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뜬다.
좋은 하루 보내!
태양은 언제나 자리하고 있다.
드르르륵! 쿵쿵...!
울퉁불퉁한 오래된 돌바닥과 캐리어 바퀴가 맞부딪치며 굉음을 울린다. 새벽의 어스름한 시골 골목에 군데군데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은 낯선 타지의 불청객을 쫓아내듯 껌벅거리고 있다. 누군가 뒤를 쫓아올 것만 같은 두려움에 발걸음의 속력을 내자 돌바닥에 부닥치는 캐리어 굉음이 메아리처럼 동네를 울려댄다.
'이러다 동네 사람들 잠 다 깨우는 거 아니야.'
생각하기를 멈춰야 한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믿으며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겨간다. 아직 해가 뜨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다. 유럽의 겨울, 새벽 6시는 컴컴한 어둠과 같다. 옮겨가는 발걸음에 맞춰 주변 까마귀들이 불청객을 드디어 몰아냈다는 승리의 울음소리를 외치고 있다. 소름 끼치는 새떼들의 소음은 몸을 더욱 굳게 만든다.
새들의 비명 같은 소리, 교회의 종소리, 묵직한 바퀴소리, 무거운 몸의 무게, 마음의 무게, 텅 빈 거리를 채우는 내 것이 아닌 것들, 지구의 중력이 이렇게나 무거웠던가.
숙소와 버스정류장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진 않았지만, 이 어둠 속에서 구글맵을 켜고 길을 찾기란 꽤나 식은땀 나는 일이다. 그냥 짐도 아니라, 거즌 몸뚱이 만한 짐을 끌고 다시 먼 거리로 이동하려니 이마와 손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어스름한 시골 거리는 그 유명한 잭 더 리퍼가 조용히 그림자를 보일 것만 같은 풍경이다. 어릴 적 추리소설을 읽으며 상상한 가장 긴박한 상황의 어느 거리 그대로가 내 눈앞에 있다. 추위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등골의 솜털이 오소소 서는 느낌이 든다. 주머니 속에는 혹시 괴한이라도 다가오면 바로 반격할 생각에 전기충격기를 손에 꼭 쥐고 있다. 날카로운 세관의 검사를 넘겨 가져온 내 몸을 지켜줄 호신용품이다.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전기충격기를 꼭 쥐고는, 몸뚱이 만한 짐을 이리저리 굴리며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유럽의 바닥은 어지간해서 매끈한 곳이 없다. 돌부리에 쿠당탕 걸려 넘어가는 진동으로 스웨터 속 식은땀이 지나온 길의 자국을 만드는 듯 뚝 뚝 방울을 남긴다. 여간 쉽지 않은 이동이지만, 여기서는 못살겠다는 강력한 직감에 대담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시야에 잡히는 버스 정류장에 운 좋게 딱 맞춰 버스 한 대가 도착한다. 버스 배차시간은 2시간에서 4시간까지도 걸리기 때문에 저 버스를 무조건 잡아야 한다.
"익스큐즈 무아!(실례합니다!)"
주머니 밖으로 꺼낸 전기충격기의 LED 기능을 빠르게 키고 흔들며, 쿠당탕 캐리어를 쥐고 전속력으로 달음박질을 한다. 캐리어의 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껴입은 옷과 모자들 사이로 삐져나온 땀이 미처 뛰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뺨을 스쳐간다. 닫힐지도 모르는 버스의 문부터 재빠르게 잡곤, 나오기 전 외웠던 짧은 프랑스어를 내뱉는다.
"갸흐 드 파리?(파리역?)"
버스기사는 웬 소란이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친절함과 의무감 사이의 무뚝뚝한 표정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운전석 밖으로 나와 버스 밖의 짐칸에 캐리어를 넣을 것이냐는 듯 트렁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시골동네는 영어를 기대하면 안 된다. 그도 낯선 외지인이 프랑스어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아차, 들고 있던 전기충격기를 잊었다. 혹시나 그에게 불쾌감을 줄까 빠르게 주머니에 넣은 뒤,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흔들며 말한다.
