들어갔다.
호텔 근처의 역을 알리는 낯선 언어가 들린다. 배낭을 다시 여미고 자물쇠를 끌러 몸보다 큰 짐들을 굴린다. 매끈한 공항길을 지나는 바퀴는 생각보다 부드럽게 밀렸다. 그래, 어떻게든 된다. 안될 것 같이 막막한 것들도 어떻게든 되게 되어있다. 걱정말고, 일단 몸을 움직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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