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민사소송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답답했던 건 ‘진행 속도’였다.
왜 이렇게 느리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정확한 기간이 나오지 않았다.
매번 조바심 내다가 몇 번의 재판을 겪으면서 그제야 대략적인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1심은 보통 1년에서 1년 6개월
항소심까지 가면 평균 2년에서 2년 6개월 (개인적 경험 상)
정말 빠르면 1년 이내에 끝나기도 하지만 그건 운이 아주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송달 지연, 그 자체가 시간이다.
소장이 송달되면 피고는 30일 안에 답변서를 내야 한다. 벌써 한 달이 지나간다.
전자소송을 이용하면 조금 빠르다지만, 양쪽 중 한 사람이라도 전자소송을 하지 않으면 서면으로만 오가야 하니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우편이 왕복 4~5일. 부재중이면 더 길어진다.
게다가 일부러 집에 없는 척하며 송달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계속된 부재로 결국 공시송달로 넘어가면 그 절차만 수개월이 소요된다.
나의 경우는 상대방이 이사를 하여 주소 보정명령이 몇 차례 나왔고 주민등록 초본을 첨부하고서야 송달이 시작되었다. 그것 또한 1~2달이 걸린다.
재판이 자주 열리지는 않는다.
재판이 한 번 열리고 나면 다음 기일은 보통 4~6주 후로 잡힌다.
그 사이 별다른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면 한두 장 오가는 게 전부인데 다시 법정에 서기까지는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 내 경험으로 지방은 한 달 정도 지만 서울중앙지법처럼 소송이 많은 곳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기일이 2~3번만 반복돼도 1년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재판이 지연되는 구조적인 원인 중 하나다.
시간을 끌고 싶은 쪽은 이렇게 한다.
일단 우편물을 받지 않는다.
기일 변경 신청을 여러 번 낸다.
변론 종결 후 선고기일이 잡혀도 변론 재개를 요청한다.
감정평가, 사실조회 신청, 서류제출명령 요청을 한다.
기일 전날 서면을 제출해서 상대방이 준비 못 하게 만든다.
불필요한 증인신청을 하기도 한다.
이런 전략은 분명 ‘악용’이다.
하지만 불법은 아니다.
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이유로 대부분의 신청을 받아준다.
재판부는 왜 이런 걸 다 받아줄까?
재판부는 당사자의 주장과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신청이 들어오면,
웬만하면 기각하지 않고 받아주는 편이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재판을 불필요하게 늘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소송에 익숙한 사람이 이 틈을 노려 시간을 끌기 시작하면
진심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사람은
그만큼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빨리 판결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특히 당사자가 절차를 문제 삼으면 판결에 흠집에 생길 수도 있어서 그러는 것 같다.
3심 구조도 한몫한다.
우리나라 민사소송은 3 심제다.
1심, 항소심(2심), 상고심(3심, 대법원).
1심에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판결에 불복하는 쪽이 항소만 해도 다시 모든 절차가 처음부터 반복된다.
이때 변호사비 또한 새로 책정된다.
항소심 역시 기일 간격이 길고, 선고 직전에도 변론이 재개되기도 한다.
상고심까지 가면 대법원 판결은 보통 6개월에서 1년까지 걸릴 수 있다.
항소나 상고는 큰 이유가 없어도 가능하기 때문에 소송을 빨리 끝내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는
기약 없는 반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재판은 정신력 싸움이다.
민사소송은 ‘진실’보다 ‘절차’가 앞서는 곳이었다.
느리고, 복잡하고, 때로는 허술해 보이기도 했다. 모든 절차는 당사자가 아니라 재판부에 맞추어야 한다.
송달 지연, 기일 간격, 절차 남용, 3심 구조까지 맞물리면서 민사소송은 결국 시간과 인내, 체력과 정신력 싸움이 된다.
하지만 이 구조를 알고 시작하는 것과 모른 채 답답해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나 역시 이번에 실감했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사건이 더 낱낱이 밝혀지는 면도 있었다.
그럴수록 밝히지 않아도 될 사사로운 감정까지 모두 쏟아붓는다는 게 문제긴 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가보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결국 버텨낼 수 있다.
지연은 시킬 수 있어도 결과는 바꾸기 어려우니 견디면 된다.
이 경험이 소송이 시작된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