"위... 위! 메르시 보꾸!(네...네! 감사합니다.)"
무뚝뚝하게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고는 시동을 끄지 않은 채, 잠시 대기를 한다. 운전자 석으로 들어가는 기사님의 모습을 보곤 그제야 안도감에 버스 한 구석 자리에 앉는다. 새벽의 시골 프랑스 버스 창밖은 진득하게 어둠이 깔려있다. 유일하게 빛을 뿜는 것은 이 버스뿐이다.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은하철도에 탄 것 같다는 야무진 꿈을 꾸다, 주머니 속 단단한 플라스틱의 감촉에 퍼뜩 현실로 다시 정신이 옮겨진다.
덜덜거리며 곧 출발을 준비하는 버스에는 표정 없는 백인의 젊은 버스기사와 나 둘 뿐이다. 현실로 돌아온 감각에 오금이 저려왔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허리를 피고 창밖을 보며 귀에 에어팟을 꽂는다. 분위기와 상반되는 가장 신나는 곡을 선곡한다. '자우림의 카니발 아무르'.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을 보고 만들었다던 노래라던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과 가장 좋아하는 영화. 완벽한 타지에서 가장 애정하는 것들로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다른 세계로 떠나자, 현실에서 잠시 멀어져 보자, 외부 소음을 함께 체크하기 위해 꺼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곤 점점 음량을 높인다. 귀청이 터질 듯이 째랑한 목소리가 뇌를 가득 채운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즐거웠어요.
산뜻하게 헤어져요. 질척이지 말고.
어쩌다 마주치면 모르는 사이인 양
눈치껏 모른 척해 주세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즐거웠어요.
산뜻하게 헤어져요. 질척이지 말고.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어째서 단 한 사람만을 만나서,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랑들 중에
한 가지 사랑만을 해야 하나요?
사랑받고 싶어요. 사랑하고 싶어요.
내일은 다시 새로운 방법으로.
어제의 사랑으로는 행복하지 않아요.
오늘은 지금까지 몰랐던 사랑에 빠져 보고 싶어요.
달콤하게.
징징대지 말아 줘요. 깨끗하게 사라져 줘요.
자존심쯤은 지켜 줘요.
눈물만은 참아 줘요.
인생사 다 그런 것을 어쩌겠어요?
이미 끝난 게임인 걸 아쉬워 말아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즐거웠어요.
산뜻하게 헤어져요. 질척이지 말고.
사건은 전날 밤에 발생했다. 한인 민박 집은 원래 홀로 사용하는 것이었으나, 딱 일주일 정도 다른 층에 있는 한국분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생긴 문제였다. 호스트 내외가 그분에게 자신들의 반려 고양이를 맡기고 여행을 떠나버려, 게스트와 고양이를 챙길 사람에 대한 책임 문제가 불거졌다.
나에게도 허락을 받으려 했지만, 나는 쉼을 위한 여행임으로 거절을 했다. 다만 다른 한국 게스트가 돌봄을 수락하면서 지내는 장소에 고양이가 같이 있어도 되는지 물어보는 과정이 생겼다. 내가 직접 맡아주는 것이 아닌 한 공간에서 지내는 정도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여, 이 부분을 다시금 강조하여 호스트에게 이야기 한 뒤 수락했다.
문제는 고양이를 맡기고 호스트가 떠나고부터였다. 돌봄을 맡아주기로 한 다른 한국 게스트가 아침 일찍부터 나가버리고는 밤이 되도록 돌아오질 않았다. 남겨진 고양이는 가장 구석진 곳 한 귀퉁이에 파고들어 온몸으로 낯선이들을 경계하고 밥이나 물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나는 간식을 챙겨주고 물도 챙겨주며 아이를 몇 번 쓰다듬어 주었다. 고로롱 소리를 내면서 눈키스를 하는 아이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호스트였다. 맡아주는 게스트와 연락이 닿지 않자, 나에게 연락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비 밥은 먹었나요?", "간식 좀 줘보세요.", "그 자리에 있나요?", "어떤 간식을 좋아하니 그것 좀 줘보세요."
