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감은 믿을만한 몸의 역사라는 걸
이번 에피소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각색이 이루어졌습니다. 나오는 지명이나 특정한 소재 및 인물은 특정성을 없애기 위해 변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후 작성되는 에세이 글에서도 각색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지금과 같이 공지드리겠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프랑스 시골 교회 종소리
도착한 곳은 한적한 프랑스의 시골 동네다. 아주 오래된 건물들과 떠난 자리들이 남긴 기척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떼 지어 있던 새들이 오래된 벽돌 바닥을 구르는 캐리어 소리에 텃세를 부려댄다. 이곳은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곳이다.
나는 이곳을 4일 만에 벗어났다.
숙소 주변은 초원이 사방으로 펼쳐져있다. 하늘은 잘 다려진 천처럼 매끈했고, 구름은 마치 누가 정해둔 위치에 매달아 놓은 듯 멈춰 있다. 시차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눈꺼풀이 절로 감기고 고개가 휘청거린다. 오는 길에 픽업을 와준 호스트 내외가 가볍게 동네 구경을 시켜줬는데, 아주 작고 아기자기한 동네다.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많이 나갔는지, 길에는 노인들이 느린 걸음으로 낯선 동양인을 쳐다본다. 짐을 차마 풀기도 전, 피로감에 이불 위로 풀썩 몸을 던졌다. 먼지가 빛 틈으로 잠시 멈춘 것처럼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흐려놓으며 진공상태를 만들어 낸다. 의지와 상관없이 스르륵 감긴 눈 너머로 희미한 두 형체가 보인다.
꿈을 꿨다. 중세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과 낡은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탑을 가운데로 하늘을 향해 빙글빙글 돌며 날아 올라간다. 자유롭게 날던 두 사람은 정열적인 키스를 나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사이에 두터운 밧줄이 내려와 눈치채지 못하게 그들의 몸을 서서히 감는다. 밧줄은 올가미가 되어 남자의 목에 덜컹 채워진다. 놀란 여인이 그의 목에 채워진 올가미를 푸르려 손을 뻗어 보지만, 그의 몸에 손이 닿기도 전 그녀의 매끈한 목에도 덜컹 밧줄이 채워져 반동으로 반대편 멀리 날아가 버린다. 그들은 저 높은 하늘에서 교수형을 받아, 축 늘어진 몸으로 허망하게 땅을 내려본다.
댕! 댕! 댕!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다. 방이 흔들릴 정도로 울리는 종소리의 정체는 숙소의 바로 옆에 자리하는 오래된 교회다. 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방이 흔들릴 정도로 울려댔다. 까마귀 떼가 종소리와 함께 푸드덕 날아오른다. 눈을 뜨니, 애매한 오후 시간대다.
'시차 적응이 필요하겠네…'
원래부터 묘한 꿈을 자주 꾸곤 했다. 가끔 이렇게 기운이 안 맞는 곳에서는 가위를 눌리거나 이상한 꿈을 꾸곤 하는데, 이번 집도 그러한가 보다. 가위눌림이 익숙한 나는 바로 스트레칭을 한다. 몸이 굳어지면 다시 잠들었을 때, 악몽이 이어지기 때문에 꼭 몸을 풀어줘야 한다. 정신을 차려 방을 둘러보니 가위가 눌리지 않는 것이 이상했을 정도로, 기운 센 물건들이 많이 보인다.
숙소 안은 예상보다 낡았다. 커튼은 해져 있었고, 벽엔 오래된 그림과 손때가 잔뜩 묻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특히 커다란 중세풍 거울은 방안을 전부 채워 반사하고 있었는데, 거울 속 방과 이곳을 무리 없이 횡단할 수 있게 하는 문 같은 느낌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했다.
그간 이 집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가 지낼 곳이다. 이곳에 나의 냄새를 제대로 묻혀야겠다 싶다. 한국에서 부적처럼 들고 온 호랑이 두 마리를 침대 맡에 놓고, 먼지 쌓인 책과 오래된 그림을 정리하여 문밖으로 치운다. 큼직하게 한편 자리하고 있는 중세스타일 거울은 안 쓰는 담요로 가려주고, 옷걸이에는 좋아하는 색색의 카디건을 걸어둔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방안의 먼지를 걷어내자 그제야 사람냄새가 조금 나는 느낌이다.
‘청소를 대체 언제 한 거야…’
불쑥 올라오는 불만 섞인 마음을 뒤로하고, 몸을 힘차게 움직여본다. 어제 오는 길에서 나눈 호스트 내외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숙소는 한국인 부부가 운영했다. 아무래도 모르는 타지에서는 한국인 호스트가 대화를 나누거나, 문제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숙소로 결정했다. 다만 프랑스 깡시골에 숙소가 위치하고 있어 대중교통만으로는 오기 어려운 점이 고민이었는데, 픽업을 와준다고 제안해 줘서 그들의 호의로 무사히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오는 내리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다녀간 게스트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또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들과 자신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들까지. 자연스럽게 나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물었는데, 내가 영상 관련 일을 한다고 하자, 부인은 물었다.
“어, 그럼 유튜브 같은 것도 하세요?”
그러곤 바로 이어서 말했다.
“이런 데서 브이로그 찍으면 진짜 좋아요. 저희도 같이 뭐 해봐요!”
말을 흘리듯 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의도는 확실히 느껴졌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웃으며 넘겼으나 그간 나 역시 호락호락하게 서울살이를 했던 사람은 아니다. 게스트 자랑을 내리 한 이유를 알아챘다. 타고 가는 그들의 차가 괜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유 없는 호의는 없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이곳에 왔는데, 어째 한국에서보다 더 피곤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고, 기회를 보고 초장에 선 넘지 않도록 제대로 말해야겠다 생각하며, 밀려오는 졸음에 다시 차 뒷칸에서 꾸벅꾸벅 고개를 떨군다.
오래된 샹들리에 근처에는 엄지손톱 만한 파리 세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다. 붕붕거리며 천정을 치는 소리가 꽤나 거슬린다. 호스트에게 연락을 했지만, 역시나 알아서 해야 하는 부분이라 선을 긋는다. 순간 울컥 짜증이 솟구쳤지만, 오래 있을 공간이니 참아보자 싶어 더 이상 말을 붙이진 않았다.
심란한 마음에 기름을 붓듯 오늘 하루의 마지막 종소리가 굉음을 내며 다시 방을 흔들어댄다. 푸드덕 거리며 날아가는 까마귀 떼의 까악 거리는 소리는 다음 벌어질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둔한 이에게 했던 경고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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