당연하듯 말하는 어투에 졸지에 펫시터가 되어버린 기분이라 썩 좋지 않은 심정이었지만, 이 작고 까만 고양이가 무슨 죄가 있겠나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로 케어를 했다. 밤 10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던 다른 한국인 게스트는 오늘 오긴 하려나 싶을 때쯤 나무 계단과 목재들이 무언가에 부닥치는 소리로 누군가가 왔음을 짐작했다. 누가 봐도 술에 취한 사람의 몸의 소리였다. 계단을 쿵쿵거리고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코 고는 소리가 온 층을 울렸다.
내 짐은 장비와 맥북 등 고가의 물품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고양이를 밖으로 보내고, 방문을 잠근 상태였다. 문제는 하루동안 마음을 내어준 고양이가 나에게 오고 싶었는지 방문을 긁으며 새벽 내내 울기 시작한 점이었다. 화장실, 물, 밥 등 챙겨주기로 한 모든 것들이 돌봄을 맡기로 한 게스트의 방에 있었기 때문에 덜컥 고양이를 들일수도 없는 판이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곧 올라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에어팟을 귀에 꽂으며 노이즈 캔슬링을 켰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나비의 울음은 새벽부터 아침까지 에어팟을 뚫고 이어졌다.
술에 취해 코 고는 소리와 나비의 울음소리로 하룻밤을 꼬박 새버린 나는 그 시간 동안 결정을 했다. 이런 곳에서는 절대 3개월 동안 지낼 수 없다고.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1시간 간격으로 녹음하고, 동영상으로 담아뒀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호스트에게 전화를 하여 해당 이야기를 전달했다.
호스트는 본인이 여행을 갔다가 일주일이 걸려 돌아오니 그때까지만 참아보라 했다. 그 말은 즉슨 일주일치 숙박비를 더 받고 자신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다. 나는 제트랙과 더불어 이 숙소에 도착하여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일은커녕 앞으로의 시간들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 과정으로 내 눈앞에 보였던 모든 낭만적이던 풍경들이 한순간에 꼴도 보기 싫은 세상으로 눈에 담기기 시작했다.
이미 반 미쳐 프랑스로 와버린 사람에게 한국과 같은 스트레스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휴식을 위해 모아둔 돈을 써서 이곳에 왔는데, 다시 돌아오는 이유 없는 책임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죄여왔다. 여러 스트레스로 더 이상 이 숙소에 있을 수 없다고 당장 내일 아침 기차를 이미 예매했고, 나가겠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마음의 결정이 세워지자마자 빠르게 에어비앤비를 통해 새로운 파리 근처의 숙소를 구했고, 그쪽으로 넘어갈 준비를 마쳤다. 비행기 값 정도의 우버비가 나올 것을 감안하여 당일 당장 이동을 하고 싶었지만, 몇 번이나 우버를 시도해도 너무 깡시골이라 올 수 있는 우버도 잡히질 않았다. 사람은 마음에 따라 살아가는 게 달라지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내가 살아갈 삶의 영역을 잘 가꾸어 나가야 한다.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참는 것보다는 나 자신이 보내는 확실한 신호를 존중해 주기로 이곳에 오면서 다짐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더 지내야 한다. 이곳에서 잠을 청할 생각은 없다. 첫차를 찾아보니 새벽 6시쯤으로 기차역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밤새 겨우 내 냄새를 묻혀놓은 방을 원복 해두었다. 원래 있던 자리에 낡은 책과 물건을 둔다. 거울을 가렸던 담요를 개키며, 꿈에 나왔던 중세의 연인들은 이 공간에서 어떤 일이 있던 것일까, 그들은 낯선 동양인에게 작은 친절을 베푼 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캐리어 안에 다시 짐을 꽉꽉 눌러 담고, 설레는 마음으로 사 왔던 와인과 식료품을 모두 주방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3층에서 몸뚱이 만한 짐을 들어 소용돌이 모양의 짧고 낡은 계단을 내려온다. 짐을 올릴 때만 해도 세 명이 붙어 옮기던 것을 이제는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혼자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온몸의 힘을 쥐어짜듯 짐을 옮기자 거친 숨소리가 계단 사이를 울렸다. 숙소 문을 잠근 뒤, 키를 제자리에 뒀다. 이제 이곳의 문을 다시 열 일은 없을 것이다. 길쭉하게 늘어서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낡은 돌더미의 건물들에서 스산함이 느껴진다. 벽돌 바닥에 내려놓은 짐들을 바라본다. 어떻게든 옮기긴 하는구나, 아주 짧은 대견함을 즐기는 것도 잠시, 동네를 울려대는 종소리와 까마귀 소리에 떠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덜커덩
버스가 출발을 하는지, 몸이 덜컹 진동한다. 한 곡 반복으로 들리는 자우림의 목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아침 첫차는 거침없이 어둡고 좁은 시골길을 내달렸다. 지나가는 풍경에는 앙상한 가지가 즐비어진 마른 나무들이 가득하다. 어둑한 거리에 타바코 LED 불빛으로 새벽을 밝히는 아주 작은 슈퍼가 시골길 사이로 보인다.
까만 나무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이 프랑스의 시골이구나 싶다. 한국과 다르게 펼쳐진 널찍한 초원뒤로 어둡고 푸른빛이 물들자 앙상한 가지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까맣게 보인다. 언젠가 프랑스 애니메이션 '프린스 앤 프린세스'를 본 적이 있다. 까만 물체들 뒤로 보였던 희미한 푸른빛, 그들은 이러한 풍경을 보고 작품을 만들어 왔구나. 겹겹이 걸쳐있는 초원의 끝에서 점점 주황빛이 섞여 오묘한 색으로 빛들이 엉겨진다. 버스 창안으로 저 멀리 여명의 불빛이 세차게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스름한 새벽을 밝히는 아침의 해는 내가 겪었던 일들과는 상반되게 너무나 아름다운 장관이다.
나는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여러 일들을 지나 이 풍경을 보여주려 이 아름다운 햇살이 여기로 인도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선택의 풍경을 맞이하는 것이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버스 기사는 낯선 동양인의 사연을 알 턱이 없다. 타인은 생각보다 남의 사연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 풍경은 여러 일을 겪는 나만이 볼 수 있는 선택의 풍경인 것이다.
귀에는 여전히 터질듯한 목소리가 외치고 있다. 그에 대응하듯 거세고 붉은 빛줄기가 앉아있는 눈으로 거침없이 달려든다. 서리가 잔뜩 낀 유리창 사이, 강렬한 볕은 투과되는 투명한 자리를 기어코 찾아내어 주황색 빛자락을 동공에 찔러댄다. 타들어갈 것 같은 세상이 도래한다. 이제는 모든 세상이 주황빛으로 변했다.
파리를 가는 기차역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30-40분이 걸린다. 떠오르는 해와 함께 풍경은 밝아진다.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과 함께 펼쳐진 널따란 초원이 눈에 더 잘 보인다. 풍요로운 땅을 가진 프랑스라더니, 정말 넓고 아름다운 자연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하나하나 눈에 담아낸다. 덜컹 일 때마다 부닥치는 빛의 부스러기가 눈에 찔린다. 제대로 뜨지도 못한 눈으로 담아보는 프랑스의 시골. 눈을 껌뻑일 때마다 점점 밝고 선명해지는 시골의 풍경. 눈 사이로 들어오는 여명의 부스러기가 눈부신 아침햇살을 보게 한다.
달리는 버스의 속도만큼 매서워지는 나뭇가지의 잔상 사이 맹렬하게 뿜어내는 태양의 기운이 번쩍거린다. 이 강인한 빛은 매일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태양이 뜨는구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은 이제 눈이 부시다. 새벽의 공기를 맡고 싶어 언 창문을 살짝 열어본다. 폐를 뚫는 차가운 공기와 더욱 강렬해지는 태양빛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뺨이 닿은 유리창은 얼어붙은 서리가 녹아 물방울이 맺힌다. 창을 닫고 뺨에 닿은 물방울을 쓱 닦아낸다. 땀인지 태양의 잔여물인지 모를 것을 닦아내며, 생각한다.
나는 왜 평화를 찾을 수 없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세상에 원망 섞인 원통함이 방울방울 눈밖으로 자꾸 우수수 떨어진다. 코를 훌쩍거리면 버스 기사가 내가 우는 걸 알아채 쉽게 볼까 무서워, 죽어라 울음소리를 참아낸다. 입술을 콱 깨물어 참으니 비릿하고 따듯한 것이 이빨 사이로 터진다. 새어 나오는 소리를 겨우 참으며 주룩주룩 떨어지는 잔여물을 카디건 소매로 꾹꾹 눌러 적신다.
창밖으로 고정한 얼굴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순간 유리창 빗금으로 새어 나는 빛의 부스러기는 다시금 떨어지는 눈물을 채운다. 빛이 너무 가득 채워진 것인지, 눈이 부시다. 손틈으로 햇빛을 가리는 척 눈물을 훔쳐낸다. 지나가는 차도 없이 유일하게 달리는 프랑스 시골길의 버스 한 대. 주황빛으로 환하게 아침을 밝히는 새로운 프랑스의 아침.
얼어버린 것들을 감싸는 거대한 태양의 빛은 매일 자리하고 있다. 이 거대한 빛이 매일 타오르기까지 겨우 하루라는 시간이 돌고 돌아온다. 그렇다, 매일 태양은 뜬다. 따뜻함의 힘을 다시 한번 믿어보자, 따뜻함은 언 곳에 균열을 만든다. 알아차릴 새도 없이 어디든 새어 들어와 방울거리는 프라즈마를 만들어 얼음을 녹인다. 새로운 하루라는 것은 인간의 얄팍한 판단일 뿐이다. 자연은 매일 존재하고 자리한다. 그들의 생명력은 우리에게 매일같이 깨달음을 주고 있다.
생각을 마치니 어느덧 완연한 아침이 되어있다. 어느 역에 도착한다. 도착한 줄도 모르고 자리에 멀뚱 거리고 앉아있으니 기사가 "파리!"라고 외쳐준다. 어둠으로 가려 안 보이던 그의 얼굴에 아침 햇살이 비추자, 넉살 좋게 생긴 얼굴이 나타났다.
"메흐시!(감사해요!)"
이번에도 역시 운전석에서 내려 짐칸의 캐리어와 가방들을 하나하나 손수 내려준다. 두려움에 오는 길 내내 의심했던 괜한 미안함으로 기사님에게 서툰 프랑스에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본... 조흐니?"
뭔가 잘못 말했는지 다시 짚어주려는 기사 아저씨의 긴 프랑스어가 들린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이자 여태 짓지 않던 함박웃음으로 말해준다.
"Bonne journée! 본조르네!(좋은 하루 보내!)"
나 역시 활짝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본조르네!(좋은 하루 보내!)"
열차역은 이제 아침해가 밝아, 출근하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 사이로 커다란 짐가방을 든 동양 여자는 마음으로 결심했다. 그래. 아침 해는 언제나 뜬다. 언제나. 언제나.
독자분들께.
연재를 하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개인적으로 여러 일들을 겪게 되면서 휴재가 길어졌습니다. 마음회복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작성하던 연재글들을 다시금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힘든 시간을 거치면서 다녀왔던 프랑스가 정말 큰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연재 속도가 빠르지 않더라도, 이 날의 사건들과 마음들을 하나하나 다시 새겨보며 여러분과 함께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매주 수요일 만나요. 기다려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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